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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y 09. 2023

합리화하는 해결책이란?

맛있는 원두를 찾았는가? _ 2편

https://brunch.co.kr/@kyunghee2020/36

++맛있는 원두를 찾았는가!_1편






2022년의 봄. 오랫동안 괜찮았지만 갑자기 생긴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 위해 개업 때부터 6년 동안 주문했던 원두업체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코로나가 곧 끝날 것과 새로운 손님들이 이곳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예상과 달리 2월과 3월 다시 감염자가 속출하였지만..)


그리하여 그때부터 다른 원두를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로스팅 업체를 검색하다가 한 업체의 홈페이지를 우연히 발견하고 들어가 보았다. 들어가자마자 한눈에 보이는 홈페이지의 메인 디자인은 내 취향이었다. 각 카테고리와 원두를 설명한 문장까지 말이다. 원두를 다양하게 로스팅하고 있고 홈페이지의 가독성이 좋으니 원하는 원두를 선택하기에도 좋다. 그리고 연결되어 있는 배송업체는 늘 신속하게 배송해 주는 택배기사님의 회사다! 이곳을 이용한다면 이전에 불편했던 것들이 일단 편안해질 것 같으니 다른 곳보다 본능적으로 마음에 든다. 업체에 바로 전화를 해서 문의를 한 뒤 원두를 이곳에서 찾기로 해본다.   

        



+그때는 그랬지. 금세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새로운 원두업체에서 어떤 원두로 시작해 볼까 고민하다가 기존에 오랫동안 쓰고 있었던 케냐와 과테말라 원두를 먼저 주문해 보았다.(기존원두와 지역은 달랐다.) 그러나 기대만큼의 맛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원두를 주문해 보기로 했다.


여러 나라의 원두를 한꺼번에 주문하여 테스트를 해보니, 한동안 잊었었던 나라별로 특색 있는 원두의 맛이 혀끝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각 나라별 싱글빈의 독특한 맛들을 느껴보다가 원두설명이 매력적인 블랜딩 원두도 다양하게 시켜본다. 그렇지만 몇 가지 원두가 조합된 블랜딩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렇게 매일 몸속으로 과도하게 카페인을 투여하는 혼돈의 테스트 끝에 다행히 내 취향인 싱글빈 몇 가지를 발견했다. 일단은 원두를 교체하여 판매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봄을 지나 여름이 곧 올 것만 같던 어느 날. 맛있었다고 선택했던 싱글빈의 맛의 다름을 마주한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동일한 나라인데도 원두의 맛이 균일하지 않아 업체에 문의를 했다. 구매날짜에 따라서 로스팅 변수가 있었는지도 궁금했다.


그랬더니 답변은.

생두도 농산물이다 보니 한 상자의 사과가 다 같은 맛이 아니듯이 맛이 다를 수 있고...

대량으로 로스팅을 하다 보니 쿨링 작업에서 변수가 있을 수 있고...    

 

아무튼 균일한 맛을 내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지만 매번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어느 정도 맛의 차이는 있을 수 있고, 무엇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지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답변을 듣고 보니 수긍도 어느 정도 되었다.


또한 생각해 보니 로스팅 이후부터 맛은 계속해서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을 간과했다. 기존의 사용했던 원두는 변화되어가는 맛이 익숙했다. 그렇지만 새로 만난 원두는 맛의 변화가 익숙하지 않으니 균일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러니까 새로 만난 원두와 친해지고 있는 과정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특색을 알아가며 함께 할 수 있는지 가늠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래저래 나도 맛의 균일함에 대한 허용범위를 조금만 더 넓혀서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균일함에 대한 허용범위를 넓혀본다는 것은 커피맛의 균일하지 않음으로 오는 스트레스 지수를 스스로 좀 낮춰보겠다는 합리화다. 결국 매번 부딪치는 '맛'에 대한 고민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직접 로스팅' 뿐이므로. 내가 직접 로스팅하지 않는 한 이것은 늘 하게 되는 고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로스팅을 하게 된다면? 분명 긴 고통의 시간이 시작되겠지만 매번 고민하던 그 맛을 나의 만족과 합리화의 균형을 맞춘 맛으로 결국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현실적인 여건상 지금은 원두를 구매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합리화하는 합리적인 해결책이 튀어나오다.

    

그러다가 생각은 다시 나아가서 카페 운영을 몇 가지의 원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나라의 원두를 사용하는 에스프레소 기반 커피를 손님에게 선보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싱글빈을 나라별로, 주기적으로 자주 바꾸기로 했다. (내 취향이 아닌 원두도) 소량으로 원두를 주문하여 짧은 기간 동안 원두를 교체하니 단골손님들도, 새롭게 방문한 손님들도 흥미롭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한 원두의 맛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적당히 하자'가 여기에도 적용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드립의 느림으로만 체험했던 원두를 에스프레소로 추출해보고 싶다. 다양한 향미의 원두를 다양한 추출방식으로 시도한 커피를 손님들에게 선보이고 싶다. 스페셜티 원두라고 브루잉으로만 한정된 방식으로 추출하고 싶진 않다. _'이래 봬도 카페 사장입니다만' 중에서.  



문득 생각이 난다. 맞아!! 오픈초기 때는 다양한 원두의 다채로운 맛을 선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6년 차가 되어 그것을 어쩌다 에스프레소로! 드디어! 시도해 본 것이다. 창업 후 고정해서 사용한 싱글빈의 그라인더 분쇄도 오차는 거의 없었고, 추출컨디션은 원두 가루의 양과 탬핑 압력으로도 대부분 조절이 되었다. 또한 맛의 만족도도 좋아서 언젠가부터는 굳이 다른 나라로 교체하려고 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니까 브루윙으로 다양한 원두를 사용하기는 해도, 번거롭게 에스프레소로 하기는 꺼려졌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원두가 다양해지고 소량으로 원두를 주문하여 교체 주기가 빨라지니 분쇄도가 굉장히 번거로워진다. 원두를 교체하는 순간에 손님이 오면 음료를 기다리는 손님의 대기시간은 길어진다. (분쇄도를 맞춰야 하니까) 그것에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역시나 균일한 맛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자 다양한 원두를 사용하니 그에 못지않은 다른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이곳으로 가나 저곳으로 가나 스트레스는 어디에나 비슷하게 존재한다. 그러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서 적당히 타협해야 한다. 어쨌든 로스팅을 하면 스트레스가 매우 많아질 테니 애초에 그쪽으로 가지 않은 것이고, 원두구매 이후에 오는 스트레스는 선택적으로 충분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익숙해지기 마련.


시간이 좀 더 흐르니 다양한 원두를 사용하는 것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나라별로 분쇄도 숫자를 기록하니 원두를 교체할 때 분쇄도 범위가 혼란스럽지 않고 수월해진다. 예를 들어 사용했던 원두인 '인도네시아〈 탄자니아〈 케냐' 분쇄도의 크기가 이렇다면 인도네시아를 추출하다 케냐원두로 교체하여 넘어갈 때 분쇄도 눈금을 좀 더 크게 옮겨가는 거다. 또한 원두 교체 횟수가 계속 축적되니 원두의 연하거나 진한색상(로스팅강도)의 작은 차이만으로도 기존에 고정했던 그라인더 분쇄도의 눈금을 먼저 어디 방향으로 옮길지 (숫자를 크게 할지, 작게 할지) 어림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분쇄도가 딱 맞았을 때의 소소한 희열이란!! 물론 여러 가지 변수 요인은 많다. 로스팅 강도뿐만 아니라 로스팅 후 에이징(디게싱) 시간, 추출 당시 날씨와 온도 등등.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날 원두도 예민해진다.)  


그렇게 분쇄도를 조절하며 스스로의 기술력? 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케냐커피를 즐겨 먹던 단골손님이 방문했다. 그런데 케냐커피의 맛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커피맛이 예전 같지 않다며 자신이 좋아했던 맛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원두업체의 답변을 기반으로 나의 생각과 함께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정성스럽게 대답했지만 '맛이 예전 같지 않다'라고 하는 손님에게 하는 변명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님이 가고 나서 불현듯 깨달았다. 손님이 예전에 마셨던 커피는 케냐 '오타야'였고 현재는 케냐 '키암부'였다는 것을 말이다. 맛이 다른 건 당연했다. 결국 변명 가득한 답변을 한 꼴이 되었다.


본질을 잊어버린 채 방향성을 잃고 나아가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솔직하게 나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나는 지금 커피 맛에 만족하는가?'

나는 어디까지 합리화하며 맛에 타협한 것일까?



    




++3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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