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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Jan 15. 2021

창조의 욕심

프롤로그. 하와이- 오하우, Hawaii State Art Museum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는 직업을 동경해 왔다. 특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고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구체화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이 너무나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이는 타고난 재능이 있는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암흑의 핵심’, ‘로드 짐’ 등을 집필한 조셉 콘래드처럼. 성인이 되어서야 배운 제2외국어인 영어로 그런 훌륭한 작품을 쓰다니, 소설을 쓰기 위해서 태어난 삶이 아닌가?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만이 자신의 것을 창조하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와이 주립 미술관은 하와이를 네 번째 여행하면서야 뒤늦게 방문한 곳이었다. 호놀룰루 미술관(Honolulu Museum of Art)보다는 규모가 작고 아담했고, 작품의 수도 많지 않았다. 이곳만이 갖는 특장점은 현대 예술이 가득했다는 점이었다.


 ‘현대 예술’이라고 하면 어렵다고 느껴진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화들이 떠오른다. 하와이 주립 미술관에도 그런 작품들이 가득했다. 한국에서는 유명한 전시회가 열리면 해당 작품과 작가에 대하여 ‘공부’하고자 했다. 미리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전시회장을 찾았다. 하지만 하와이 주립 미술관에서 소개되는 대다수의 작품들은 하와이 현지 작가들의 것이라서 그런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작품을 즐겼다.


 페기 호퍼의 그림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한 여인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얼굴과 발은 매우 자세하게 묘사가 되어 있는 반면, 그녀의 몸 전체는 실루엣 없이 노란색의 한 덩어리로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노란색 한 뭉치가 그림 속의 여인과 이 그림을 그리던 작가의 분위기가 감정을 한 순간에 전달하는 듯했다. 작품이 나에게 스며드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하와이의 아름다움을 나타낸다는,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캔버스를 칠해 놓은 그림에서는 파도의 일렁거림이 보였다. 아마도 붓의 사용방법 때문인 것 같았다. 붓이 지나간 자리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두 개의 사람 흉상 조형물도 눈에 들어왔다. 두 개의 흉상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게 위치되어 있었고, 그것들을 옆에서 바라보면 하나는 하얀색, 다른 하나는 검은색으로 보이게 칠해져 있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그 모습에서 나는 시선의 맞닿음을 느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현대인들의 몸에 배어 있는 ‘예의 바른 거리두기’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유리로, 천으로, 점토로 만든 조각품들과 다채로운 색을 이용하거나 하나의 색으로만 나타낸 그림들,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하여 완성한 설치 작품들을 보며 현대 예술의 다양성에 흠뻑 빠졌다.


 현대 예술은 예술가가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여 가장 표현하고 싶은 에센스를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방식으로 자유롭게 나타내는 것 같다고,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작품 속에 거대한 메시지가 숨어 있다기 보다, 그 작품 자체가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용기를 내본다.


 평범한 내가 쓰는 여행기는 아름답지 않을 수 있고, 숨어 있는 깊은 뜻이 없을 수도 있다. 여행에 참고 할 만한 유용한 정보가 소개되지도 않을 수 있고, 모두에게 똑같은 감동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기록하고 싶은 순간들,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는 기억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여행기에 사진이 첨부되면 작가가 설명하고 묘사해야 할 부분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독자도 사진을 통해 더욱 쉽게 여행지를 간접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구체성과 현실성 보다는 나의 기억 속 이미지와 추억을 소재로 삼아 글을 쓰고싶다.


 창조에 대한 열망은 사실 굉장히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은 어린 시절 자유롭게 스케치북과 벽에 낙서를 하고,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그렸다. 아름답게 들리지 않을지언정 피아노 건반을 뚱땅뚱땅 두들겼다. 모두들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욕망이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사진도 없이 나만의 방식으로 평범한 여행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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