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를 본 후 나 혼자 하는 뇌 피셜 "덕 토크"
수가 빼앗아가는 “골수”로 점점 늙어가는 엘리자베스. 굽은 손가락은 관절염으로 마디 마디가 굵어지고 튀어나온다. 윤기가 사라져 푸석푸석해진 머리는 가스 불 위에 놓인 음식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로 더욱 부스스해진다. 반짝 반짝 빛나던 엘리자베스의 노년의 모습은마녀다. 나이든 여성, 특히 미혼 여성을 사회적으로 제거하거나 통제하려던 중세의 “마녀사냥”은 “규범에서 벗어난” 더 정확하게는 사회의 규범에 “불만을 갖는” 여성들을 통제하려는 사회의 억압이었다. 「서브스턴스」 의 감독 코랄리 프라즈는 그러니까, 엘리자베스가 마녀를 거쳐 괴물이 되는 이유를 단순히 그녀의 내면, 자기혐오, 자기부정, 자존감 부족 만으로 귀인 할 수 없다고, MONSTRO ELISASUE는 엘리자베스 자신이지만, 동시에 너와 나,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자기혐오로 미쳐가고 있었다. 이름처럼 스타의 삶을 살던,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생일날온갖 수모를 겪고 울고있는 그녀에게 남간호사는 “내 삶을 바꿨어요. It changed my life”라는 쪽지와 함께 서브스턴스를 추천한다. 엘리자베스의 등을 가르고 “더 나은 버전의 나 a better version of [herself]”인 Sue가 태어난다. 마치 나비가 된 애벌레가 고치를 찢고 나오듯, 몸이 커진 갑각류가 탈피하듯 그렇게 “등”을 열고 나온다. (그래서 정말 better version이 기대된다.) 여성의 배나 자궁을 통한 “자연스러운” 탄생이 아닌 등을 통해서라니. 참으로 극적이면서도 기형적인, 인간의 본성을 극단으로 거스르는 장면이었다. “나”는 절대 볼 수 없는 “나”의 등. “너”가 제일 많이 보는 “나”의 등에서 태어나는 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수는 모두의 눈 앞에 서는 쇼비지니스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수가 태어나는, 그 징그럽게 하얀 화장실, 무균실처럼 티끌 하나 없는 화장실은 수술실을 연상시켰다. 그곳에 의식없이누워있는 엘리자베스는 마치 고깃덩어리 같다. 젊음을 위해, 아름다움을 위해 수술대에 오르는 여성들의 모습이 저러한가. 엘리자베스는 저 정도로 자신의 몸을 “몸뚱이”로 여기고 있는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젊어 지고 싶은 것, 과거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이 얼마나 자기혐오와 달라붙어 있는지가 감각적으로 전달되었다.
몸을 “몸뚱이”로 밀어내는 것은, 몸의 “물화”가 원인이자 목적이다. 몬스트로 엘리자수가 새해전야쇼 무대에 섰을 때 사람들은 “이건 괴물이야 it’s a monster”라는 외침에 이어 “괴물!!! it’s a freak!!!!!!!”이라고 비명을 지른다. 그래, 중세의 프릭쇼부터가 시작이었다. 몸의 “물화”는 그 유구한역사를 지니고 있었구나. 남들과는 다른 외모를 지닌, 키가 작은, 키가 큰, 팔이 없는, 다리가 없는 등등의 사회적 약자를 무대에 세워 스펙타클로 만들던 프릭쇼. 새해전야 방송을 프릭쇼로 탈바꿈 시킨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자신의 얼굴 한가운데에서 유방을 만들어내 토해낸다. 모닝쇼의 캐스팅 디렉터가 했던 “차라리 얼굴 한 가운데 코 대신 가슴이 있었어야 했는데! too bad her boobs aren't in the middle of her face instead of that nose!”라는 “유감”의 표현을문자 그대로 재현한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퍼포먼스였다. 이 퍼포먼스는 괴물을 만든 것은 그렇게 사람을 물건처럼 품평하는 말들, 시선, 사고방식임을 보여준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무대 위 여성, 피범벅이 된 무대. 스티븐 킹의 “캐리”가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캐리는 돼지피를 뒤집어 썼지만,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자신의 피를 뿌린다. 자신의 체액을 자신이 뒤집어 쓰는 것은 자기 혐오의 상징이다. 피와 땀, 눈물 모두 나를 살아있게 하지만 바깥으로 배출되는 순간 더럽다. 다시 만지고 싶지 않다.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그것을 타인에게도 뿌린다. 새우를 “쳐”먹던 입으로, 니코틴에 찌든 이를 내보이며 “예쁜 여자들은 항상 웃어야지! Pretty girls should always smile!”이라고 말하던 방송국 사장, 그 뒤에 달라붙어 얼굴을 빼꼼 내민 채 수의 미소를 기다리는 주주들도 혐오스럽다. 너희 모두 혐오스러워. 몸뚱이로 돈을 버는 나, 외모와 젊음이 돈과 가치가 되는 시스템을 만든 너, 그걸 공고히 하는 너, 이 모든 걸 보고 즐기며 방관하는 너희들, 우리 모두 같이 이 피를 뒤집어 쓰자.
아무튼 그래서, 다시 마녀와 괴물의 만남이다. 초능력과 염력을 쓰는 캐리와 공명하는 핏빛 클라이맥스는 메두사의 엔딩으로 이어진다.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산산히 부서지고, 결국 엘리자의 얼굴만 남아 그 주변에 붙은 촉수를 사용해 “별”을 향해 기어간다. 빛나는 별 한가운데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쏟아지던 스포트라이트를 회상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그녀는 메두사다. 얼굴에 달라붙어 펼쳐진 촉수. 포세이돈에게 범해졌다는 이유로 아테네의 저주를 받아 괴물이 되어버린, 이제는 가부장제로 억압된 여성의 분노와 저항을 상징하는 메두사의 얼굴이다.
사회의 “옳지 않음”을 인지하는 마녀이자, “옳지 않음”의 결과물인 괴물, 엘리자베스다. “마녀”들이 사회에 보였던 “규범의 거부”는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서며 “광기”로 모습을 바꾼다. 마녀는 미친 여자가 된다.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이에 따른 슬픔과 분노에 가득 찬, 히스테릭한. 그러니까 노른자색 코트를 입은 노파를 때려죽이고, 또다시 자신을 분열시키는 아름다운 여성 수나, 펜트하우스의 창문에신문지로 떡칠을 하면서도 수를 놓지 못하고 다시 살려낸 엘리자베스와 같은 여자들. 지금껏 그녀들이 왜 미쳤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감금되고 격리되고, 보이지 않게 치워졌을 뿐. 하지만 코랄리 프라즈는 마녀와 괴물의 그 상관관계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이제페미니즘 비평에서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한 “다락방의 미친 여자”, 살롯 브론테의 『제인에어』 속 “버사”, 샬럿 퍼킨스 길먼의 『누런벽지』(The Yellow Wallpaper) 속 “그 여자”의 계보를 「서브스턴스」의 “엘리자베스”가 잇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