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오후 4시까지의 매출이 최근 세 달 사이 최고 매출을 찍은 날! 날씨도 좋고 매출도 좋은 아주 화창한 날이었다.
카페 내부를 정리하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오후 4시 30분쯤 여자 손님이 한분 오더니 주문을 했다.
“커피 50잔을 주문하려고 하는데 가능한가요?”
“50잔이요?? 네! 됩니다!” (야호!! 오늘 최고 매출을 찍는구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30잔 하고요, 아이스 카페모카 20잔 주세요.”
“커피 드시는 단체가 어디인가요? 몇 시까지 만들어드리면 될까요?”
“학생들 주려고요. 8시 30분까지 만들어주시면 돼요.”
“아이스로 만들면 얼음이 좀 녹을 수도 있는데 어디로 가지고 가시나요?”
“차 타고 10분 거리예요. 제가 차 가지고 올 거예요.”
“그럼 8시 30분까지 만들어 드릴게요! 18만 원 계산해 주시면 됩니다.”
“아, 그런데... 제 차가 견인이 되었어요. 백운역으로 가져갔다고 하는데 여기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가요?”
“백운역은 부평역 다음이에요~ 여기서 전철로 11분 걸려요. 대로변에다 차를 세우셨나요?”
“제가 지갑이 차에 있어서 결제를 할 수가 없네요. 차를 찾고 바로 송금해 드릴게요. 여기 제 전화번호 드릴게요.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주세요.”
“네~ 계좌번호 문자로 보낼게요! 그런데 송금은 언제 해주실 수 있죠~? 송금해주시면 바로 준비 들어갑니다!”
“차 찾고 바로 해드릴게요. 사장님 전화번호도 적어주세요.”
“여기 제 전화번호고요, 송금해주시면 8시 30분까지 만들어 드릴게요!”
그렇게 손님이 나간 뒤에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냈지만 바로 답신이 오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서도 답신이 없었고 송금도 하지 않았다. 문득 카페에 오면서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백운역도 모른다는 사람이 뒷골목인 이곳까지 와서 단체주문을 한 것도 수상했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렇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날에 설마? 를 되뇌며 이상한 기운을 애써 모른 체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렀다. 컵과 홀더 등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에 적어준 번호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 전화는 당분간 착신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건 무슨 상황일까? 도대체 왜? 이게 무슨 일이지?!
뭔가 이상한 낌새가 정확히 들어맞는 것을 보니 화가 나지도 않았다. 녹화된 CCTV를 보았더니, 견인된 차를 찾으러 가려면 전철역으로 가야 하는데 그 손님은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다시 시장 쪽 샛길로 빠졌다. 그 샛길은 어느 정도 이 동네를 아는 사람만 빠지는 길이다. 이곳에 처음 왔다고 했던 사람이 스스럼없이 갈 방향은 아니었다.
이 일을 통해 세상에는 별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또 느꼈다. 뒷골목에서 10평짜리 카페를 운영하는 영세업자에게 무슨 악감정으로 이런 사기를 치는 것일까. 태연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하다. 결제와 송금을 누차 이야기하는 나를 보며 그 사람은 자기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것을 예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빠르게 마무리를 짓고 카페를 떠나기 위해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 앞에서 확인 전화를 해보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더군다나 손님이 나가고 나서, 차가 견인됐다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을 못해 준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꼈던 내 오지랖도 억울해졌다.
이 50잔 사기 행각에 대해 지인한테 이야기했더니, 자기였으면 오늘 어려우면 내일 송금해달라고 하거나 송금이 되지 않았어도 미리 음료를 만들고 있었을 거라고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마음을 놓는 순간, 최고 매출로 기분 좋은 날! 이렇게 훅하고 사기를 치러 온다...!!
어쨌든 이 일로 인해 친근한 단골이 아니라면 꼭 선결제를 받자는 교훈을 얻었다. 예약이란 것은 요청하는 사람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하는 주인과의 약속이다. 정말 불가피하게 취소하려면 주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시간에 취소를 해야 한다. 본인 편하자고 예약해놓고 주인이 고스란히 피해를 안고 가는 것은 주인 입장에서 너무 억울한 일이다. 이렇게 노쇼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니 단골손님이 아니라면 선결제를 받는 것이 피해도 입지 않고 마음 상하지 않는 방법이 아닐까.
5개월쯤 지나서였을까? 어느 날 오후, 한가롭게 주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한 여자 손님이 들어왔다. 나는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커피 마실 수 있나요?”
“네? 네! 마실 수 있습니다!!
내가 대답하자마자 그 손님은 살짝 나를 응시하는가 싶더니 그냥 나가버렸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전에 50잔을 주문했었던 그 여자 손님이었다! 이미 처음 들어올 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왔는데 대뜸 저 질문을 하고 나가버리니 확신이 들었다. 머리스타일도 바뀌고 얼굴은 살이 빠진 듯 보였지만. 그 사람이 분명했다. 5개월 만에 다시 이곳을 찾고, 그 일을 수행하려 했지만 내가 여전히 이곳에 있으니 가버린 듯하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지난 5개월의 시간 동안 그 여자는 여전히 사기 행각을 벌이고 다닌 것 같다. 씁쓸하기도 하고 왜 그러고 사는지 안타깝기도 하다가 내 얼굴을 보고 놀라서 간 것이 생각나 실소가 나온다.
이곳에 또 왔다는 것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성공적으로 일을 마무리하고 희열을 느낀 것일까? 그때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