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고 싶던 직장에서 다시 용기낼 기회를 얻다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휴가를 다녀온 후 첫 출근이었고 둘 밖에 없는 회사 사람들과 인사를 하였다.
평소와 같다면 잔뜩 굳어진 표정으로 나의 상사는 "왔어?" 혹은 "어서와" 한마디만 던지고 다시 일에 집중한다.
그 후로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은 말 한마디 섞지 않고 보냈다.
오늘 오전 시간도 말 없이 보낸 건 같았다, 한가지만 빼고.
"휴가가 좋았나 보네. 얼굴이 좋아졌어."
뭐지?
그녀의 신변에 변화라도 생긴걸까?
갑자기 왜 이렇게 친절하고 타인에 대해 관심이 생겼지?
나는 그녀의 낯선 친절에 신기하면서도 반갑기도 했다.
내가 바라던 상사의 이상향은 100%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바탕이 된 사람이었다.
그동안 상사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기란 사실 쉽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가 다른 말을 하다니 얼떨떨하기도 했다.
하지만 몇 년 간 겪어왔던 경험으로 '그녀의 일시적 감정일지도 몰라'가 내 마음 속 결론이 되었다.
널널한 오전시간을 평소와 다름 없이 보냈다.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내 자리 앞에 있는 아일랜드 식탁에 서서 사무실 전체를 한참 보고 있었다.
말 한마디를 꺼냈다.
"우리 사무실 분위기 좀 바꿔볼까?"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이 사람 오늘 왜 이러시나?
그동안 차곡차곡 축적해왔던 그녀에 대한 데이터가 내 머릿속에서 오류가 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영문에 혼란스러웠고, 딱딱하게 메말라 있던 나의 마음에 지진의 진동이 울렸다.
어떤 의도일지 궁금해졌다. 한편으론 기대가 되기도 했다.
우리 사무실의 책상이 총 네 개인데 현재 배치는 (二二) 이런 형태이다.
7년 전, 내가 사무실 첫 세팅을 할 때 T자 형태로 책상을 배치해 두었는데, 다른 사무실에 근무하고 계신 상사분께서 이 구조는 안된다며 현재의 자리로 조정하라고 하셨다.
낑낑대며 책상들을 옮기고 현재의 배치로 해두었다. 이 구조면 뒤에 있는 나의 상사가 앞자리 직원들의 모니터를 훤히 볼 수 있다.
일 아닌 다른 걸 하면 뒷자리에선 더더욱 잘 보였고, 일만 하자 주의의 상사였기에 나와 회사동생의 환한 모니터는 실시간으로 감시되었다.
그래서 난 항상 회사를 자유 속의 감옥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지내왔던 책상배치를 그녀가 바꾸자고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듯 했다.
깜깜한 감방 속에 갇혀있다가 출소하여 맞이한 첫 햇살에 눈이 부시듯 나는 정신을 못차렸다.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회사 동생이 다른 소리를 하기에 냉큼 그녀의 뜻에 따르자고 했다.
사실 전에도 그녀가 휴가를 가서 자릴 비웠더라도 해야할 일을 안한 적은 없었다.
다만 업무의 텀에 시간이 빌 때, 잠시 다른 것들을 했을 뿐.
바뀐 책상배치는 나와 회사 동생에게 지금보다 훨씬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어 주었고, 사무실 공간도 훨씬 넓게 쓸 수 있었다.
직원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자 하는 배려였을까?
아니면 정말 사무실을 넓게 쓰고자 하는 마음이었을까?
어떤 의도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너무나 행복해졌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느낌이었다.
직장 속 감옥생활이 지겹고 지쳐서 이직을 고민하기도 했더랬다.
그녀가 어디까지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지 모르겠지만 나도 조금은 더, 다가가 손 내밀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직장생활의 환한 날을 꿈꿔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퇴사가 아니고서야 열 수 없을 듯했던 감옥문은 드디어 열리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