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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in Jun 17. 2022

문화가 있는 축제에 참석한다는 것

1969년 할렘 문화축제 참석자와 BTS 월드투어에 참석한 아미의 분모

1등이나 최고가 된 사람의 이야기는 늘 궁금하다. 워렌 버핏은 어떻게 투자할까. 마이클 조던은 어떻게 농구 훈련을 했을까. 빌 게이츠는 어떤 유년시절을 보냈을까. 20세기와 21세기에서 최고가 된 인물들은 미국에 발을 딛고 있었다. 미국 시장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만한 공로를 세우는 건 전 세계 최고라는 칭호와 모든 관심을 얻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이 아닌 곳에서 태어나 미국이 아닌 곳에서 노력한 이들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은 허무맹랑하지 않게 들리는 최근이다. 한국에서 음악을 시작한 방탄소년단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관계를 맺어온 아미라는 팬덤과 함께 만든 긴 축제는 1969년 열린 할렘 문화축제만큼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워렌 버핏, 마이클 조던, 빌 게이츠에게 어떻게 최고가 될 수 있는지를 물어보려는 건 그들이 가진 특별함에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왜 방탄소년단이 다른 케이팝 아이돌뿐 아니라 한국음악에서 독보적으로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건 무엇인가 참고할 사항이 있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성공방정식, 산업으로서의 벤치마킹,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 얻고자, 따라 하고자 하려는 움직임은 비단 음악 산업에 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과 브랜드는 방탄소년단을 제작한 프로듀싱 시스템과 운영 방식에서 영감을 얻고자 노력했다.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되새겨보기 전에 이미 일사천리로 방탄소년단의 방식을 차용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진가를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은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던졌다. 왜 방탄소년단이었는지 보다는 멤버들의 동기와 팬들이 느끼는 감정은 무엇이었을지 물어본다. 멤버들은 가사와 행보에서 꾸준히 그들이 가진 동기를 드러내곤 했다. 케이팝 아이돌이라는 정체성과 힙합 하는 아티스트라는 정체성은 처음부터 일체감을 가지기 어려웠다. 데뷔 초창기부터 이러한 모습에 비판과 야유를 퍼붓는 이들에게 소속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으로 표현했다. 완벽한 모습으로, 세계 시장에 내보여야 하기에 한국적인 정서는 최소화한 아이돌이 보편적인 시장 흐름에서 자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는 각각의 멤버들이 춤과 랩과 노래를 했다.


한국 음악시장에는 물론 미디어나 산업자본에 기대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감동을 만드는 아티스트들이 꾸준히 존재해왔다. 방탄소년단은 그 시도를 아이돌이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감당하는 것이다. 언제든 투자와 자본의 흐름 속에서 화려한 모습으로 생존해야 하는 시스템에서 음악 안에 어설픔과 솔직함을 녹여내야 했다. 이러한 음악성은 평소의 자율적인 일상과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일관된 태도로 나타났다. 평범한 것 같이 보이는 태도가 팬들에게는 시의적인 선택이었다. 


20세기 후반부터 세계화 경제로 인해 전 세계 각 지역에서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급격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부의 쏠림 현상 때문에 중산층을 비롯한 가계 경제보다는 특정 산업과 시장에 돈이 몰리면서 개개인의 노동력은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치와 제도가 미쳐 손을 뻗지 못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무기력하게 희망을 잃을 수밖에 없는 불안감이 조성되었다. 자본과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있던 민주적 시스템이 새로운 환경에 느리게 적응해 나가는 동안 개개인들은 그 시간을 버티기 시작했다. 불안과 두려운 미래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 여러 현상 중 다른 사람과 더 이상 공존하지 않으려 하는 태도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편적 가치들마저 흔들고 있다. 


마음에 여유가 부족하여 우월감이나 열등감으로 스스로와 상대방에게 고통을 만들게 된다. 이때, '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건강한 방식으로 성공을 추구하는 방탄소년단은 '나'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자 하는 아미를 만나 함께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한다. 한 명의 개인으로서 이전보다 점점 더 높아져 가는 자본이 정하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과 상관없이 '나'가 '나'이지 않은 모습은 절대 고르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을 수 있다. 의지가 모이면 함께 믿을 수 있는 공동체가 형성된다. 아미는 방탄소년단을 맹목적으로 소비하는 등급별 고객이 아니라 평등하게 '나'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축제의 참석자다. 현장에 도착해서 서로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스스로의 감정과 고통을 음악으로 표출하는 것을 인간이 향유하는 문화라고 부른다. 


'나'의 아름다움이 축제의 현장에 발 길을 모을 원동력이었다면, 그만큼 '나'를 부정하고 틀렸다고 말하는 외부의 힘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남을 사랑하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한 싸움과 전쟁을 일으켰다. 또 '나'만 사랑하고 남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을 '나'의 노예로 부리기도 했다. 지금은 법적인 노예는 없으나 전쟁은 실제 현실에서 진행형이다. '나'를 아름답다고 노래하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던 'Black'음악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장르와 분야를 개척했다. 재즈, 블루스, 가스펠, 힙합은 모두 현대 주류 대중음악의 핵심 뿌리가 되었다. 


방탄소년단이 직면해야 했던 음악적 어려움은 힙합 음악을 하면서 진짜 힙합인지 가짜 힙합인지에 대한 시선에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힙합은 미국 빈민가에서 출발하여 흑인들이 겪는 처참한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공식을 믿는 일부 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빈민가 출신에 비하면 풍족한 자본과 성숙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성장한 아이돌은 힙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선을 보낸 것이다. 본인의 출신 지역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그 본연의 어둡고 끔찍한 과거를 숨기지 않는 태도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의 표현법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백인이 아닌 흑인의 삶과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위에 성장 서사를 만들어서 핍박받았던 과거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미국 빈민가에서 태어나는 힙합 음악 아티스트들의 조상들 역시 아프리카에서부터 유럽인들에게 노예의 대상으로 여겨지며 겪은 고통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멀쩡히 살고 있었던 흑인은 아무 이유 없이 백인의 노예가 되었다. 아프리카 땅의 약탈과 수탈이 끝난 뒤에도 흑인들은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어 무역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고향을 떠나 도착한 미국 땅에서는 법에 의해, 문화와 언어에 의해 노예로 살아야 했다. 농장 산업이 활발했던 시기, 농장주들에게 채찍과 폭력으로 고통받았다. 1800년대 미국 남북전쟁이 끝났을 때 신분상으로 노예에서 해방은 되었으나 도시로 휩쓸려 들어간 흑인들은 권리도 힘도 없는 약자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 흑인은 같은 인간으로 살 권리를 위해 활발한 움직임을 펼쳤다. 1963년 노예 해방 100주년 평화 행진, 당시 운동의 리더 역할을 수행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노벨평화상 수상, 강한 투쟁을 이끈 말콤 X의 활약은 세계에 묵직한 메시지를 주었다. 


1965년 말콤 X가 암살당하고, 베트남 전쟁이 일어난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암살당했다. 몇 백 년을 슬픔과 고통을 감내했던 흑인에게 가장 상징적으로 활동한 이들의 죽음은 절망이었다. 이듬해인 1969년 여름, 흑인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였던 할렘의 마운트 모리스 파크에서 30만 명이 참석한 문화축제가 열렸다. 흑인 공동체는 붕괴하는 중이었고 분노와 폭력도 빈번히 일어나는 중이었다. 음악을 중심으로 모인 1969 할렘 문화축제는 상처를 치유하고 고통을 승화하는 영혼의 집결지였다. 흑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고 참석자들은 음식을 들고 나와 그 시간을 즐겼다. 아이들, 노인들, 여성들, 남성들이 모두 모여 "I am Black."을 외쳤다. 할렘에 살고 있었던 이들 중에 폭력과 범죄와 마약과 가까운 이들도 있었지만, 성실히 일하고 법을 준수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흑인이 대다수였다. 


그로부터 약 50년 뒤 뉴욕 메츠 야구팀 홈구장에서 흑인음악 중 한 갈래인 힙합을 모델로 한 방탄소년단은 2018 월드투어 콘서트를 개최했다. 해당 축제에 참석한 이들의 연령대와 인종은 다양했다. 아시아, 흑인, 백인, 라티노와 같은 인종이 섞여 5만 명이 한데 어울린 곳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다양한 인종이나 연령대의 아미는 방탄소년단이 추구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거나, 아미라는 공동체가 주는 아름다움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이었다. 1969년 할렘 문화축제 참석자와 BTS 월드투어에 참석한 아미의 분모는 '나'를 사랑하는데 믿음을 더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했다는 것이다. 


2022년 방탄소년단은 9년간의 단체활동을 마무리하고 앤솔로지 앨범을 발매했다. 그리고 1969년 여름 할렘 문화축제가 끝나고 가을이 찾아왔다. 당시를 기록한 영상은 2021년까지 한 번도 상영되지 않았다. 당시에도 문화적으로 주목을 끌었던 건 우드스톡 축제였고, 달 착륙 사건이었다. 미디어와 산업적으로 기억되지 않은 할렘 문화축제는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치가 지속될 수 있었다. 공연을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개가 되는 건 무대 위의 뮤지션들이었지만, 그들이 떠난 뒤에도 참석자들은 스스로를 향해 "I am Black."이라고 외칠 수 있었다. 겉모습은 한국인이나 흑인으로 보이고, 음악 장르는 힙합으로 들려도, 밖에서 보기에는 가벼운 오락으로 해석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참석자의 자랑스러운 마음을 공유한 기억이다. 문화가 있는 축제에 참석한다는 것은 '나'를 향한 설렘으로 북적이는 곳에 입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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