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쏙 빼놓은 다음 당신의 현금을 노린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가 있으며 외부 출입이 쉽지 않았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사람들은 이전의 삶의 패턴으로 회귀 중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들어 카페 창업과 커피 교육 문의가 늘어났다.
여름이 끝날 무렵의 어느 날. 여자 손님 한 명이 카페로 들어왔다.
“커피 교육 문의 때문에 왔는데요~ 어제 왔었는데 여기 문이 닫혀있었어요~”
“앗! 죄송합니다! 제가 혼자 하다 보니 일이 생겨 잠시 어디 갔었나 봅니다...!”
손님은 바로 질문을 시작했다. '조카가 카페 창업을 생각하고 있는데 바리스타 자격증을 이곳에서 취득할 수 있는지, 커피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문의하는 것과 비슷했다.
나도 이런저런 질문에 삼십 여분을 상세하게 답변해 주었다. 그렇지만 자격증 취득이 목적이라면 학원을 등록하는 것을 추천했다. 그러자 손님은 일단 조카와 이야기해보고 다시 오겠다며 카페를 나갔다.
다음날 두시쯤 손님은 카페를 재방문했다. 조카가 이곳에서 일대일로 집중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손님에게 '마음이 급하겠지만 당장 창업을 할 것이 아니라면 일단은 학원에 가서 커피 관련 클래스를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바리스타가 자신과 맞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그러니 조카가 카페 알바를 일 년 정도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조카 이야기를 시작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요약해본다.
1. 조카가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혼자가 되었다. 본인은 이모인데 조카가 하고 싶다는 것을 도와주고 싶다.
2. 이 근처에 원룸을 지었다. 방이 20개다. 여성전용으로 지었다. 영등포에 모텔도 두 개 하고 있다. 원룸은 모텔 지을 때 일했던 사람이 지었다. 그 사람이 참 꼼꼼하다.
3. 원룸 건물 지을 때 주변에서 민원이 엄청 들어왔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심했다. 완공 후 주변에 떡을 돌리고 사과를 하러 다녔다.
4. 이제는 원룸에도 모두 세입자가 들어왔는데 건물 지을 때 너무 힘들었는지 어느 날 원룸 계단에서 쓰러졌다. 다행히 원룸 살던 사람이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00병원 응급실도 갔다 왔다. 갑상선 항진증이 생긴 걸 알았다. 갑상선 항진증 증상은...
손님은 사적인 이야기를 디테일하고 진솔하게 말했다. 그러던 중 손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마도 상대 쪽에서 '왜 그 동네'에 있냐고 물은 것 같다.
“나 이 동네 잘 알아~~!”
전화로 끊어진 대화는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손님은 돌아오는 월요일 저녁 일곱 시에 조카를 데리고 상담을 받으러 다시 온다고 했다. 나에게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여 좀 주저하다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자 자신의 핸드폰으로 나에게 전화했다.
내 핸드폰에 번호가 뜨자, "윤수0이에요" 라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나는 '카페 7번길'이라고 저장하시라고 했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의 대화를 마쳤다. 조카가 카페 창업에 관심이 많으니 오시기 전 내가 쓴 책 '이래 봬도 카페 사장입니다만'을 읽고 오시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사셔도 되고 이곳에서도 판매한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손님은 지금은 돈이 없으니 내일 책을 사러 다시 온다고 했다.(검은색 신용카드를 손에 쥐고)
틈이 없이 진행되었던 대화가 끝나고 손님은 나갔다.
그런데 손님이 1분 정도 뒤에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머뭇거리며 말을 시작한다.
“아... 이 말을 해도 되나 모르겠네... 어떡하지... 민망스러워서...”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내가 시장 가야 하는데 돈을 안 갖고 와서 그러는데. 2만 원만 빌려줘요~!”
"......"
나는 직감했다. ‘빌려주면 안 된다.’
“아... 죄송해요. 제가 만 원짜리는 별로 없어서요, 5만 원권 내시는 분들 거슬러 드릴 돈 밖에 없어요, 죄송해요!”
그러자 손님은 쿨하게 괜찮다며 나갔다. 문을 나가고 나니 정신이 든다. 사기꾼이었다는 판단이 빠르게 들면서 어이가 없으니 실소가 난다. 사기꾼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며 이야기를 들었다니...
그런데!! 한 시간이 흐른 뒤 그 손님이 다시 왔다. 응?? 사기꾼이 아니었나!! 무슨 일이지?!!
“다시 오셨네요~?!”
“혹시. 천 원짜리 5장은 빌려줄 수 있어요?”
'아! 정말 그럼 그렇지...' 나는 더 단호하게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손님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죄송해요!!
손님은 또다시 알았다며 나가고 그 이후로 다시는 카페에 오지 않았다. 손님의 행적이 궁금하여 녹화된 CCTV를 확인했다. 손님이 카페 안에서 대화하고 나간 후 옆쪽 건물로 걸어가 15초 정도 서 있다가, 2만 원을 빌리러 다시 카페로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왠지 내 카페만 들어와서 하는 짓은 아닐 것 같다. 며칠 시간을 투자하여 1인이 운영하는 개인 카페를 골라다니며 한 동네를 털어먹는? 수법은 아닐까. 그렇게 다음 동네로 옮겨 다니며 게임처럼 스테이지를 클리어한다고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작은 가게에 들러서 앞으로 무엇인가를 살 것처럼 신뢰를 주며, 더불어 본인의 재력을 이야기한 후, 은근슬쩍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무엇에 홀린 듯 설마 하며 빌려준 소액을 모아 자신의 밥그릇을 가득 채우는 범죄행위를 나는 맞닥뜨렸다. 나는 물질적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혹시 피해를 본 가게는 신고를 할까?
사람의 측은지심을 건드려서 소액을 가로채가는 수법도 아주 다양하다. 위의 사건을 듣고 지인은 자신의 경험담을 말해주었다.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차비가 없다며 5000원만 달라는 여자에게 차비를 주었다. 그런데 한 달 뒤 다른 곳에서 차비를 빌리고 있는 그 사람을 또 보았다고 한다. 그때의 마음이란. 허탈함과 다시는 도와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범죄가 왜 버젓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을까.(타인의 경험담도 많다) 소액을 가로채는 범죄는 당한 사람은 억울한 마음이 들지만 피해자가 신고하고 소송까지 가기에는 들이는 시간이 아깝다. 그러니 피해자는 '똥 밟은 셈' 치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고 사기꾼은 그걸 악용한다. 당당하게 상대에게 근접하여 막힘없는 언변으로 눈앞의 상대를 속이고 원하는 것을 얻는 성취감과 희열. 그리고 스릴감. 이것이 사기꾼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일까.
정신을 쏙 빼놓은 다음 당신의 현금을 노린다.
최선은 무엇일까?
그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씁쓸하다.
윤수0 씨. 다음은 어느 동네입니까?!!!
카페에는 사기꾼들이 가끔씩 방문한다. 아래 글은 노쇼 사기에 대한 글이다.
우리 정신을 바짝 차립시다!!
https://brunch.co.kr/@kyunghee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