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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Unknown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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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a Jul 20. 2021

토요일 아침

평화롭던 나의 토요일 아침 한자락



 시계바늘은 새벽 2시를 가리켰다. 불금이기에 가능한 시각이었다. TV화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다채로운 빛들이 나의 얼굴에 비쳤다. 같은 표정이지만 불그락 푸르락 시시각각 얼굴의 색이 변했다. 쿠션에 머리를 기대고 소파의 널찍하고 보드라운 면에 팔과 다리를 힘없이 늘어뜨렸다. 눈은 빨간 토끼눈이 되어 끔벅끔벅 TV만 응시했다. 눈이 끔벅이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내 금요극장은 문을 닫고 말았다.      




 타닥타닥. 비가림막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타다닥타다닥. 타악기를 치듯 빗방울은 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소리에 잠이 깨었다. 일어나보니 침대였다. 나는 분명 거실 소파에서 잠들었는데 남편이 어떤 수단을 사용했는지 몰라도 나를 침실로 옮겨놓은 모양이었다. 핸드폰 액정을 두드려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침 8시였다. 

“앗! 출근 준비해야지!” 

지각한 학생의 날카로운 외침 같은 나의 목소리에 부스스 잠에서 깬 남편이 말했다.

“오늘은 토요일이야.”

휴. 지각을 하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은 늦잠을 더 잘 수 있다는 기쁨의 한숨이 되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움직일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이불에 자전거를 타듯 발을 굴려보았다. 이불은 발가락 사이사이를 마찰감 없이 미끄러지며 빠져나갔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이불의 포근함을 한껏 끌어안고 싶어 이불을 나의 온몸에 휘감았다. 혼자 토요일 아침을 만끽하는 것이 아쉬운 마음에 옆에서 자고 있던 남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토실토실 근육의 태라곤 찾을 수 없는 하이얀 속살을 드러낸 팔베개가 나의 목덜미 뒤로 쑤욱 밀고 들어왔다. 불혹이 되어가는 잠꾸러기가 귀여운 듯 남편은 자신의 두툼한 입술로 나의 이마에 작은 온도를 남겼다. 남편에게서 얻는 따뜻한 사랑의 온도는 한겨울 손에 쥔 손난로 같았다.      



 토요일의 평화는 평일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기간이었다. 평일의 나는 일 로봇과 다름없이 움직였다. 아침이 되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무거운 몸을 차에 실었다. 출근 전부터 마음이 묵직했다. 돈을 벌기 위해 별 수 없이 향하는 일터로 한껏 눌린 몸과 마음을 겨우 붙들고 나만의 1평 남짓한 공간의 일부가 되었다. 자신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을까봐 혹은 자신을 무시한다는 착각을 갖고 나를 수시로 감시하는 회사 상사의 따가운 시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일만 하는 회사 분위기에 답답했다. 핸드폰에 연락이 와 잠시라도 시선을 핸드폰 쪽으로 향해도 뒤에 있는 상사의 한숨소리가 모니터 사이로 흘러나왔다. 일에만 집중하는 본인을 따라 부하직원도 그리 행동하길 바랐던 것인가. 숨 쉴 틈 없이 답답한 직장생활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나를 가두는 감옥과도 같았다.       




 더욱이 출퇴근길 운전대만 잡으면 옹졸하고 이기적이게 되는, 얼굴도 모르는 운전자들과의 위험천만한 도로 위의 전쟁을 치렀다. 양보라는 배려를 구하고자 나의 차는 연신 노란색 불빛을 깜빡였지만 출퇴근길 위의 운전자들에게 자비란 없었다. 소심하게 옆 차선으로 살짝 내민 차바퀴는 날카로운 경적소리에 주춤하였고 출퇴근시간마다 그들과의 싸움에 지쳐갔다. 전쟁으로 시작해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다시 전쟁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른 무엇에 낼 에너지는 이미 고갈되어 있다. 그렇게 평일 5일을 보냈다.     




 평일동안 차가운 세상에서 이리저리 밀치고 찢기고 하던 나의 몸과 마음은 따뜻하고 포근한 무언가를 필요로 했다. 남편은 나의 몸 하나를 온전히 사랑으로만 보듬을 줄 아는 남자였다. 그런 남자를 만난 것은 다행이었다. 나는 남편의 편안한 팔베개에 기대어 못 다한 토요일 아침의 늦잠을 다시 청했다.      




 킁킁. 잠을 깨우는 코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매콤하면서도 약간은 구수하고 짭조름한 이국적인 냄새. 카레였다. 눈을 떠보니 나의 깊은 수면을 책임지던 팔베개는 떠나고 패드에는 남편의 몸자국만 남았다. 시계를 보니 낮 12시. 잠깐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4시간이 지나갔다. 헝클어진 머리를 질끈 묶고 부엌에 나가보니 열심히 카레를 휘젓고 있는 검정 곰이 서 있었다. 그의 손 끝에 있는 깊은 웍엔 황금빛바다가 흐르고 듬성듬성 보이는 감자, 닭가슴살이 표류하고 있었다. 아,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 맞추어 고춧가루도 빼먹지 않았다. 많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도 남편표 아니 곰표 카레는 정말 일품이다. 피곤한 일주일을 보낸 나를 위해 준비한 남편의 점심식사는 어떤 일류 레스토랑보다도 고급졌다.      




 소담하게 담아낸 카레라이스를 두고 우리 부부는 마주 앉았다. 진지한 얘기보다는 시시껄렁한 뉴스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어뜨리는 시간이다. 요즘 코인에 밤낮가리지 않고 열중하는 남편으로부터 듣는 경주마 얘기는 참 재미가 없다. 매일 급등하는 코인이 달라지는데 그 코인을 경주마에 비유했다. 빨갛고 파란 막대기에 대해 잔뜩 흥분해서 열변을 토하는 남편에게 열심히 듣는 척 고개도 끄덕여 주었다. 나는 남편의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는 그의 원맨쇼를 보다가 피식 웃어보였다. 남편은 이상한 낌새를 채고 왜 그러냐며 괴롭힘 1분 대기조가 되었다. 장난 섞인 비웃음과 투정이 가득한 식탁이었다. 하지만 그 밑바탕엔 일주일동안 고생한 서로에게 전하는 감사, 그 감사를 따뜻한 밥 한 끼와 포옹 한 번으로도 충분히 느끼곤 했다. 거나하게 차려낸 잔칫집 밥상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나는 결혼 전에는 이런 소소한 일상에 행복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토요일이면 어떻게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갈 준비로 일어나자마자 후다닥 샤워를 마치고 새로 산 옷을 골라 입고 도망치듯 집을 빠져 나갔다. 약속이 없으면 혼자서라도 바깥으로 나가 여행이나 가고 싶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시간낭비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스스로에게 한정한 바쁘고 아깝지 않은 주말에 대한 강요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맞이하는 토요일 아침의 풍경은 꽤 많이 변했다. 집돌이인 남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때론 남편과 늦잠을 자기도 하고, 냄비 하나에 라면 세 개를 보글보글 끓여 TV앞에 앉아 말없이 후루룩 씹지도 않은 면을 넘기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결혼 전의 역마살 여자였다면 시간을 아깝게 보낸다며 땅을 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토요일 아침은 대단한 걸 하지 않더라도 내게 소박하지만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시간이 되었다. 햇빛 한 가닥, 포근한 공기, 여유가 가득한 토요일 아침은 주변 환경에 편안히 나를 맡기고 휴식하며 느긋한 나로 만들어 주었다. 돌아올 한 주를 보낼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이 느껴졌다.     



 

 비오는 토요일 아침에 가만히 바깥에 귀를 기울이면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맑은 날엔 지지배배 지저귀는 참새들의 합창이 내 귀를 콕콕 건드리며 ‘평일의 고된 시간 동안 수고했어!’라며 격려하고 다독였다. 토요일 아침은 앞만 보며 나 중심으로 달려갔던 내가 주위의 작은 존재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별 것 아닌 작은 촉감과 감정에서 시작된 안락하고 편안한 기분, 그 여유를 계속 갈망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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