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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Sep 24. 2020

모기

2020 여름 이메일링 서비스

새벽 한 시 모기의 앵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이불로 얼굴을 돌돌 말고 다리를 한껏 움츠린다. 허공에 손을 저었다가 허공에 손뼉을 쳤다. 모기는 노란 고무줄을 두 손으로 늘렸다 놓는 것처럼 적절한 강약을 조절하며 움직인다. 소리는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다시 커진다. 악! 이놈의 모기. 결국 이불을 확 젓이고 불을 켰다. 범인은 베개 맡에 있다.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휴지를 움켜쥔 손으로 벽을 탕 친다. 휴지에는 나의 피로 이루어진 모기가 묻고 벽은 피 한 방울 없이 깨끗하다. 깔끔하게 죽이는 강약의 힘 조절. 몇십 년간 모기를 죽이며 터득한 기술이다.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 감긴 눈 너머의 눈알이 동골동골 구른다. 모기는 잠도 안 자나. 휴대폰에 ‘모기 잠’이라고 쳤다. 모기는 숨 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좋아합니다. 잠잘 때 모기가 얼굴 주위를 맴도는 이유는 코와 입으로 나오는 이산화탄소 때문입니다. 닉네임 모기장이 말했다. 다음 포스팅은 ‘경이로운 능력을 가진 동물 TOP 10’이었다. 사진 속 산양은 직각에 가까운 벽을 타고 있다. 알파인 아이벡스라는 알프스 양은 특이한 발굽과 타고난 균형감각으로 90도에 달하는 경사도 넘을 수 있단다. 피눈물을 흘리는 도마뱀, 피부색과 몸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문어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까. 표범을 피하려 절벽을 오르고, 피눈물을 뿌려 천적을 쫓아내고, 몸을 바꿔 은신하는 경이로운 동물들. 사람은 살기 위해 물갈퀴를 없애고 꼬리를 잘랐다. 그리고 누군가는 슬픔을 숨겼다.     


배가 아파 구석에서 앙앙 울던 어린 딸을 장사가 바빠 못 본 척해야 했던 엄마, 아빠의 삶을 상상하는 나에게 A는 말했다. 야, 너까지만 연민해. 부모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나를 연민하는 건 너무 구질구질해서 싫다는 나에게 A는 말했다. 끝까지 연민해. 그럼 없어지더라.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은 힘이 된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당신의 손가락은 왜 10개가 되었나요. 옆 사람과 깍지를 끼기 위해서요. 당신은 왜 시끄러운 걸 못 참게 되었나요. 작은 소리도 듣고 싶어서요. 나의 생김새와 행동이 진심으로 똘똘 뭉쳤으면 좋겠다. 얇고 긴 손가락도 펄펄 끓는 냄비를 들다보면 굵어지는 것처럼 몸과 행동이 그리고 마음이 같은 사람. 요즘 나는 글을 적기 위해 약속을 최대한 적게 잡고, 만난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나온다. 전보다 눈매가 조금 뚜렷해졌다. 대출을 찾아본다. 왼쪽의 승모근이 살짝 올라갔다. 친구와의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진다. 손 거스러미가 솟아났다. 쿰척쿰척 거리는 컴컴한 내 두 눈은 부모님과 다른 사람을 더 이상 연민하지 않는다. 모기가 앵 소리를 내면 모기는 잠도 못 자는구나 생각하지 않고, 나도 내 소리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편으로. 산양이 벽을 오르면 발굽이 얼마나 아플지 상상하지 않고, 나도 저 단단한 구조를 가지겠다고 다짐하는 편으로 방향을 튼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양들의 이야기는 인제 그만 양들에게 맡겨두고서. 이번 주에는 아주 실컷 울었다. 말을 하고 울고 말을 하고 울고 나니 측은했던 과거는 낄낄거리는 추억이 되었다. 왜 그렇게 숨겼나 싶을 정도로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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