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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pr 13. 2020

물은 100℃에서 끓는다

깊은 절망의 시점은 반점의 시점이다.



매일 저녁, 카페를 마감할 때마다 라떼를 만들기 위해 우유 거품을 낸 스팀완드도 매일 청소한다. 물을 넣은 스팀피처에 스팀완드를 담그고 스팀레버를 열어서 물이 뜨거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때 시간이 좀 걸린다. 그래서 그 시간에 다른 것을 정리하기도 하고 이것을 넋 놓고 바라볼 때도 있다.


어느 날 스팀피처 안에 물이 끓어오를 때까지의 과정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1000ml 스팀피처에 찬물을 가득 담아 스팀완드를 담그고 스팀밸브를 열면 스팀완드 끝의 스팀팁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뜨거운 증기가 물을 데우기 시작한다. 점점 물이 뜨거워지면서 스팀피처 안의 소리가 아주 요란해지기 시작한다. 아직 끓는 건 아니다. 끓기 위해 소리만 요란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요한 때가 온다. ‘슈우우욱’ 하면서 요란한 잡음이 사라진 묵직한 소용돌이의 소리가 난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그날 스팀완드를 청소하면서 상념에 젖은 나는 큰 위안을 받았다.    

  

삶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추진하다 보면 생기는 요란한 잡음 속 상황에서는 내가 바삐 움직이는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목표에 아직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는데도 갑자기 그 모든 잡음이 사라질 때가 온다. 그 시점에는 잡음도 진전도 없는 듯하다. 낙심하기도 하고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점점 시간이 흘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조용하다. 나에게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참 외로운 시간이다. 이때부터는 서서히 슬픔이 찾아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이 지속될 것만 같다.  

    

그러나 이때 우리는 견뎌야 한다. 물은 99℃에서 끓지 않는다.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고요하고 어둡다. 99℃에 다다르는 조용한 그때. 이 시간을 견디면 물이 어느 순간 갑자기 끓는다. 반전의 시점이 도래하여 100℃가 되어 끓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말 이것은 순식간이다. 가장 깊은 절망의 시점이 곧 반전의 시점이 된다.    

  

100℃가 되기 위해 흘러가는 시간들은 그저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100℃가 되기 위해 나의 그때가 되기 위해, 계속 시간이 채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99℃에서 포기하지 말고 100℃를 완성해보자. 그때가 목표를 이루는 시점이다. 한 걸음씩 매일 채워나가다 보면 100℃를 채우는 순간, 올 것 같지 않던 원하던 그때가 온다.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은 뿌연 안개뿐이다. 투명하게 보이는 과정이, 가는 길이 선명하게 보이는 목표와 꿈이 어디 있을까? 내가 지금 그것에 다가가고 있다는 기대와 함께 그저 한발 한발 내딛자. 주저하지 않고 한발 한발 묵묵히 내딛다 보면 당신의 일상이 모여서 안개 너머의 것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용기를 잃지 말자. 천천히. 차근차근. 꿋꿋하게. 기대를 갖고 나아가자. 지치지 말고. 그저 앞에 있는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나는 원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 일 것이다.  






모든일에는 시간의 흐름과 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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