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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국 Jan 18. 2024

자유에 대한 3가지 생각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1. 자유는 freedom이다. free의 어원은 적극적으로 무엇 무엇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소극적으로 무엇이 없는 상태이다. Free from hunger(굶주림으로부터 자유로운), Free from power(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Free from obsession(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따라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우선은 자기를 옭아매는(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무엇이 없어야 한다. 지금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는 自由(나로 말미암음)이다. 나로부터 시작하고, 나에게서 기인하는 것이 자유이다. 누구로부터, 무엇으로부터 내가 떠난다고 해서 결코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무인도에 가면 맘껏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장소가 문제가 아니다. 자유로운 이는 무인도에서도 빽빽한 도심 한복판에서도 자유로울 것이다.


2. 역사적으로 인류는 엄격한 신분제도, 왕권제도, 기독교 혹은 불교, 유교라는 종교라는 틀로 인해 속박당해 왔다. 근대 이후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왕정이 무너지고, 종교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면서 개인을 회복하고, 자유를 찾게 되었다. 어렵사리 찾게 된 자유를 즐기고 최대한 누리면 좋으련만 자유를 맘껏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양의 기독교와 봉건제도, 동양의 유교와 왕조는 개인의 자유를 빼앗은 대신 제도에의 귀속감과 안정감을 주었는데, 그러한 보호막을 걷어내니 자유롭되, 고립되고 무기력 개인만 남게 되었다. 


그러한 개인은 고립감과 무기력감을 견디지 못하고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 체제, 군사정부와 같은 권위주의 체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였다. 어떻게든 외부와 연결되고자 하고 고립감 혹은 외로움을 피하려는 욕망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다. 다른 동물에 비해 신체적으로 약한 인간은 집단으로 뭉치고 연결되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외부와의 단절감을 피하기 위해 인간은 비합리적인 혹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히틀러에 열광하고, 강력한 군부가 자기들을 끌어주기를 바라며, 가상공간에서라도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기를 바라는 것은 그러한 본능 때문일 것이다.


3. 인류는 오랜 역사에 걸쳐 자유를 갈망하고 추구하여 결국 그 자유를 얻어냈지만, 이렇게 힘들게 얻어낸 자유는 불가피하게 고립감과 외로움을 동반하여 다른 한편으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딜레마이다. 자유롭게 내 의지대로 인생을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을 때 그러한 삶을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분제도의 속박 없이, 외로움의 덫에서도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내 맘은 왜 이리 외롭고, 불안한가? 나를 외롭게, 우울하게, 불안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외부의 것이든, 내부의 것이든, 온전히 나에게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그런 불안과 우울과 심란함은 타인(외부)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에 대한 집착 혹은 타인에 대한 집착, 건강하지 않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면 나로 말미암음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억압된) 나에 대한 집착, 타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때 온전히 나로부터 말미암은 생각과 행동이 가능하다(그런 의미에서 온전한 자유란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자유는 타인과 엉켜서 사는 한 영원히 얻어지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럼 타인이 없는 곳에선 자유로워야 할 텐데?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자유로운가? 아니면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가 자유로운가? 그런 자유는 없다고 보는 게 옳겠다. 그래서 자유를 향한 여정은 멀고도 멀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언제까지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정 자유롭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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