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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in Jun 24. 2022

사진의 힘을 체험한다는 것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으로 바르트의 카메라에 대한 생각 만나기

기술의 발전은 고도화되어가지만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은 그리 복잡하지 않을 수 있다. 신기술이 평범한 일상에 도착할 때마다 그 위험성이나 영향력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끼치는 여파가 늘 크게 드러남을 경험하면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만들어진 신제품을 고르며 다시 평범한 일상 안에 편입된 기계들을 수집해 나간다. 빛의 원리를 이용한 기술을 집약하여 만들어진 카메라라는 기계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의 목소리가 있었다. 인간의 눈과 손으로 만드는 회화는 끝이 나고 마는 것인지, 사진으로 남겨진 기록들이 일상에 공포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존재했었다. 해당 논쟁의 밭에서 태어나 사진을 예술의 일부로 인정시킨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활동은 기계, 기술, 인간의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다. 


<서양미술사>라는 20세기 인류의 한 관점을 집대성한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그의 책에서 미술 작품 중 유일하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을 소개했다. 나머지는 전부 회화 작품이었다. 본인 스스로 사진가라는 정체성보다는 시각예술가의 신분을 선호했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었지만, 그가 살아있을 당시에도 이미 명예와 질투를 한 몸에 받는 자리에 있었다. 간디가 암살되던 마지막 날에 찍은 사진, 중국의 국민당이 물러나고 공산당이 입장하는 현장에서 남긴 사진을 남기는 한편 회화작품을 연상케 하는 구도를 담는 사진가였기 때문에 생긴 오해와 명성이었다. 바깥에서 가장 중요한 사진가라고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카메라 대신 데생 도구를 들어 사진이 아닌 그림을 그렸다. 매체와 주변에 자신은 아마추어라고 말하고 다니며 여러 번 사진가라는 직업에서 은퇴를 선언했었기 때문에 오히려 사진이라는 주제를 투명하게 볼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는 그의 삶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젊었던 시절, 회화를 배우기도 하고 사진을 찍다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사진이라는 분야에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하는 의식은 없었던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이끌어내 보고자 하는 의지가 카메라를 만나서 생긴 크고 작은 이벤트가 지속적으로 생겨났을 뿐이었다. 그가 처음 라이카라는 카메라를 구입한 건 1932년이었고, 당시만 하더라도 전쟁의 여파로 사건을 서술하고 현장의 사실성을 담아내려는 포토저널리즘 역시 존재하던 시기였다. 카메라나 사진을 통해 서술자가 되기보다는 최대한 사진가로서의 자의식을 자제하고 카메라를 든 사람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다는 그의 증언이 남아있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데 복무하도록 만들지 않고 있었던 순간을 왜곡 없이 남기는 데 집중했던 것이다. 


사진을 찍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피사체나 대상은 평소와 다른 패턴으로 표정을 짓거나, 사진에 나왔으면 하는 자신의 바람을 담기 위해 준비하고 포장할 수 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지양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인위적인 태도들이었다. 원래 있었던 장소와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에 슬며시 스며들어, 카메라가 놓여 있는지 모를 정도로 요란하게 티를 내지 않는 선택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을 시작하고 함께 일하는 사진가 동료들과 해외 대륙으로 떠나기 전에 세운 원칙도 위와 같은 자세와 맞닿아 있었다. 예를 들어 역사적인 의미가 될 수밖에 없는 암살된 간디의 장례 현장이나 대대적인 정권의 교체가 이뤄지는 중국 거리의 현장을 포착해야 하는 처지였다. 사진에 찍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사진에 찍힘으로써 역사에 남겨진다는 생각이 못 들 정도로 찰나를 담아야 했던 것이다. 


언론사에서 취재를 목적으로 찍는 보도 사진은 해당 사진가의 파견 자체가 특정 서술 목적을 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의 시선이라는 것은 지울 수 없는 목소리임이 분명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목소리를 줄이는 대신 눈과 귀를 확장했다. 증언이나 기록만 하는 사진은 예술성을 가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열린 눈과 귀는 직관을 확장시켜 사람들과 공간의 혼을 빨아들였다. 미적인 것을 사진 안에 나타내기 위해 의도를 키우지 않고, 다른 것들에 가려서 숨겨져 있는 것들을 사진을 통해 골라 넣은 것이다. 그는 '어떻게' 잘 찍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테크닉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상과 현실이 맺고 있는 연관성에 대해 사진가가 고민하고 질문해서 얻어 낸 나름의 선택이 없다면 스킬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활발하게 사진 촬영을 다니기 이전에 벌써 전쟁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서의 삶을 경험했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었다. 그 이후 스스로의 힘으로 수용소를 탈출한 이래로 관습적인 것을 거부하고 사진가의 주관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발휘해야 하는 임무를 얼떨결에 최고의 모습으로 수행했다. 사진가로서 가장 훌륭함에 가까이 가본 것처럼 보이는 그 역시 의문이 있었다. 사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두려움이었다. 어떻게든 순간을 늘려 시간을 통제하고 싶고, 모두가 떠난 공간에서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하는 감정은 사진가도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사진가로서 할 수 있었던 건 잘 바라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영역에서 바라보는 것에 대해 관점의 폭을 넓혀주는 또 다른 인물은 사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작가 롤랑 바르트였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통해 주관적인 경험이 사진으로 표현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면, 롤랑 바르트를 통해서는 사진가가 포착한 순간을 경험하는 관람자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롤랑 바르트 역시 사진은 처음부터 죽음을 두려워한 인간이 시간의 연장과 존재의 확장을 추구하면서 나타나는 혼란을 담고 있다고 봤다. 해당 복잡한 심정의 주제를 선정하는 역할은 사진가에게 있고, 결정적인 역량은 타이밍 조절을 어떻게 하여 무엇을 담고자 하냐는 것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아무 현장이나 사람을 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는 삶의 흔적을 남겼다. 카메라라는 장치가 단순히 버튼을 누르면 복제품을 만드는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을 보면 관람자가 복잡한 연상 작용으로 활발한 주관적 경험을 겪는 이유는 기계가 제시한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사진가가 긴 시간을 축적해서 만든 구조를 체험하기 때문이다. 


사진가가 스스로 어떤 문화적 배경에서 자라서 어떠한 시선으로 사물과 대상을 보는지 객관적인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대신에 그가 찍은 사진이나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암시하는 행위들은 어떤 사회구조적 맥락 안에 있는지 유추하게 만든다. 이로써 사진은 단순한 결과 한 장이 아니라 감정, 인식, 관점, 인생이 모두 담겨있는 총체적인 집합체로도 읽을 수 있는 문제집이 된다. 그러면서도 사진이 글이나 말과 다른 것은 시선 속 이미지가 남겨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성격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의 글을 읽는 것과 살아있던 당시 모습이 남겨진 사진을 보는 것에는 구분되는 감정이 있다고 말한다. 사진이 가진 가장 강한 힘 중에 하나는 유사함이 아닌 원본이 살아있는 것 같은 혼란을 주는 것이다. 


간디가 암살된 당시 인도는 충격에 빠졌다. 그의 장례식에는 2백만 명의 사람이 몰려 그를 추모하고 애도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그를 만나면서도 당일에 죽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가인 그의 눈에는 간디의 손가락이 많은 것을 함축하고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만나는 동안 간디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집으로 돌아가서 그날을 마무리하기 전 간디의 암살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인도에 머물 생각이었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별 다른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기보다, 늘 하듯이 슬픔에 빠진 인도 사람들의 감정과 거리를 찍었다. 인도의 거리와 그 공간에 살고 있던 사람이 사랑했던 간디의 부재, 그 충격에 휩싸여 있는 시간을 담은 사진은 롤랑 바르트의 말을 풍성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간디는 떠나고 없고, 다시 그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가가 남긴 마지막 사진을 봤을 때 강렬한 감정의 파동이 일어난다. 


아무리 세계에서 가장 잘 찍는다고 소문난 사진가가 남긴, 살아생전 마지막 사진을 보고 또 보아도 간디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이는 비극적인 작품을 만났을 때 얻어지는 감정의 승화가 가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간디를 그리워하는 한 간디의 사진은 간디를 닮은 누군가가 아니라 실제의 모습이기에, 만났으나 만나지 못하는 부조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은 슬픔에 젖은 인도의 사진을 보더라도 간디의 죽음은 한 생명의 끝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상징적 순간이었다. 동시에 죽음은 늘 일어나는 일상이다. 간디가 숨을 다한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매일매일 죽음은 인도뿐 아니라 어디에든 찾아온다. 사진을 찍는 것, 사진에 있는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평범한 일상 속에 다시 돌아가는 것, 이 모두 죽음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의 힘은 간디의 죽음과 같은 거대한 상징적 순간을 기록함과 동시에 흔적으로 만들면서 복잡한 감정을 만든다는 데 있다. 사진가가 잘 바라보기를 충실히 수행할수록, 껍질과 쓸데없는 욕망을 걷어낸 사실이 재현된다. 이는 현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누구를 그리워하게 되는지를 떠오르게 만든다. 사진가가 긴 생을 통해 축적한 구조를 체험하는 일이다. 사진을 통해 유사한 다른 것이 아닌 살아있는 것 같은 원본을 만났으나, 손을 잡아 온기를 느낄 수 없을 때의 혼란은 사진이 가져다주는 가장 강렬한 경험이다. 인간은 기계를 만들고, 기술 속으로 들어가 두려움을 지우고 싶어 하지만, 기술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면 사실을 마주할 수 없다. 카메라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이후로 고도화된 기계들 역시 인간의 한계는 극복시켜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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