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마트에 갔는데, 오늘따라 유제품 코너에서 미소 짓고 있는 아이유 얼굴이 눈에 환하게 들어왔다. 응? 나보고 사라는 거구나. 그렇다면 오랜만에 바나나맛 우유를 먹어볼까. 근데 어라, 소주 패키지 박스에서도 아이유가 한잔 하라고 웃고 있네. 음. 그렇지만 아침부터 카페 사장이 카페에서 소주를 들이켤 순 없으니 바나나맛 우유 4개 묶음 패키지를 얼른 바구니에 담았다.
오랜만에 먹으니 더 맛있다. 이것이 예전에는 '항아리 우유'였다. 30년도 더 넘은 추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1980년대의 어린 시절, 뻔질나게 들락거렸던 작은 가게가 생각난다. 미닫이 냉장고를 열어 항아리 우유를 꺼내는 조그만 나도 보인다. 그리고 그 시절 즐겨먹던 과자들이 가격과 함께 뿅뿅 생각난다.
뚱뚱하고 노란 자태를 뽐내는 바나나맛 우유의 그 옛날 가격은 350원. 주인 할머니에게 500원을 내면 조그만 손안에 100원짜리와 50원짜리 동전 두 개를 거스름돈으로 받은 기억이 난다. 새우깡은 투명한 패키지 봉지에 담겨서 100원. 초코파이도 투명한 패키지 안에 담겨서 100원. 가나초콜릿은 200원.
그때는 병으로 된 펩시콜라가 150원이었다. 88 올림픽이 임박했던 때, 펩시콜라에서 이벤트를 했었다. 우편엽서에 병뚜껑을 붙이고 임의의 숫자를 적어서 보내면 신문에 당첨번호가 발표되었다. 그때 이벤트에 당첨되겠다고 수많은 펩시콜라를 샀는데... 결국 당첨이 되었고, 그때 받은 88 올림픽 심벌 장식품은 아직도 내 방에 걸려 있다. 바나나맛 우유부터 펩시콜라까지 분홍색 천 원 한 장으로 다 살 수 있는 시절이었다. 짜장면이 900원이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 꼬맹이가 이제는 훌쩍 다 커서 40대 인생으로 들어왔다. 그때 걱정 같은 게 있었나 생각을 해본다. 과자 하나로, 작은 경품 하나로 행복했던 시절 아니었던가. 동생이 5살 아들과 함께 걱정인형을 만들면서 걱정이 있냐는 질문을 했었는데, 자기는 걱정이 하나도 없다고 했단다. 부럽다. 5살의 멘탈이여.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엄마, 아빠 말만 잘 들으면 되는 시절.
나는 걱정이 언제부터 생겼을까. 기억나는 최초의 걱정은 무엇일까. 거슬러가 보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럼 20년 전으로, 그리고 1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본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늘어가며 걱정과 염려가 늘어난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낑낑 앓으면서 꽤나 고민했던 일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 보니 다 별거 아닌 일들. 기억에 파묻혀서 일기장을 뒤적여야 생각나는 걱정과 고민도 있고 말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걱정을 가만가만 생각해본다. 그럼 지금의 내 걱정은, 십년이 지나고 내 나이가 오십이 되면 걱정이 안 될까? 결국 지금의 걱정도 내년에는 결국 별 일 아니게 되지 않을까. 불과 일 년 전, 여름에 앓던 걱정도 지금은 별일이 아니니까.
현재의 걱정에 침몰하지 않기로 한다. 침몰하는 순간부터 불안은 덤으로 올 것이니. 상황의 테두리 밖으로 한 발만 나와서 바라보면 그것이 다르게 보인다. 습관적으로 하던 많은 것이, 멈추고 밖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 그러니 무언가 나아지기 위한 고민이 아니라면,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하는 걱정이라면 던져버리기.
걱정은 걱정인형에게. 두려운 걱정말고 희망이 있는 고민을 하자.
그러다 보니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에 마음을 쓰기보다 ‘무엇을 시도하고 싶다’의 마음이 더 생긴다. 내가 50살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시작하여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가며 조금씩 변화될 수 있는 일. 글쓰기와 운동, 무엇을 배우든. 한결 같이 꾸준히 해볼 수 있는 거 말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거다.
인생은 어디론가 흘러가는 거지만, 닻을 올려서 시작하고 방향을 잡는 건 내 몫이니까. 여전히 늦지 않았다. 지금 시작해도 되니까. 게으르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지금의 내가 나아지기 위한 최선만 생각할 거다. 그리고 행복해질 수 있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