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유 스팀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라떼아트는 아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표면 위로 작고 거친 거품이 생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우유 스팀을 하면서 후반 롤링 작업으로 우유 위로 떠있는 작고 거친 거품을 제거해야만 했다. 또한 우유 스팀 완료 후 피처 바닥을 쳐서 남아있는 거품을 깨는 것을 반복해야만 했다. 우유 스팀 슬럼프가 시작된 것이다.
계속 바닥을 탕탕 치니 작은 카페 안이 시끄러웠다. 왜 자꾸 우유 스팀을 할 때마다 이러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생각해보았다. 그리고...‘나는 한결 같이 잘하고 있기에’ 스팀 노즐이 뭔가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렸다.(사람은 남 탓하기 쉬운 존재다.) 나에게서 문제를 찾지 않고 기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엔지니어에게 전화를 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연락이 닿지 않아 기계의 이상한 점을 좀 더 발견하고 연락하기로 했다. 일단 기계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니 사소한 것이 다 이상해 보였다.
그렇게 기계 탓을 하며 보내던 어느 날. 단골손님이 지인들을 데리고 카페에 왔다. 우리 카페 커피가 맛있다며 지인을 일부러 데려오셨는데 그날도 우유 스팀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카페라떼를 주문했던 한 분이 한 모금 먹은 후에, 최근에 여행을 갔는데, 참 맛있는 커피를 먹었다며 그 바리스타가 실력자였다고 입을 여셨다. 그리고는 “여기도 맛있네!” 라며 말을 덧붙였다. 듣고 흘리려 했지만. 말하지도 않은 손님의 말 이면에 내포된 것을 나는 자꾸 곱씹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곱지 않은 우유 거품이 그분 컵에 담겨 있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하필 우유 스팀 슬럼프가 왔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상상까지 더해지니 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무언가 상황이 어려울 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타인의 그저 흘러가는 말들이 가슴에 박힌다. 왜 하필 그런 때에 그런 말들을 하는 이들을 만나게 되는 것인지 신기하기도 하다. 아마도 내가 그 문제에 예민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일이 있을 때 두 가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이대로 퍼져서 상처 받을 것인가. 다시 벌떡 일어나 성장할 것인가. 어떤 상황이든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나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전에 바리스타 과정을 배우면서 필기했던 것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막연히 기계 탓을 하지 말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명히 발견해야 했다. 우유 스팀 할 때 처음 배웠던 것을 상기하며 하나하나 그대로 정확하게 스텝을 밟아나갔다. 그렇게 몇 번 해보니 한동안 의문만 거듭하며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점을 결국 발견했다. 고운 거품이 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스팀 팁을 담그는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서였다. 다시 말해 스팀이 분사되는 위치의 문제였다. 기계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내 탓이었다. 나는 왜 스팀 팁을 다른 곳에 놓고 스팀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눈으로 뻔히 보면서 왜 깨닫지 못했을까?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씻고 다시 보니 머리가 환해졌다. 기본을 다시 깨닫고 나니 우유 스팀이 완전해지는 방법을 하나 더 깨달았다. 스팀 완드와 피처의 각도를 발견한 것이다. 스팀 완드의 각도를 조정하고 스팀 팁의 위치를 피처 안쪽에 정확하게 놓은 후 스팀을 시작하면 우유 거품이 곱게 만들어진다. 거친 거품이 날지라도 바로 잡힌다.
역시 슬럼프는 다음 계단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기 위한 과정이다. 멘붕과 스트레스가 밀려올지라도 잠식당하지 말고 정신을 가다듬고 문제를 제거해야 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 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말을 할지라도 힘을 내야 한다. 그건 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한 울림이니까. 어느 상황이건 좌절하지 않고 내가 진화하는 방향을 선택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 다짐해본다. 어려운 그때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