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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Oct 12. 2022

부모님께 다정하게 말하기

여태껏 다정하지 않았다면.



이번 가을은 지난 2년 동안의 가을과는 다르다. 2019년도 이후로 대부분의 단체 행사가 중단되었다면, 올해는 가을 행사들이 속속 열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문득 2019년도 체육대회의 그 순간이 떠오른다. 내 생애 가장 인상적인 체육대회다. (역동적이었던 그때. 다음 두 해의 가을을 상상이나 했을까.)


어느새 2022년의 가을이 되었고 이제야 그해 가을의 글을 꺼내본다.





바람이 선선하고 하늘이 높아진 가을. 이때가 되면 각 단체에서는 체육대회를 한다. 나도 어김없이 참여를 했다. 일요일 이른 낮이 피곤할 만도 한데 모일 때는 풀린 눈을 하고 운동장에 걸어 들어오던 사람들이 경기가 진행될 때마다 눈이 반짝이고 승부욕에 불타오른다. 나도 비실비실 관중석에 앉아 있다가 릴레이 경기에 참여했고 상대편이 빠르게 달려와서 자기 팀 계주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것을 보고는 급기야 흥분을 하고 말았다. 내가 맡은 것은 뒤로 달리기였는데 뒤로 빠르게 뛰어가다가 결국 뒤로 날라서 자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왼쪽 팔목 뼈에 금이 가는 골절상을 입히고 깁스를 해야 하는 사태를 만들고 말았다.


지금 내 왼손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다. 내가 카페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라는 것은 지금 아주 불편하게 일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부모님께 염려와 걱정을 한껏 끼쳤다. 나는 인생샷으로 되기에 충분한 자빠지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그걸 본 엄마는 “너도 나이가 있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거야.” 이 말에 나는 감정이 일렁거림을 느꼈고 바로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엄마, 내가 넘어지고 얼마나 빠르게 일어났는지 알아? 나는 그리고 또 뛰었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니. 내가 엄마처럼 60대야!!?" 하며 괜한 서운함에 성질을 팍 내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카페에 출근하여 영업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고 깁스를 한 왼손을 보고 단골손님은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운동을 하다 넘어졌다는 말에 “우리 몸이 예전 같지 않아요.” 지인에게 골절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나이 먹으면 몸이 내 맘대로 안 움직여. 예전 너 어릴 때 생각하면 안 돼.” 이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웃으며 공감했고 바로 수긍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의 말에는 나는 왜 격분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왜 나는 엄마의 맞는 말에 쏘아붙여야만 했는가. 그렇게 가만가만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부모님께 다정하지 않게 말을 하고 있는 나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엄마와 나와의 내면. 만약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이것은 마치 켜켜이 쌓인 크레페 케이크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지인의 말들은 감정을 크게 흔들만한 작용을 못한다. 가족과는 다른 느낌이다. 피상적 관계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서운함을 한 장 쌓아주면 그냥 후 하고 날려버리면 된다. 그런데 가족은 다르다. 우리가 함께한 세월은 길다. 그 안에 있는 사연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아주 많은 우여곡절의 서사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그중에는 여전히 서운한 케케묵은 기억들이 몇 개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니 부모님이 그냥 의도치 않게 한 한마디는 서운함이 켜켜이 쌓인 크레페 케이크 같은 마음 위에 한 장이 턱 하고 더해지니 더 큰 묵직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긴 세월을 함께한 우리는 이제 어떤 말이 폭탄의 도화선이 되어 일촉즉발의 사태로 될 것임을 서로 안다. 서로에게 민감하고 예민한 말은 조심한다. 그렇지만 그냥 튀어나오는 의도치 않은 말까지 다 피해 가는 것은 무리다. 입장 바꿔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괜한 한마디에 토라지고 성질내는 마흔의 사춘기 딸을 보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지 않을까? 사춘기와 갱년기 사이에 있는 자식을 대하는 부모님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그러니 같이 늙어가는 사이에? 이제는 돌려드려야겠다. 마구마구 다정하게 마구마구 칭찬해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2020년 나에게 하는 약속은 이것이다.‘부모님께 다정하게 말하기.’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더 보내고 즐거움을 많이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유한한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하는 우리는 이제 다정해야만 할 것이다. (여태껏 다정하지 않았다면.)







YES24에서 진행했던 '나도, 에세이스트'에 응모하여 대상으로 선정된 글이다. (주제_2020년 나에게 하는 약속) 그리하여 2020년 1월호 월간 채널예스에 실렸다. 현재는 채널예스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심사평도 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40720









그때의 인생샷이다. 왼쪽 손목에 금이 가는 게 느껴진다.



2019년 10월, 가을에 골절된 손목은 겨울이 돼서야 깁스를 풀었고, 3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아주 가끔씩 미세하고 찌릿한 느낌이 뼈안에 흐른다. 이때 이후로 일상의 무엇이 달라졌을까. 교회 오케스트라를 중단하니 연습을 하려던 마음조차 서서히 잊혀져 바이올린은 덩그러니 방치되었다. 탄탄한 복근을 갖고 싶어서 밤마다 고통을 즐기던 근력운동 플랭크는 헐떡임 없는 스트레칭으로 바뀌었다. 손목에 뼈가 붙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뼈가 붙은지 한참인데도 중단했던 것들을 하지 않고 있다. 한때는 익숙한 것들이 이제는 어색해졌다. (소생시키는 것?은 점점 더 힘들다는 것을 안다.)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했던 것이었는데, 언젠가부터는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신체 일부의 단련은 멈췄고 기존의 습관은 다른 습관으로 대체되었다. 그렇게 일상의 빈 공간은 금세 다른 것들로 채워진다.


모든 일들이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은 나의 마음의 흐름이 어디를 향해가느냐 일까. 지금 내 마음은 어디를 향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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