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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Jan 16. 2021

나의 아이와 공유하고 싶은 경험

나오시마

 나오시마를 방문했을 때는 '작열하는 태양'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피부에 새겨질 만큼 매우 더운 여름날이었다. 타카마츠 항구에서 배를 타고 다시 나오시마로 향했다. 나오시마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극심한 허기가 밀려와 무작정 가장 처음 보이는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먹은 광어 튀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오래된 건물이라서 에어컨도 없고, 테이블 네 개가 전부인 규모가 작은 곳이었다. 주방 안에서는 여름날 밖의 아스팔트보다 더욱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작은 크기의 광어 한 마리를 통째로 튀겨주는데, 이를 밥과 곁들여 먹었다. 정말 맛있어서 더위도 잊은 채 미지근한 병맥주 한 병과 함께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섬 안에서는 자전거를 빌려서 타고 다녔다. 섬의 낭만을 느끼겠다고 그 날은 마치 ‘포카리스웨트’를 연상시키는 흰 바탕에 파란 세로 줄무늬가 들어간 시원한 원피스를 입었다. 그래서 거기에 걸맞게 순수하게 나의 다리 힘으로만 굴려야 하는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빌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섬 내의 버스를 이용하거나, 전기 모터를 사용한 자전거를 이용했다. 

 나와 내 삶의 메이트 거북이 씨는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마다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야 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섬을 구석구석 더욱 꼼꼼하게 살필 수 있었다. 하이킹 중간에 숲이 우거진 곳을 찾아 들어가서 나에게 쏟아지는 초록빛 사치도 마음껏 누렸다. 햇빛이 반짝이며 초록의 나뭇잎을 뚫고 나에게 쏟아졌다. 나오시마의 그늘은 초록빛으로 기억된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했기에 지중미술관 티켓 오피스에 도착했을 때는 다소 지쳐있었다. 그래서 티켓 오피스에서 지중미술관 건물의 입구까지 500미터 정도 걸어 올라간다는 소리에 처음에는 인상을 찌푸린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전시는 그곳에서부터 시작이었다. 티켓 오피스부터 미술관 건물까지 작은 연못을 왼쪽에, 오른쪽엔 울창한 가로수를 끼고 걸어 올라가는 아름다운 길이 이어져있었다.


 지중미술관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땅 속으로 지어진 미술관이다. 노출 콘크리트의 일인자인 안도 타다오가 건축 설계한 곳이다. 그래서 미술관의 모든 내부, 벽과 천장, 창문 등이 예술품이다. 어느 곳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안도 타다오의 건물을 보면 '건조함, 삭막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회색빛 콘크리트가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난생처음 피부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안도 타다오는 미술관을 지하로 지어서 자연광을 자신의 의지대로 컨트롤했다. 자연 빛에 따라서 색감과 온도가 달라 보이기에, 그에게 콘크리트는 최고의 건축 재료가 되었던 것 같다.


 이렇듯 ‘빛’을 담고 있는 미술관답게 이곳에는 모네의 수련 그림이 세 작품 전시되어 있다. 지금까지 ‘모네’와 같이 이름만 들어도 작품이 떠오를 만큼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접할 기회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지중미술관에서 ‘수련’을 맞닥뜨렸을 때의 압도적인 경험은 없었다. 


 티켓 오피스에서 지중미술관 정문까지 약 500미터에 걸쳐 내가 걸어왔던 그 오솔길이 모네의 수련 연못을 완벽히 재현해 놓았던 곳이었다. 눈으로 연못에 핀 수련을 직접 보고 바람을 느끼고, 풀잎을 만지고, 햇살을 누린 후 지중미술관에 입장한다. 그리고 인공 빛은 차단한 채 자연광을 최대한 받아들이도록 설계된 수련의 방에 들어가면 황홀함에 숨이 턱 막힌다. 거대한 방은 작고 부드러운 하얀색 돌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신발을 갈아 신는 -충분히 가치 있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조심스럽게 그곳에 들어서면 갑자기 바깥의 소음도 잦아들고 눈 앞이 환해지며 수련 작품이 커다랗게 다가온다.


 베네세 하우스도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설치예술이 전시되어 있어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거리 감각을 잃게 만들어 한 발짝도 섣불리 떼기 어렵게 구성한 작품 속을 직접 걸어보며 신비로움을 느꼈다. 시간마다 반사되는 빛과 그림자의 길이가 각기 다른 모습을 만들어 내며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작품을 바라보며 곧 떠나야 하는 배 시간을 체크하며 아쉬워했던 기억도 난다.


 다시 타카마츠항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그 유명한 나오시마의 호박 조형물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무심코 '나의 아이가 이곳을 경험하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나의 삶이 너무나 만족스럽고 행복하여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가 생긴다면 현재의 평화로운 삶에 균열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고, 굳이 나의 삶에 라벨을 붙인다면 ‘딩크’에 더욱 가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오시마의 경험은 반드시 나에게 의미 있는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소중한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의 삶에 아이가 있어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공유하고, 다양한 감각의 자극을 어린 시절부터 흡수하여 나보다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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