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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Nov 14. 2024

카페 8년 차. 최악의 손님을 마주하다.

돈봉투는 찾으셨나요?


어느덧 8년 차 카페 사장이 되었다. 카페를 개업한 지 8년이 되어가면서 별별 손님은 다 겪어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아주 인상적인 손님을 따뜻한 봄날에 마주하게 되었다. 


두 명의 여자손님이 들어왔다. 한 명은 가끔씩 오던 손님이고 다른 한 명은 처음 온 손님이었다. 카페에 오자마자 손님들은 화장실에 각각 들렀다. 돌아와서 음료를 마시며 손님들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시간 동안 홀 손님은 그분들 뿐이었다. 그렇게 세 시간이 넘어갔을 즈음.       


"어머나 너무 오래 있었네. 화장실 갔다가 이제 나가야겠다."  

    

다시 화장실을 다녀온 후 손님들은 카페를 나갔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손님들이 나간 후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손님들이 앉았던 자리를 정리하고 테이블을 닦았다. 그날따라 구석구석 더 박박 닦았다. 다른 손님의 방문 없이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났다. 한가로운 날인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외출 중'의 쪽지를 붙여놓고 카페문을 잠그고 개인적인 일을 하러 나갔다. 


카페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카페에 처음 방문했었던 손님(세 시간을 대화하던)이 다른 지인을 데리고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또 드시러 오셨다는 반가운 마음에 "아이고, 죄송해요!" 하며 빠른 걸음으로 와서 카드키를 대고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문을 급하게 열다가 느슨했던 운동화끈까지 밟아서 풀어졌다. 나는 손님들을 먼저 들여보낸 후 빠른 걸음으로 따라 들어와서 카운터 안쪽에 섰다.

   

반가운 마음으로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손님은 음료주문이 아닌 다른 말을 다짜고짜 던졌다.    

    

“제가 집에서 30만 원을 넣은 봉투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왔는데요, 왔던 곳은 카페밖에 없어서요.” 

(카페에서 나간 후 두 시간 뒤에 와서 하는 말이다.)     


여기까지 듣고서는 불현듯 ‘돈 빌려달라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기꾼이 이전에 한번 왔었기 때문이다. (참고_ https://brunch.co.kr/@kyunghee2020/34  )   



그래서 바로 대답했다. 


“아까 가신 후에 여기 떨어진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요~!” 

    

그런데 그다음말이 의아했다.


“CCTV 좀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요!” 


순간적으로 기분이 불쾌했다. 그렇지만  “네 그러세요.” 하고  핸드폰을 꺼내서 CCTV 어플을 열었다. 그리고 카운터 쪽에서 카페 홀 쪽으로 나오자 그들은 당연한 것을 요구하듯이 내가 서있는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 핸드폰을 어떻게 조작하는지를 다 보려 했다. 더 큰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다. 감정의 동요로 핸드폰을 터치하는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아까 저 왔을 때 녹화된 CCTV 볼 수 있죠? 그 시간으로 돌려주세요!” (당당하게)


막무가내로 하는 요구를 듣고 있으니 불쾌한 감정이 더 치솟았다. 그러니 손가락의 떨림이 계속 됐다.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치솟은 감정을 애써 짓누르고 말했다. 

   

“네, 볼 수 있죠! 그런데 여기 좀 앉으세요."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서 핸드폰화면을 응시하는 그들을 의자에 앉게 했다. 나는 내 핸드폰이 타인의 손에 있는 것이 매우 불편한 사람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건넸다. 녹화본을 빠른 속도로 볼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런데 손님은 가방을 놔두고 화장실을 다녀온 시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온 손님과 대화하고 있던 긴 시간을 다 보고 있었다.  

    

“카페에 오셨을 때 화장실 가셨을 때랑, 다 드시고 나간 시간만 보면 되지 않나요?”     


"아니에요!!" 손님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일단은 잠자코 CCTV 녹화본을 보고 있는 것을 지켜보다가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것 같아서 궁금했던 질문을 해보았다. 

 

“혹시 집에서는 찾아보셨나요?”    

 

“제가 집에서 봉투를 가방에 넣어서 여기밖에(카페) 안 왔어요!”     


이 말을 듣자마자 복합적인 불쾌한 감정이 섞여서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가장 큰 감정은 모욕감이었다. 그제야 나의 속마음을 바깥으로 표출했다.

     

“그럼 저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저 의심하시면 안 됩니다!!"  


내가 이 말을 하자 손님과 같이 왔던 지인은 지금의 상황이 무언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일이 많다고 집에 가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내 머릿속은 이 상황을 언제까지 허용해야 하는지의 생각으로만 가득 찼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의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나는 무표정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집에서 차분히 찾아보세요..."

       

"제가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요!"  손님은 핸드폰을 바라보며 반사적이고 공격적으로 대답했다.   

   

긴 시간 동안 CCTV 녹화본을 보던 손님은 음료를 다 마시고 카페에서 나간 후, 그 뒤에 내가 무엇을 하는지 행동과 동선까지 다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영상 끝까지 본인이 원했던 것? 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자 손님과 같이 온 지인이 먼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죄송해요" 하며 급하게 나가려 했다. 나도 최종적으로 할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제가 기분이 묘하게 안 좋은데요... 손님이 화장실 처음에 갔을 때랑 나중에 갔을 때, 제가 손님 앉았던 자리에 안 갔죠? 그리고 손님이 카페에서 나간 후에, 손님 앉았던 자리에서 제가 아무것도 줍지 않았죠? 봉투는 집에 가서 쫌! 차분히! 찾아보세요!!"    


손님은 내가 하는 말을 귓등으로 듣는 듯 가방을 빠르게 챙겨서 등을 돌리고 나갔다. 내가 하는 말이 다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나마 손님과 같이 왔던 지인은 민망한 표정으로 내 말을 다 듣고 손님을 따라 나갔다. 


빠르게 나갔던 손님은 잊고 간 검정봉지를 가지러 다시 들어와서는 그제야 “죄송해요!!” 하며 급하게 다시 나갔다. 나도 카페문쪽으로 빠르게 쫓아나가서 한번 더 말했다. "봉투는 집에 가서 차분하게 찾아보세요!"  내가 하는 말을 듣자마자 손님은 아까 했던 말을 재차 반복했다. 


“제가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요!!”    


그들이 가고 난 후 허탈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하지 못했던 말이 그제야 우르르 생각났다. 그 상황 안에서는 동요되던 감정을 제어하고 있었는지 별생각이 안 들었는데, 가고 나서야 한 가지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온갖 불쾌한 감정들이 썰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본인이 돈을 잃어버렸다는 상황은 타인을 마구잡이로 의심해도 되는 상황일까? 


그 손님은 자신의 돈을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그것을 주어서 가진 누군가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누군가는 내가 되었다. 자신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타인을 심증으로 설정하여 무례한 요구를 해도 되는 걸까? 나에게 이런 무례한 요구를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어떤 마음이 근원일까? 두고 간 것이 없다고 말했는데도 CCTV를 보여달라는 것 자체가 ‘내 돈 내놔.’ 아니었을까? 본인의 상상력은 무고한 타인을 어디까지 의심할 수 있을까? 


봉투가 없어진 걸 발견하자마자 타인을 의심하는 상상력. 그 손님의 상상은 어떠했을까? 

(녹화된 영상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던 손님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

 

1. 본인이 화장실에 갔을 때 내가 가방을 뒤져서 봉투를 훔쳐갔거나. 

2. 봉투를 떨어트리고 갔는데 내가 주운 후에 시치미를 떼고 있거나.  


나는 손님이 위의 두 가지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만으로도 모욕감이 치솟았다.


집에서 가지고 나왔다던 30만 원 봉투가 온데간데 사라진 것에 대한 다급한 마음도 이해해 보려 했다. 그렇지만 돈봉투 분실이 상대에게 무례함을 행할 수 있는 이유가 될까? 손님은 어떤 확신을 가지고 나에게 당당하게 요구한 것일까? 의심이 확신으로 옮겨지는 지점은 어디였을까? 


1. 내가 카페문을 닫고 자리를 비운 것 

2. 문 앞에 서있는 손님을 발견한 후 카페문을 열다 운동화 끈이 풀린 것(당황해서 스텝이 꼬인 것 같은 느낌)

3. 어플을 켤 때 손가락이 살짝 떨리는 것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손님에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가 되어 의심이 더 커지는 상황이었을까? (이런 사람에게는 내가 말하는 것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손님은 자신의 생각을 절제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했어야 했다. 카페에 와서 놓고 간 것이 있는지 확인 후에, 놓고 간 것이 없다면, 집에 가서 본인의 동선을 생각하며 돈봉투를 찾아야 했다. 이것이 일반적인 순서였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친구는 손님의 무례함에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경찰대동하고 오라고 했어야지! 각서도 쓰게 하고! 죄가 없다면 무고죄로 고소한다고 강하게 나갔어야지.”  


"나도 처음이라 그랬어... CCTV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딱 한 달 뒤. 나를 의심한 손님을 데려왔던 손님이 또 다른 지인을 데리고 방문했다. 

그리고 메뉴주문을 하기 전에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그 사람 여기 왔었죠? 너무 죄송해요!!"      


그때의 일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사람이 같은 교육장에 있는 사람들도 다 의심해서 제가 너무 난처했어요."

      

그 손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듣자마자 한 달 전 그때. 썰물처럼 몰려왔던 감정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듯했다. 그리고 '나만 의심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실소가 나왔다. 더군다나 30만 원이 든 봉투를 집에서 가지고 나와 카페만 들렀다고 하더니, 검정봉지를 건네받은 어딘가(근처 재래시장?)와 교육장 그리고 나의 카페까지 세 군데를 들른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유명인들의 사건이 오버랩되며 떠오른다. 무고한 그들이 유명인이기에 감당해야 할 무게는 얼마나 컸을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나고,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진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상상력으로 무고한 타인을 어디까지 몰고 갈 수 있으며

인간은 얼마만큼의 치욕스러움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일대일이 아닌 일대 다수라면 감당해야 할 크기는 더 커질 것이다.        


무고한 사람이 마주했던 억울함의 시간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슬프게도 다른 세상으로 가버렸다면 무엇으로 보상이 될까.                   






- 침묵 속에서 CCTV녹화본을 보여주던 그때. 


코로나 엔데믹 이후에도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영업은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는다. 

작은 카페의 영업도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희망을 보고 싶은 봄이었지만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던 그때. 

신기하게도 세상은 나를 더 무너지게 하는 상황을 안겨준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살 수 있다. 늘 하던 대로 할 것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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