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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국 Nov 24. 2023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한동안 일반 대중에게 '미움받을 용기', '상처받을 용기'라는 제목의 책이 인기를 끌었다. 책 '미움받을 용기'의 요지는 인생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고, 모든 것은 용기의 문제이고,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책 '상처받을 용기'는 나를 아껴주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 끌려다니지 말라고 얘기한다. 


두 책 모두 우리 삶에 꼭 필요한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모두는 상처받기 싫어한다. MZ세대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전화하는 것보다는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대화 나누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문자나 카카오톡은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생각하고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있는 시간여유가 허락되는데, 전화는 상대의 반응에 대해 생각할 겨를 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고, 이러한 반응을 잘하지 못하여 실수를 하고 혹은 상대로부터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서 MZ세대는 전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화가 오면 불안감을 느끼고 통화가 편하지 않아서 전화하는 것을 피하는 증상을 '전화 포비아(Call Phobia)'라고 부르고, 이러한 전화 포비아를 위하여 전화하는 법을 가르치는 강좌도 개설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전화하기를 두려워하여 피하는 것은 전화통화로 인해 뜻하지 않게 상처받고 싶지 않은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상사에게 보고하기를 주저하는가? 상사의 꾸중과 갑질이 두렵고 자신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 싫어서이다. 왜 타인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기를 주저하는가? 타인이 자신의 요청을 거절하여 자기가 상처를 받게 되는 상황을 맞닥뜨리기 싫기 때문이다. 왜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을 주저하는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 자신에게 상처가 되는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남들 앞에서 발언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남들 앞에서 발언을 하다가 창피를 당하거나 비웃음을 당하여 결국 자신에게 상처가 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다. 왜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는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와중에 겪게 될 고난과 역경이 두렵고, 그로 인해 자신이 상처받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미움받을 용기', '상처받을 용기'와 같은 책들이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큼 일반 대중들은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바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유사한 책들은 앞으로도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 '상처받을 용기'를 내고, 이에 단호하게 맞서고, 눈앞에 놓인 문제를 직시할 용기를 내고 싶고, 그런 용기를 가진 나이고 싶은 욕망이 늘 내 안의 어딘가에 내재되어 있지만, 그보다 당장에 미움받고 싶지 않고, 상처받고 싶지 않은 욕망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전화 한 통 하는 게 뭐 그리 큰 일이냐고, 그런 로 상처받을 일 없다고 말하는 것, 상사에게 보고 하고, 타인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남들 앞에서 발언을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그냥 하면 되고, 그런 일로 상처받을 필요 없다고 말하는 건 어쩌면 그 자체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다. 그런 일로 왜 힘들어하느냐고 힐난하거나 힘들어하지 말고 힘내라고 말하는 것도 역시 옳지 못하다. 상대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걸 넘어서 상대에게 고통을 가중시키고 상처 난 자리에 더 생채기를 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후배 혹은 하급자에게 조언해 준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늘어놓는 선배 혹은 상사를 "꼰대"라고 부른다.


"힘들어하지 마.", "그런 일로 신경 쓰지 마.", "아프니까 청춘이지, 잘 이겨낼 수 있어."라고 따뜻하게 건네는 말은 '얼죽아'를 지향하는 이에게, 그것도 한여름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는 것과도 같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단호하게 맞설 용기를 내고,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 또한 살면서 필요하다. 그러나 당장 누군가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고, 누군가로부터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움츠리고, 주저하고, 숨고,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를,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자체로 인정하고,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며칠 전에 샤이니 종현의 '하루의 끝'을 오랜만에 들었다. 노래를 들으며 뮤비와 댓글을 보았다. 그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맘껏 울 수도, 또 맘껏 웃을 수도 없는 지친 하루의 끝에 누군가로부터 포근한 위로를 받고, 어린아이처럼 칭얼대다 숨 넘어가듯 웃고 싶은데, 현실은 서툰 실수가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고, 이미 해가 뜬 후에야 눈을 감을 수 있고, 지친 나의 하루 끝을 감싸 안고 위로해 줄 이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이런 나를 보듬어줄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으니 더 이상의 상처와 미움을 받을 용기와 배포는 자리 잡을 틈이 없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눈곱만큼의 상처도, 미움도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잘 지내는 듯, 괜찮은 듯 보이는 많은 이들이 실은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하며 힘들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이 마음 아프고 안타까우면서도 내게 은근 위로가 되기도 하였다.


미움받을 용기, 상처받을 용기를 내라고 하기 전에 우선은 그러한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에게, '상대방'에게 따뜻한 위로와 지지를 보내는 것이 좋겠다. 오늘 상대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참으로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더 많은 응원과 지지가 필요하다!


이번 한 주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려고, 밥벌이를 하려고, 삶의 목표를 위해 뛰려고 고생한 모든 이들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다.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그댄 나의 자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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