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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May 30. 2023

Language Ego

 영문학 석사 입학시험을 준비하며 뼈저리게 ‘영어 멍청이’가 되었다고 느낀다. 영어 인터뷰가 없었다는 후기를 확인하고 느슨해진 마음가짐을 가졌던 탓에 대학원 입학 구술고사 때 John Donne의 「Valediction」에 대해서 영어로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고 진땀을 흘렸다. John Donne은 해석이 어렵기로 소문난 Metaphysical Poet(형이상학파 시인)으로 연인 간의 사랑은 벼룩에, 이별은 컴퍼스 다리에 비유하는 등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질적인 두 이미지의 결합을 가리키는 ‘Conceit’라는 개념을 창조하였다. Conceit를 정의 내리고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구술하는 동안 좌절감을 느꼈다. 면접실을 나서며 작년에 교수님의 부탁으로 작년에 영어영문학부 후배들에게 영어로 강의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20분가량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40분간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는데 그때 영어실력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생각에 암담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바닥 아래, 지하까지 더 추락할 공간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영어교육론에서 배웠던 Language Ego(언어 자아)가 완전히 붕괴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Language Ego란 특정 언어에 대해 언어사용자가 지니는 감정적인 유대감이나 태도, 그 언어를 사용하며 얻게 되는 사회문화적인 감수성 등을 통칭하는 용어다. 쉽게 말하면 영어를 잘하면 영어권 국가와 문화에 더 친밀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게 되며 이에 따라 강한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이창래 작가의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의 주인공 Henry는 한국인 부모를 두었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영어 원어민이다. 하지만 그는 영어를 자신의 모국어로 느끼지 않는다.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지 못하던 부모님이 언제나 굽신거리는 자세로 입에 “sorry”를 달고 살던 모습을 보고 자라며 영어에 대한 부모의 ‘수치심’까지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Henry는 한국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진정한 모국어가 없다고 느낀다. 모국어의 부재는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지고, 성인이 된 후에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춘 채 어디에든 동화되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스파이로 활동하게 된다. Language Ego는 이렇게 한 인간의 정체성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뜨거운 여름이 본격적으로 기세를 피기 전, 산에 자주 오르고 있다. 아파트 뒷산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5월이 되면 공기에 아카시아 향기가 끈적할 만큼 들어찬다. 어제 온통 반짝이는 초록으로 둘러싸인 산 중간까지 걸어 들어갔을 때, 나와 손을 붙잡은 아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 섰다. 아이를 따라 귀를 기울이니 바람이 멀리에서부터 나뭇잎을 흔들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뭇잎끼리 부딪히는 시원한 소리가 점차 커지며 이윽고 우리가 있는 곳에도 바람이 불었다. 이제 지고 있던 마른 아카시아 꽃이 눈처럼 팔랑팔랑 하늘에서 떨어졌다. 26개월을 산 아이는 “우와!”라고 했고 36살을 먹은 나도 “진짜 우와다!”라고 말했다. 맙소사 내 한국어 언어 자아도 취약해졌다. 


 하루 종일 제일 많이 소통하는 대상이 26개월 아이다 보니, 대학원 입시 준비를 하며 글쓰기를 게을리하는 동안 ‘한국어도 멍청이’가 되었다. ‘Splendid, fabulous, miraculous, astonishing, magnificent, phenomenal, superb’를 ‘wow’라는 단어 하나로 ‘퉁’ 치게 된다. (심지어 지금도 예시로 쓰기에 적절한 한국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영어로 쓴다.) 글쓰기는 언제나 힘든 과정이었으나, 한동안 ‘쓰기’없이 ‘읽기’만 하다 오랜만에 한 장, 네 단락으로 정돈하여, 기승전결과 수미쌍관에 맞춰 내 생각을 펼치려니 적절한 단어가 제때 떠오르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으로 에세이를 쓰려던 시도를 포기하고 오랫동안 묵혀뒀던 시나리오 스크립트 파일을 열어 작업했다. 분명 잠시 휴식을 갖기 전에 스토리 창작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재미있다. 단어를 윤색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니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 끝이 가볍다.


 작가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나에게 있어서, “쓰기”의 Language ego는 두 개로 나뉘는 모양이다. ‘나’의 모습을 가득하게 꾹꾹 눌러 담아 쓰는 에세이스트의 ego와 자유하며 즐기는 스토리 창작자의 ego. 이 두 개의 language ego를 모두 견고하고 거대하게 길러내고 싶다. 문학을 공부하며 전자의 ‘나’를 더욱더 무겁게 만든 후, 이를 에세이로 덜어내어 가벼워진 모습으로는 이야기를 창조하며 살고 싶다. 잠시 ‘멍청이’의 자아 상태에 접어든 내가 결국 네 단락 구성에 실패한 다섯 단락의 이 글을 쓰며 용기와 의지를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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