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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y 07. 2020

시작의 문을 만나면 반갑게 안녕!

‘의미 있음’으로 동전 뒤집기



삶을 살아가다가 갑자기 무언가에 꽂혀서. 그것을 시작한 경험이 있는가? 무엇이 계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삶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욕망의 이끌림.


일상의 패턴을 벗어나서 전혀 다른 것을 시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해보지 않던 세계로 입성하는 것이기에 모든 시작은 설렌다. 어떤 시작의 경계선을 넘는 것은 뜬금없고 생뚱맞을 수 있어서 설렘과 불안이 묘하게 공존할 수도 있고.  

  

나의 크고 작은 시작에서 일상이 완벽히 달라진 시작이 있다. 그것은 바로‘ 카페 사장!’ 직장인으로만 살아온 내가 카페 사장이라니. 생각지도 않던 세계에 문을 덜커덕 열고 들어와서 지금 4년 차 카페 사장이 되었다. 서른 후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벌이는 일이라니. 쉽게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이 과연 밑 빠진 독은 아닐까? 하는 염려 없이 시작했다는 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을 잘라내고 도전했다. 나아지지 않는 현실 안에서의 무기력한 전진보다는 지금 ‘확’ 다른 문을 열고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새롭게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무척 많이 힘들겠지만 용기를 내어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카페를 차리기 위해 커피를 배웠고, 인테리어를 하고, 오픈을 했다. 한 줄의 문장으로 말하면 간단하지만 글자 안에 새겨진 고뇌의 흔적은 깊다. 그래서 맨땅에 헤딩했던 나의 노하우를 예비 창업자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책을 내보자'라는 생각에 산너머 산일지도 모르는 그 세계에 발을 들였다. 내가 글을 완성하면 '짜잔'하고 출판사가 나타나는 것은 아닐 텐데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작정 글을 쓰고 고쳤다. 와르르 생각을 쏟아낸 초고를 완성한 후 퇴고가 너무 힘들어서 밤마다 신음하며 글을 고치다가, 투고를 할 때는 땅으로 점점 꺼지는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했다. 그리고 결국 출판사를 만나서 기적처럼 출간을 마주했다.


꿈같은 출간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온라인 서점 예스 24에서 1회 에세이 공모전이 있었다. 쓸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즈음 있었던 손을 다친 사건을 가지고 글을 써서 공모전에 제출했다. 놀랍게도 대상으로 당선이 됐다. 그래서 다음 달, 또 다음 달 공모전에 도전했지만 둘 다 되지는 않았다. 좀 쉬자는 생각에 글쓰기를 미루고 있는데 오래된 친구가 뜬금없이 브런치 사이트를 문자로 보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써놓은 글이 몇 개 있었고, 글을 계속 쓰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곳이 브런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전해야겠다는 울림이 왔고 브런치를 시작했다. 




글을 완성하는 과정 중에 반복적으로 마주했던 순간들이 있다. 맥락 없이 빙글빙글 도는 생각을 끄집어냈을 때 무언가를 쑤욱 뽑아낸듯한 시원함. 쓰는 중에 달라지는 감정의 흐름과 그 안의 감흥. 복잡 미묘한 감정 속에서 더듬더듬 글을 고치고 마침내 글을 완성했을 때 오는 의심스러움이 공존하는 기쁨. 글을 써야지만 느낄 수 있는 이 매혹적인 즐거움을 나는 브런치에서 계속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감동하고, 나의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감격한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뜬금없이 카페를 시작하더니 책을 출간하고 이어진 문으로 들어와 이제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이야기를 문장으로 제대로 표현하는 것에 항상 어려움을 느끼지만 글을 쓰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앞이 안 보이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하나의 문 열기를 시도하면 그것과 연관된 다른 문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시도하기 전까진 희미하고 막막하기도 한 은밀함의 매력을 가진 것이 바로 ‘시작’이다. 새로운 문을 열어봐야 다음 문이 보인다. 새로운 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문'은 또 다른 기회의 문일 수도 있고 만남의 문, 생각의 문일 수도 있다. 




나는 무엇이 되어 가고 있는 걸까. 새로운 문을 열고 그 안에서 마주하는 일들. 그 안에서 물들어가는 낮과 밤의 시간과 변화하는 감정의 온도. 마음과 생각의 흐름들. 그리고 나라는 존재와 함께 섞여야 발현되는 일들. 그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내가 무엇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극히 사소한 것부터 일상을 뒤바꾸는 것까지 어떤 시작의 문을 열면 그 안에서 나라는 사람을 더 알 수 있고 내면을 관찰할 수 있다. 나은 방향으로 진화될 수 있는 기회도 갖는다. 그렇기에 나는 시작의 문을 만났다면 반갑게 열고 애써서 하고 싶다. 그 안에 있는 미세한 결들을 느끼며 그 시절을 보내다 보면 또 다른 문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지금 어디로, 어디까지 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앞으로도 촘촘하게 시작의 점을 만들어가다 보면 오랜 시간의 흐름 뒤에 아름다운 별자리로 완성될 것을 나는 기대한다. 그 별자리가 무엇이 될지는 아무것도 보이진 않지만 말이다.


유한한 시간 안에서 모든 시작은 소중하다. 세상에 부질없는 것은 없다고 동전을 뒤집는다. 나의 시작은 무엇이든 ‘의미 있음’으로. 그리고 나는 오직 희망만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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