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무언가를 시도할 때 생고생이 닥쳐오리라는 것을 알면서 어떤 이끌림에 따라 선택을 할 때가 있다. 일을 벌이는 입장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즐거움이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2015년 4월. 내가 발을 들인 세계가 그렇다.
나는 앞에 나가서 무언가 하는 것을 가급적이면 피하는 심장이 작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교회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다. 레슨만 받으며 바이올린을 혼자서만 하다가 큰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만 분명 고난의 시기가 닥칠 것을 예감하면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심장은 두근거림을 넘어 팔딱팔딱 빠르게 뛰면서 혈관을 팽창시켰고, 얼굴에서 피가 터져 나올 듯이 벌건 얼굴로 연주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매주 지속하다 보니 얼굴색은 어느새 평온을 되찾았다. 연주하면서 하나가 되는 오케스트라의 묘미를 한껏 느끼며 이전보다는 더 바이올린에 빠져서 지내게 되었다.
일 년이 더 넘게 지난 어느 날. 모두가 성가대의 노래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날 나는 연주를 하던 중에 현을 누르는 손가락을 삐끗했다. 당황한 나는 평정심을 잃었고 활을 잡은 손이 갑자기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당혹스러운 얼굴로 어찌어찌 연주가 끝났다. 이때부터 나의 활 떨림이 시작되었다. 연주를 하다가 갑자기 쓸데없는 부끄러움이 툭 튀어나오면서 활이 떨리기 시작했다. 시선이 성가대에 집중되는 성가곡 순서만 되면, 오케스트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면서 손은 더 떨렸다.
바이올린은 활로 현을 그어야 하는데 손이 떨리면 소리 내는 것이 매우 어렵다.(활로 비브라토를 한다는 슬픈 우스갯소리도...) 빠른 템포의 곡이나 세게 연주하는 곡이면 별 문제가 없었다. 느리고, 여리게 연주해야 하는 곡이 오히려 힘들었다. 악보에 여리게 연주해야 하는 ‘pp, p, mp’가 나오면 그 셈여림 기호에 온몸이 긴장했다. 애써 텍스트를 못 본 척 해도 ‘p’라는 글자가 머리에 ‘쿵’하고 박힌 채 한주를 보냈다. ‘너는 이번 연주 때 떨리고 말 것이다.’를 암시하는 기호 같았다. 평일 밤마다 집에서 연습하면서 마인드 컨트롤해보지만 리허설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손은 본 연주 때는 컨트롤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하기에 내 심장은 작았다.
나는 무언가를 할 때 힘든 상황을 만나게 되더라도 ‘배우며 견뎌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지속한다.(다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부분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능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공식과 달랐다.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기는커녕 불안이 더 심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과 관련된 일이라 어려웠다.
오케스트라에 폐를 끼치고 있자니 내 심장은 더 쪼그라져 갔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단독 연주도 아니면서 유난을 떠는 것 같아서 일기장만 부여잡고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버티고 있었던 것은 이것이! 도대체! 언제쯤! 나아질 건지 나는 정말 궁금했다. ‘결국 그녀는 수전증으로 그만두고 말았답니다.’로 마지막 점을 찍으며 비극적 엔딩으로 마무리 짓고 싶지 않았다.
신경이 곤두선 채로 연주하며 6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그날도 악보에는 셈여림표 ‘pp’가 있었다. 점 2분 음표가 여섯 마디 동안 이어진 부분이었다. 성가곡 연주 순서가 다가올수록 온몸은 긴장감으로 굳어져 갔다.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심호흡을 크게 하고 비장하게 앉아서 연주를 시작했다. 설마 했지만 역시였다. '세게(f)' 연주하다가 모든 연주자들이 숨을 죽이며 애쓰는 '매우 여리게(pp)'로 진행되자마자 내손은 비 오는 날 개 떨듯이 덜덜덜 떨었다. 나의 오른손은 뇌의 통제를 벗어났다. 활이 현에 제대로 닿지 않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자니 심장은 뛰쳐나갈 듯이 쿵쾅댔다. 잔잔하고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음표들 속에서 나는 혼자 덜거덕거렸다. 일초가 백 만년 같던 순간 속에서 용을 쓰다가 어쩔 수 없이 연주하는 중에 활을 잡은 손을 내리고 몇 초 쉬고 다시 시작했다. 점점 나아지기는커녕 심각성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견디는 것은 집착일까...’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나아진다는 것을 믿는다면... 이 시간을 견디는 방법이 있을까...’
위기의 절정을 겪은 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왠지 모르게 도피하긴 싫었다. 그렇지만 나의 의지력만으로 혼자 무작정 견디면서 나아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중에 오케스트라 악장에게 전화가 왔다. 악장은 지난번 연주 때 나의 심각성을 듣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는지 레슨을 권유했고 나는 그 손을 붙잡았다. 그래서 한 동안 중단했던 레슨을 악장과 시작했다.
실수해도 괜찮아요. 계속 앞으로 가는 겁니다.
우리는 매주 일요일 아침 9시 30분에 만났고, 나는 활쓰기를 디테일하게 배워나갔다. 둘이 함께 연주를 하다가 실수를 하고 내가 멈칫하면,
“괜찮아요! 멈추지 말고 계속 가요~ 25마디 26마디...!”
선생님은 나와 나이가 비슷한 친구였는데 매주 아침마다 잘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예배가 끝나면 매번 다른 것 같아도 똑같은 ‘활쓰기’를 화두로 우리는 긴 시간을 대화했다. 선생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방법도 알려주었는데 그것은 내 마음에 안착했다. 그러면서 활떨림이 심각한 고민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농담이 섞이기 시작했다. 꾸욱 눌려 있었던 마음이 솔솔 올라오며 가벼워져 가고 있었다.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오긴 온다. 고진감래의 법칙!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마음의 동요 없이 편안해지는 순간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셈여림표 ‘p’를 보아도 마음에 불안감이 커지지 않았다. 연주하다가 긴장이 스멀스멀 오려하면 가르쳐주었던 자세로 고쳤다. 눈만 살짝 돌리면 보이는 선생님을 보면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기도 했다.
결국 슬럼프를 극복하고 원하던 바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계속 노력하면서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반복된 경험과 훈련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감은 기술 습득과 시간의 채움만이 아닌 마음의 치유와도 관계된 일이다.
불안을 소통하기
오케스트라를 시작하고 일 년이 넘게 지난 뒤 왜 그런 슬럼프가 오게 된 것일까? 가만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연주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즈음은 내 왼쪽에서 연주하던 연주자 두 명이 차례로 그만두면서 내 옆이 휑하니 비워진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마음에 부담이 생기고 나를 신경 쓰지도 않는 청중의 눈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레슨을 시작하면서 선생님과의 진지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악기 연주 중에 오는 나의 불안을 선생님은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했다. 선생님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오케스트라 바깥사람들에게는 차마 하지 못했던 활떨림 이야기를 꺼내놓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나의 두려움이 사라졌다. 나의 불안을 소통하면서 자신감을 다시 회복한 것이다.
나중에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학생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생님의 이야기에 학생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학생의 성격, 습관, 경험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입장에서 결국 할 수 있는 말은 "그러니까...... 마음을 편히 가져라"인데 이것의 공감을 얻어내기까지는 서로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져야 학생의 심리적 불안이 치유된다.
함께 하는 것은. 우리를 살린다.
지난한 시간을 지나 지금은 활떨림을 극복했다. 아주 가끔 오기도 하지만 견딜만하다. 평정을 잃어도 금세 회복하거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내면은 불안하나 편안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의 회복은 빨라진다. 함께 하는 것이 좋은 이유다. 치유는 나의 시간을 보듬어 안는 상대의 시간이 섞여야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