“교수님, 저는 고시텔 인간이거든요. 그래서 말인데요, 수업 들을 때 화면 끄면 안 될까요? 제 공간이 비춰지는 게 조금 부담스러워요. 저는요, 신발장에 안경 닦이를 나둬요. 웃기죠? 저는 항상 집에 늦게 들어가는데요. 매번 열한 시쯤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때쯤이면 서른 명 중 누군가는 반드시 씻고 있어요. 그래서 문을 열면 항상 안경에 습기가 차거든요. 입구 바로 옆에 샤워실이 있어서요. 실내화로 갈아 신고 안경 닦이를 들면 그제야 현관을 열어요. 복도를 지나가면서 안경을 닦고요. 아, 늦게까지 어디서 시간을 보내냐고요? 도서관이요. 사람이 많은데 조용한 건 도서관이나 고시텔이나 똑같거든요. 근데 미묘하게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도서관에서는 사람 소리가 들려요. 계단을 오르는 소리, 의자를 끄는 소리, 친구들이랑 속닥이는 소리 같은 건 분명 사람 소리거든요? 고시텔에서는요, 귀신 소리가 나요. 다들 분명히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척하거든요. 통화도 최대한 안 하는 듯하고, 걸음도 안 걷는 듯 걷고, 음식도 안 먹는 듯 먹죠. 저도 처음 알았어요. 조심하는 소리랑 안 하는 척하는 소리랑 그 기운이 다르다는 걸요. 우리는 투표도 못 하거든요. 전입신고를 못 해서요. 진짜 귀신같죠? 우리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저는 요새 우리 집이 어딜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우리 집이라는 게 참 애매한 것 같아요. 고시텔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랑 인사도 안 하고, 같이 밥도 안 먹지만, 우리라고는 생각하거든요. 있을 것도 다 있어서 집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근데 우리 집이라고는 생각을 못 하겠어요. 신기해요. 교수님, 죄송해요, 제가 말이 좀 길었죠? 여하튼, 줌 수업 때 화면 켜라고 안 하시면 안될까요? 제 방은 바닥, 침대, 책상이 딱 3분의 1만큼씩 차지하고 있어요. 다른 방들도 모두 똑같겠죠. 똑같아요. 제가 봤어요. 방을 고르라고 여러 개를 보여주는데 그냥 뭐 다 똑같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들어가기도 전부터, 내가 노트북을 사기도 전부터, 내 노트북이 놓일 자리는 정해져 있었던 거죠. 거기서 화면을 켜면 복도 방향으로 난 얼굴만한 크기의 창문이 보이더라고요. 그 창문은 환기 용도인 것 같기는 한데, 한 번도 열어본 적은 없어요. 복도 공기나 방 안 공기나 그렇게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서요. 전 쓰지도 않는 그 창문을 사람들이 보면, 제가 고시텔에 사는 걸 다 눈치챌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래요. 너무 무례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음, 어쨌든 저 지금 알바 시간 다 돼서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 교수님, 저는 고시텔 인간이거든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배경 설정하면 얼굴만 나올 수 있는 거였구나. 몰랐어요. 다른 사람들은 배우고 습득하고 이것저것 할 동안에 저는 알바를 해야 하잖아요. 발로 뛰고 손으로 날라야 살 수 있는데, 그런 제가 인터넷 플랫폼인 줌에 대해 뭘 알겠어요? 전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겠거든요. 저녁에 자려고 누워있으면요, 진짜 알겠어요. 침대가 제 몸이랑 딱 맞는 크기인데, 조금만 움직여도 굴러떨어지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 정도인 거예요. 어깨 움찔거리고 발 까딱거리는 정도요. 교수님, 침대에서 떨어져서 잠 깨본 적 있으세요? (…) 교수님, 저는 고시텔 인간이라서요. 이제 진짜 알바를 가야 할 것 같아요. 네, 배경 설정하는 법은 제가 알아볼게요. 요새 새로운 플젝 맡으셔서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면담해 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그 플젝에는 누가 참여해요? 아, 그 선배랑 저랑 같이 팀 짜서 공모 나간 적 있었어요. 합이 정말 잘 맞았어요. 저 이제 진짜 가볼게요. 그 선배랑 저랑 역할 분담이 진짜 딱 잘 됐는데. 아, 오늘 유니폼을 안 가지고 왔네, 아 또 혼나겠다. 그 선배도 저 좋아할걸요? 아 가기 싫은데 진짜 가볼게요. (…) 저요? 어머, 감사합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