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풍경들
기억은 사진과 그림으로 남는다.
크래프트지에 수채
나는 장안동의 연립주택 반지하에 살았었다.
그곳엔 막내인 나와 두 살 터울의 오빠,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때로는
어린 나를 이불로 덮어두고 떠난 도둑도 있었다.
성인이 된 후에 듣게 된 놀라운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왜 추억이 되는 걸까.
크래프트지에 수채
진한 소주병과 맥주병 그리고 사이다병,
이들보다 더 큰 용기의 락스.
또 그들보다 더 커다랗고 둔탁한 요강.
트레싱지에 콘테
뒤죽박죽 섞인 주택들 앞에
무성히 자란 잎들의 줄 세움 나무.
그 안에 자리 잡은 우리의 아지트.
땅 파고 놀던 아이들과 어수선한 모래바람.
종이에 색연필
높이 매달린 과자를 따먹으라고?
아이들이 하니 나는 그저 따라 하기만 했다.
들린 턱이 우스워서 빨리 끝내고만 싶었던
파마머리 키 큰 여자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