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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Nov 30. 2024

팬 케이크의 추억

누군가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팬케이크다. 나는 어릴 때 일본에서 유치원을 다녔는데 어린 시절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가 TV에서 본 '딩동댕 유치원' 같은 프로그램이다. 어느 유아 프로그램이 그렇듯 구성은 비슷한데, 다 같이 체조 비슷한 걸로 시작해 그날의 이야기(만화 형태로 세계 명작 동화를 보여준다)로 이어지는데 그중 인상 깊었던 건 내 나이 또래 시청자 집을 방문해 아이가 혼자 파자마를 입는 것을 뽐내는 메뉴였다. '파자마자마자마자~' 라고 반복 이어지는 배경 음악 속 아이는 속옷 차림에서 파자마로 천천히 갈아입는다. 조그마한 손으로 작은 단추를 끼우느라 얼마나 낑낑대는지 그 아이도, 보는 시청자들도 행여나 실수하거나 실패할까 봐 어쩐지 조바심을 갖고 응원하면서 봤다.(더러 실패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아이도 있었다) 인내심을 갖고 보고 있다 보면 성취감을 가득 안은 미소와 함께 아이가 마무리하면 다 함께 그의 성공을 축하해준다. 그리고 다시 체조로 마무리. 파자마 입는 코너에 동생과 함께 파자마로 갈아입었던 기억이 있다.

해당 프로그램에는 일본의 모든 유치원생이 집에 오는 시간인 매일 3시에 간식을 먹는 장면도 나오는데 그 영향이었는지 매일 3시에 어머니도 간식을 꼭 챙겨주셨다. 그 중 가장 좋아했던 메뉴가 따뜻한 팬케이크와 차가운 우유한잔. 거기에 가끔 과일을 곁들이기도 했다. 유치원에서 돌아와 손을 씻고 곧 바로 식탁에 앉아 먹었던 그 시간을 가장 사랑했다. 따뜻하고 나른했던 느낌으로 어린 시절 몇 안되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 할 때즘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고 아버지만 일본에 남아 학업을 이어가게 되었는데 이는 어머니만 한국으로 돌아와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을 의미했다. 그 이후 어머니는 항상 바쁘셨고 한동안 경제 능력이 없는 아버지 대신 생계도 책임지셔야 했다. 거기다 남편 없이 막내 동생도 낳아 부양할 아이는 셋으로 늘어났고 어머니의 생계였던 서점일을 돕느라 우리의 여유로운 간식 시간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 맛은 언제나 기억했다. 가끔 오뚜기에서 파는 분말 팬케이크를 해먹으면 비슷한 맛이 났다. 

그런 기억을 묻어두고 살다가 팬 케익을 다시 접한 건 20대가 되어 본 어느 영화의 한 장면에서다. 미국 영화에 단골로 나오는 그런 아침 식사를 하는 음식점. 롯데리아에서 볼 법한 알록 달록한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주문하면 곧 커피와 함께 산더미처럼 쌓인 감자와 계란 혹은 두툼한 팬케이크가 한 접시에 가득 나온다. 그래 바로 저거다! 내가 원하던 두툼하고 매끈한 팬 케이크. 달처럼 모양도 예쁘고 말이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그런 빈티지한 감성을 좋아하게 된 것이. 

내가 경험한 첫 미국은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있었던 교내 어학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해 다녀온 오레건의 유진이란 도시였다. 다 함께 패스트푸드 점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화려한 네온사인 글씨체에 찐한 빨강과 하얀 대비의 플라스틱 스탠딩 테이블과 동그란 의자가 정겨웠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근처에 지금은 사라진 하디스란 패스트푸드점이 있었는데 비슷한 분위기였다. 내게는 꽤나 멋진 추억으로 남아 있는 감성이다.

그 이후 취향을 생각할 틈도 없이 정신 없이 살다가 고등학생때 이후 한 번도 안 가본 미국을 20년만에 처음으로 다시 찾은건 8년전 여름. 당시 캐나다 여행중 한 달 남짓 만난 지금은 남편이 되었지만 당시엔 잘 모르는 외국인과 미국 - 캐나다 횡단 여행을 하기 위해서. 

토론토에서 출발해 첫 목적지였던 시카고에서의 첫 아침 메뉴로 팬케이크를 골랐다. 열흘 안에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라 서둘러 떠나야 했기에 다음 목적지를 향한 고속도로 진입 근처 아무 곳이나 그나마 적당히 평점이 높은 팬케이크 집을 찾았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8월 말의 어느 날 아침 우리는 차를 세워두고 팬케이크 집으로 향했다. 이름은 Elly’s pancake house. 나는 바나나가 가득 올려진 팬케익을 주문했다. 고소하고 진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팬 케익을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사라져버렸다. 먹자마자 몇 입 씹지 않아도 부드러운 이 맛. 게다가 솜사탕 처럼 달달하고 케익시트와 빵 그 중간 어딘가의 부드러운 맛. 카스테라 같이 폭신하면서도 탱글한 질감의 윤기 있는 팬케이크. 그래 이게 미국의 맛이지. 내가 생각하는 미국의 맛은 팬케이크다. 로컬들이 화장도 안하고 세수만 겨우 하고 나와 머리도 어쩐지 부스스한 차림으로 가볍게 먹는 그런 레스토랑. 출근하러 가기 전에 들러 먹는 김밥천국 같은 곳이랄까. 이런 곳을 좋아한다. 뭔가 미국인들에게는 고향의 맛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화려한 네온사인의 테이블은 아니었지만 하얀색과 회색의 둥근 띠를 둔 삼단 쿠션 의자와 패스트푸드에서 봄직한 테이블과 의자는 그대로였기에 만족스러웠다. 내가 먹어본 최고의 팬케이크라 감탄하며 나와서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시카고에 다시 간다면 한 번 더 가보고 싶다. 그 맛이 정말 좋아서였는지 근 30년만에 제대로 된 팬케이크를 먹어서 반가움과 벅참에 더 좋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라이팅게일 #팬케익의추억


어쩐지 팬케이크가 생각나는 날이라 오랜 추억을 한 번 꺼내어보았습니다. 

11월의 마지막 주말, 모두 평온하게 보내시길 바랄게요.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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