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산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 리뷰
모든 이들의 이해관계를 한 번에 충돌시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한국에서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것이다. 한 지역에서 2년마다 열리는 미술축제인 '비엔날레'는 딜레마가 곱해진 상태로 꾸준히 운영됐다. 전시기획자는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서 울며 겨자를 먹는다. 지방자치단체는 생각보다 적은 관광 활성화 효과에 갸우뚱한다. 작가는 생각보다 밋밋하다는 평론가의 평가에 마음이 좋지 않다. 관객은 불친절한 현대미술이 부대껴서 외면한다. 지속된 어려움이 있었으나 2022년까지 도착한 부산 비엔날레는 이전과 다른 희망을 보여줬다. 악조건 속에서 새로운 빛을 키울 수 있을 것인지, 향후 닥칠 제한과 한계에 꺼져버릴 불일지 리뷰한다.
한국의 경우, 1995년부터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국제적 성격을 가진 '광주 비엔날레'를 개최했다. 세계의 경우 19세기에 시작한 베니스 비엔날레가 가장 유명하다. 20세기 중반부터 활성화된 휘트니, 상파울루, 시드니, 이스탄불, 리옹 등에 비엔날레가 있다. 부산은 지역 미술축제들을 통합하여 1998년 '부산 국제아트페스티벌'을 개최했고 2002년부터 지금의 '부산 비엔날레'로 명칭을 바꿔 2년마다 짝수 연도에 열고 있다.
부산 비엔날레의 숙명은 여러 상충되는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만의 지역성을 담아내야 하는 제일의 조건이 우선한다. 누군가는 부산 출신 작가들이 활약해야 한다고 하지만, 국제적 성격을 반영해서 외국 작가들이 쉽게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해외 인사들을 초청하고 그들이 방문하는 만큼 지역의 관광상품으로써도 가치를 기대받는다. 동시에 신진작가들의 등용문이 될 만큼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늘 뒤따른다. 지역 축제인 만큼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 최대한 흥미로운 형태로 보여야 한다. 또 은근하게 다른 아시아 지역 미술축제에 비해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경쟁심리도 작용한다. 이러다 보니 여러 주체들 간 미스매치가 자주 일어나곤 했다.
우려 속에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였던 2022 부산 비엔날레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새로운 기준과 시도를 해야 하는 타이밍에서 주어진 과제에 나름의 답을 제시했다. 3가지 주요한 시도가 있다. 40대 젊은 기획자가 새로운 시선으로 전시를 감독한 것,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되어 화제인 이미래 작가가 참가한 것, '물결 위 우리'라는 시의적인 주제를 내세운 것이다. 더 이상 과거의 네임밸류를 쫓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향해 다가선다는 의지, 결심을 내비친 것이 주효했다고 보인다.
2022 부산 비엔날레 전시감독 김해주 씨는 1980년생이다. 2년 전, 2020년 부산 비엔날레 감독은 1970년생 덴마크 출신 야콥 파브리시우스 전시기획자였다. 또 6년 전, 2016년 부산 비엔날레 감독은 1968년생 윤재갑 큐레이터였다. 이번 인사는 유럽을 무대로 한 외국인이나 국내 전통적 인물을 선임하던 틀에서 벗어난 것이다. 김해주 씨는 부산 비엔날레 감독 공모에서 부산에서 초, 중, 고 학창 시절을 보낸 경험과 2006 부산비엔날레를 코디네이터로 참여한 이력으로 차별점을 내세웠다. 부산의 내부자이면서 같은 시대 새로운 주제와 흐름을 불어넣을 수 있는 시선을 동시에 제시한 것이다. 하나 마나 한 비엔날레에서, 해야 만 하는 비엔날레로 만드는 계기를 한 인물을 통해 마련한 셈이다.
2017년부터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으로 재직한 김해주 감독은 백남준 아트센터, 국립극단, 광주아시아문화전당, 서울시립미술관 등의 전시기획을 책임졌던 인물이다. 그가 아트선재센터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아트선재 전시공간은 한국 미술의 프로작가와 스타작가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매력을 뿜어내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올해 2022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초청된 작가로 화제를 모은 이미래 작가 역시 2020년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캐리어즈》을 열어 작가로서 한 단계 도약을 한 바 있다. 그리고 부산 비엔날레는 이미래 작가에게 공교롭게도 가장 큰 전시 공간을 내주었다.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미래 작가는 미술계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2022 베니스 비엔날레 전체의 주제와 성격을 대표하는 본전시에 참여했다. 본전시는 총감독이 주제를 선정하여 각국의 작가를 초청하여 기획하는 형식이다. 그는 이전에도 제15회 리옹 비엔날레(2019)에 참여하며 해외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로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개인전 《캐리어즈》(아트선재센터, 2020), 《낭만쟁취》(인사미술공간, 2014)을 선보인 바 있다. 2019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 로비에 2년간 상설 전시로 <같이 있고 싶다고>라는 작품을 걸었다.
대중의 시선에서 이미래는 미술계 인물 중 봉준호, 한강, 임윤찬과 같은 세계적 예체능 영웅 위치에 가장 근접했던 작가다. 아카데미상, 맨부커상, 콩쿠르상 등처럼 베니스 비엔날레의 황금사자상은 그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번 2022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흑인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이 수상을 했지만, 언제든 그다음을 노려볼 수 있는 작가인 건 분명하다. 화제를 모으는 작가의 콘텐츠를 섭외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가 구사하는 설치미술 장르는 세계적 기준에서 가장 주요 흐름으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래 작가의 기괴한 작품이 주목받고 있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닌 셈이다.
이러나저러나 현재 진행 중인 세계 미술 물결에서 여성이라는 화두를 무시할 수 없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초청작가, 수상작가는 여성 중심이었다. 이는 1990년대부터 진행된 도전과 저항의 결과이다. 금기시되었던 주제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돌파하는 것이 미술의 본질이라면 가장 최근의 변화는 신체에 대한 해석이었다. 일찍이 이 주제에 동참하여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불 작가의 성공 역시 그녀가 흐름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이불 작가가 터놓은 논쟁터를 지난 현장에 이미래 작가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페미니즘' 작가로 터부시 되지 않고 예술가로서 가능성을 기대받는 건 작품이 제 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래 작가는 기괴함을 생산한다. 관객에게 괴물로 보이는 작품은 추함이라는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세계 어느 곳에서 피하고 싶고 버려진 곳에 만 있는 부정적 형상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 내는 것이 이미래의 저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안에서 파생된 질문은 인간, 성별, 정상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까지 뻗어나간다. 끈적한 액체, 꿈틀거리는 괴물, 더러운 색채는 불쾌한 촉각 경험을 연상시킨다. 애써 감각하려 하지 않지만, 모르지 않는 인간 신체의 변화를 표현한 작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미래의 2022 부산 비엔날레 참가는 생각보다 강력하다고 볼 수 있다.
김해주 감독이 결정하고 이미래 작가에게 내어준 전시 공간은 부산 영도 폐공장이다. 영도는 1930년대부터 조선 공업의 중심지였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피난민과 실향민의 터전이었다. 한국 최초의 근대 조선소가 지어진 곳이기도 하다. 2000년대가 되면 조선업이 쇠퇴하기 시작한다. 부산광역시 영도구 해양로 207번지에는 선박 의장품, 조립 금속품, 산업기계를 제조하던 송강중공업의 역사가 담긴 폐공장 건물이 남아있다.
<구멍이 많은 풍경: 영도 바다 피부>는 건축공사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 가설물인 '비계'이면서 노련한 설치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이 놓인 공장의 지붕과 벽체는 태풍으로 날아갔다. 이미 하늘과 구름과 바다가 골조 사이로 보이는 건물 안에서 또 하나의 구조물을 마주하는 것이다. 비바람이 불면 금방 너덜너덜해지는 공사 가림막에 폐유가 묻어있다. 철근은 반듯하지 않고 비스듬하게 연결되어 있다. 100개가 넘는 파이프가 위태로워 보이게 조립됐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면 수십 개의 불규칙한 사각형 사이로 파란 하늘이 분산되어 보인다. 빠져나가기 힘든 공간에 삼켜져 빨려 들어온 관람객의 몸은 위축된다.
핵심은 이 공간 안에서 무엇인가가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좋지 않은 구조물, 튼튼하지 않은 장소에서는 무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똑바르게 대칭되지 않는 것은 당황스럽다. 아찔하고 수치스럽기도 하다. 커다란 크기의 조형물이 점점 감정을 매개하는 걸 받아들인다. 기괴한 생명체를 보고 마주해야 하는 공포는 우리가 일상에서 치워버린 더러운 것의 등장이다. 피부를 벗겼을 때의 고통만큼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을 만난다는 게 꽤나 버겁다. 여기서 2022 부산 비엔날레의 주제와 맞닿은 이미래의 구멍이 다가온다. 대도시 속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일종의 포털을 빌려주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간의 연약함과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떠올리게 된 우리에게는 이러한 미적 경험이 필요하다.
부산 비엔날레는 예전부터 미술관처럼 지정된 공간에서 전시하는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요트경기장, 고려제강수영공장,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 등 부산의 폐산업시설과 문화 소외지역을 전시장으로 선택한 이력이 있다. 도심 재생에 기여한 셈이다. 지역 홍보와 수익 만을 목적으로 두지 않고 특수성과 장소 특정성을 고려하는 시도였다. 이번 역시 부산현대미술관을 포함해 특정 지역 4곳에 각기 다른 전시 형태가 펼쳐져 있다.
부산현대미술관이 위치한 낙동강 하구 을숙도는 다양한 생물 종이 살았던 곳이다. 하지만 80-90년대 전국적 산업화로 인해 훼손되었다. 부산시는 2018년 환경 보전과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현대미술관을 세웠다. 현대미술관에 이어 주 전시장으로 활용되는 부산항 제1부두 창고부지는 2022부산비엔날레 개막을 기점으로 첫 공개된다. 1970년대에 지어진 이곳은 무역과 이주의 관문이었다. 실제 부산 사람이 살던 초량의 '집'은 거주민들의 삶과 이야기를 품는 장소가 된다. 한 때 무역과 노동의 중심지였던 영도 조선소는 조선업의 쇠퇴로 흔적만 남은 폐공장이 되었다. 역시 전시 장소로 활용된다.
해당 장소는 '물결 위 우리'라는 주제를 끌어올리기 위한 공간으로 승화된다. 2022 부산 비엔날레는 이례적으로 시의적인 주제를 내세운 전시였다. 더 이상 과거의 네임밸류를 쫓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향해 다가선다는 의지, 결심을 내비친 것이다. 그전까지 조직위원회나 전시감독의 가장 주된 고민은 한국적 미술의 발견과 세계 속 한국 미술의 저력을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이제는 새로운 기준과 시도로 전환해야 하는 순간이다.
'물결 위 우리'라는 제목은 일종의 강도 높은 주장이다. 방점은 '우리'에 있다. 예술가들은 전체 사회나 집단에서 벗어나 색다른 목소리, 특이한 시선을 제시해 온 사람들이다. 국공립 미술관 기획자들은 언젠가부터 공동체를 상징하는 '우리'를 공공연하게 입 밖으로 꺼내고 전시의 주제로 삼는 경우가 최근 들어 늘어났다. △경기도미술관 <우리와 당신들>(2021)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기획전 <미술원, 우리와 우리사이>(2021) △서울시립미술관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2021).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같은 년도에 '우리'를 전시 제목 속 빈번하게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산 비엔날레'의 경우 전시감독을 통해 세계적 팬데믹으로 단절된 공간에서 변화를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우리'를 주제로 삼았다고 밝혔다. '물결'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을 연결 짓는 매개를 상징한다. 25개국 64 작가와 팀, 총 80명이 참여했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오세아니아의 예술가들이 출품했다. 다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때라는 판단이자 메시지이다. 부산의 역사와 도시 구조의 변천 속 이야기들이 역동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부산은 곧 물결이 들이닥치는 취약한 공간에서 주민들이 함께 살고 터전을 만든 하나의 예시인 셈이다.
해방 이후 전쟁, 산업화 이후 4차 산업으로 인한 인구감소, 피난민과 이주민의 조우, 이 모든 키워드가 부산 안에 깃들어 있다. 팬데믹 3년 차인 2022년은 해답이 없는 시기다. 한국 전쟁 이후 부산이 그러했듯, 빠른 산업화를 겪어야 했던 부산이 그랬듯, 그다음을 탐색하고 나아가야 하는 때다. 비엔날레는 '세계화' 추세에 맞춰 국제적 성격이 부각된 축제였지만 현 상황으로서 당시의 글로벌리즘이 살아있다고 보기 어렵다. 지역 간 불평등, 환경 파괴, 국가 갈등이 고조되가고 있는 것이 현재이기 때문이다. 김해주 전시감독, 이미래 작가의 작품, '물결 위 우리'라는 주제는 부산 비엔날레여야 만 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부산은 국가, 생명, 지구의 변화 중 일부이면서 전체적 흐름을 상징한다. 그래서 부산 비엔날레가 질문을 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명분이 생긴다.
주최 측에서 화두로 삼은 '이주', '노동과 여성', '도시 생태계', '기술 변화' 이 4가지 키워드가 시의적 주제인 것도 분명하다. 부산의 오래된 구체적인 사건들은 분명히 현재와 미래에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이 모든 주제를 함축하는 이미래 작가가 설치한 구멍이 다가온다. 대도시와 연결, 교차, 반복하는 구조를 볼 수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눈인 작품을 제안했다. 서로 다른 우리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단단하게 물결을 딛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자는 주제에 공감할 수 있다.
2022년 부산 비엔날레는 최소한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 근거를 제시했다. 서구의 비엔날레를 모방하고 답습하는 곳이 아니라 새로움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렘은 강력하다. 색다른 아이디어와 관점으로 지금 시대를 바라볼 수 있는 콘텐츠는 관객을 모을 수 있다. 여기서 만 볼 수 있는, 여기에 와야 만 느낄 수 있는, 여기에 있으면 시대의 산증인이 되는 쾌감이 마련되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칭찬받는 작가들이 부산 비엔날레에 와서 함께 하고 싶도록 부산 비엔날레에서 만 시도할 수 있는 기회 역시 필요하다. 이곳을 통해서 함께 성장하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앞당긴 현재와 미래에서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보다 현재와 미래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조명하고 캐치하고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일들이 미술인들에게는 급선무가 되었다. 기술이나 지식이 앞으로 어떻게 방향을 찾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각적으로 예측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의 언어는 그 자체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여기서부터는 파리1대학에서 유학을 했건, 독일에서 미학 전공을 했건, 누가 더 설득력 있게 시의적인 주제로 전시가 가진 힘을 발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매체와 재료의 다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어떤 주제로 어떻게 담론을 형성해 나갈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그것이 박물관과 비엔날레의 가장 큰 차이인데, 부산 비엔날레는 이번 '물결 위 우리'라는 시도에서 그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아직은 지역경제활성화, 참여 관객수의 급격한 증가, 부산 비엔날레 이름이 주는 값이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 길로 가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을 놓았다고 보인다. 관객들이 원하는 것만큼 현대미술이 쉬워질 수는 없을 것 같다. 현대미술이 쫓아가야 하는 길은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복잡한 세상에서 조형이 되었든, 회화가 되었든, 기괴한 설치물이 되었든, 그 현상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해방될 수 있을 것 만 같은 미적 경험을 주는 것이라고 본다. 이번 변화를 부산 앞바다를 비추는 등대로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을지, 잠깐의 불꽃처럼 켜졌다가 금방 꺼질 등불이었는지는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