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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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은 내가 가질 필요가 없이 어디서든 나타난다.
누군가의 선물, 오래전에 사놓고 다 쓰지 못한 여분들.
오히려 종이는 사도 사도 모자란데 말이지.
종이에는 역시 연필이 어울린다.
굉장히 단순한 얘기지만 흑백의 날카로움이나 뭉툭함은
종이에 얹혀 졌을 때 본연의 특성이 제일 잘 살아난다는 얘기다.
마치 살갗의 그슬림이 보이는 것처럼,
그리고 눈앞에 대보면 더 잘 보이듯이.
표면의 빈틈이 자연스레 남아 음영의 깊이가 쌓인다.
이 말 뜻을 해석해 보실 분?
뭐, 묘사를 하라는 뜻인가.
이것이 이걸로 보이는가.
이것이 저것으로 보이는가.
당신의 시선은 무엇에 집중하는가.
바라보는 것이 진실을 담고 있는가.
무언가가 무엇일까.
.......
본론은 사실 이거다.
누군가는 그랬다.
그리기의 방식이 배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묘사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소리였다.
'잠깐, 뭐라고?'
한 번도 내 그림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이것이 내 것이라고,
혹은 나에게서 태어났다고 생각했기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겨 버렸다.
하지만 정확히 한 달이 지나고 깨달았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였다.
지독히도 부정하고 부정하면서!
이 선의 느낌은 내 거야.
가늘기도 굵기도 내 손에서 나온 거라고,
그림의 굴곡은 나의 의지야.
그렇다.
평범하고 당연하게도 '무언가'를 보았다.
그것을 그대로 옮긴다는 행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연스레 그렸던 형태가
어쩌면 정형화된 테두리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 내 것이 내 것이 아님을....
지적이 아니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
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이 점을 뛰어넘어야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
아니 그보다 새로움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진달까?
그래도 지적은 받아들이기 싫었다.
그동안의 시간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냥 좀 한 가지만 생각하면 안 되나,
좋으니까 그랬던 것뿐이라고.
아악!!!!!!!!!!!!!
누군가가 내 뒤통수에 말을 한다.
나의 즐거운 그림 그리기는
이제 더 이상 1차원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시 제 갈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