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 Jun 21. 2022

거북이 발견가

하와이, 파라다이스 코브

 4년 전 하와이, 파라다이스 코브 해변. 따스한 태양 아래서 모래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골고루 몸을 익히던 중, 나는 지금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이끌림으로 바위섬으로 향했다. 물속에 잠겨 있던 넓고 평평한 바위는 미끌미끌했고, 수면 위로 솟은 바위는 파도에 깎여 표면이 뾰족하고 까끌까끌 했다. 꼭대기에 올라서서 보니 바위섬 뒤편 움푹 들어간 부분에 거북이가 있었다. 파도에 휩쓸려 들어왔다가 아직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바다거북을 많이 봐왔지만, 해초를 뜯어먹는 강한 턱의 움직임까지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거북이를 관찰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손을 뻗으면 거북이의 등도 쓰다듬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정수리가 뜨거워질 정도로 오랫동안 거북이를 넋 놓고 보던 나는 애가 탔다. 거북이 씨에게도 거북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새끼손톱처럼 작게 보이는 거북이 씨는 아직도 태평하게 큰 대자로 뻗어 모래 위에서 쿨쿨 자고 있었다. 그를 깨우러 다녀오는 동안 거북이가 다시 넓은 바다로 떠날 것 같았다. 그때 멀리 떠 있던 크루즈에서 뿌앙! 하고 소리가 울렸고, 나는 그것을 신호로 달렸다.


 내 예상대로 뱃고동 소리에 설핏 잠에서 깬 거북이 씨는 멀리서 달려오는 날 발견하고 벌떡 일어나 내 쪽으로 뛰어왔다. 까맣게 탄 마르고 작은 아이가, 소금물에 푸석해진 짧은 머리를 휘날리며 미친 듯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거북이 씨는 잠결에 모글리를 봤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다 그 모글리가 자신의 와이프임을 깨닫고 무슨 큰일이 난 줄 알았던 것이다. 중간에서 손을 맞잡은 우리는 다시 헤엄을 치고, 해조류가 자란 미끌거리는 바위를 건너고, 발바닥을 아프게 하는 바위섬에 올랐다. 거북이 씨는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하다가 -‘아니, 왜 여기까지 위험하게 혼자 헤엄을 쳐와!’ ‘아니, 넌 머리통 깨지면 어쩌려고 이 미끄러운 데를 지나간 거야!’ ‘아니, 발바닥에서 피나는 거 아냐? 아 따가워! 아 따가워!’- 한 순간 조용해졌다. 다행히 내가 발견한 거북이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파도에 따라 물 밖으로 빼꼼 올라왔다 내려가는 귀여운 꼬리와 주둥이를 한참 동안 구경했다. 꼼짝 않고 한 곳만 바라보는 우리를 발견하고 점차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바위틈에 거북이가 있는지 어떻게 알았냐며 신기해하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거북이 씨는 나를 ‘거북이 발견가’로 모시기로 했다.


 나는 거북이가 좋다. 거북이는 눈을 천천히 깜빡인다. 턱을 느릿느릿 움직이며 먹이를 먹는다. 팔다리를 휘저으며 아등바등 헤엄치기보다는 그냥 물에 자신을 맡기고 둥둥 떠다니는데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착한다. 무엇이든 애태우는 법이 없는 태도가 도도하다. 거북이의 삶은 내가 속박되어 있는 시간과 다르게 흐르는 듯하다. 그래서 여유로운 거북이를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초연해진다. 나의 이 ‘거북이 타령’을 거북이 씨는 첫 하와이 여행에서 온전히 이해했다. 하나우마베이에서 새벽 스노클링 중 거북이를 만나 꽤 오랜 시간 함께 헤엄쳤기 때문이다. 거북이 씨는 바로 그날 거북이에게 온 마음을 빼앗기고 로컬 폴리네시안 타투샵을 찾아가 등에 거북이를 새겼다. 우리 항상 거북이처럼 살자고 다짐하면서. 10시간 가까운 비행 동안 제대로 기대지도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온 거북이 씨의 고생 덕분에 정작 그는 마음껏 보지도 못하는 거북이를 나는 매일 보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며 내 시간의 주도권과 결정권이 나에게 있는지 의심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나곤 한다. 특히 아기를 재우고 글을 쓰러 앉았다가 너무 지쳐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을 때, 이제 자막 없이 미국 드라마를 보기 힘들다고 느껴질 때, 근육이 다 사라져 아기 허벅지와 내 허벅지의 촉감이 똑같다는 걸 깨달았을 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내가 벌써 35살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 나는 내가 “거북이 발견가”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하와이를 오가며 거북이 씨 등에 업힌, 어느새 다섯 마리가 된 거북이를 보며.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행복하다 자신할 수 있는 삶을 찾아갈 것이라고 다독인다. 내가 좋아하는 거북이처럼 여유롭고 우아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과 길을 발견해 낼 것이라고.


제목 사진 Photo by Sarah Lee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아이와 공유하고 싶은 경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