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지금이 '영상의 시대'라는 데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영상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대중적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 이유로 '재미없음'을 꼽고, 누군가는 다큐멘터리가 특정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너무나 관습화되었음을 지적한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런 일면적 평가를 반박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한다, 2022년 극장 관람한 영화 중 객석에서 함께한 관객들이 가장 많이 울고 웃은 영화가 바로 이 작품이라고.
본인 촬영) 2022년 10월 20일 아트나인에서 진행된 <수프와 이데올로기>시사회. 양영희 감독과 배우자 카오루 씨가 사인하고 있다.
카메라가 개인의 삶을 비추는 방식
영화는 감독의 카메라가 그의 어머니 강정희 씨를 비추면서 시작된다. 양영희 감독은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등 본인의 가족들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다. 2006년작 <디어 평양>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감독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어머니는 카메라가 대뜸 다가와도 크게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저 하던 일을 매듭짓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다음 일로 넘어가신다. 오랜 세월을 거쳐 주변인들(주로 카메라가 향하는 대상들)이 카메라가 감독의 눈임을 완전히 인정한 덕에, 카메라가 조장하는 인위성은 이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당신은 오늘날 무수히 많은 카메라가 저마다의 논리로- 특히나 상업 논리로 피사체를 재단해왔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보통의 카메라는 무자비하다. 특정한 프레임 속에 대상을 가두고 상황을 제한한다. 카메라는 피사체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을 속단할 수 있는 폭력적인 도구이지 않은가.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카메라는 폭력적이다. 그러므로 대상에게 방금 한 말을 다시 해달라고 할 수 없다. 다시 행동해달라고 요청할 수 없다. 내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은 배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는 진실의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관객은 스크린 속 인물들의 진실된 삶들을 마주하며 웃고 또 운다.
스틸컷(제공)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트라우마
감독의 어머니 강정희 씨는 다양한 면면을 가진 개인이다. 물론, 우리 모두가 나름대로 그러하겠지만. 강정희 씨는 제주 4.3사건을 피해 일본으로 간 피란민이자 끔찍한 참상을 목도한 소녀였고, 딸에겐 다정한 어머니, 카오루 씨(아라이 카오루, 감독의 배우자)에겐 수줍지만 따스한 장모님이다. '전부 다르지만 모두 강정희 씨'인 개인들을 포착한 다큐는 각기 다른 차원에서 감동과 유쾌를, 때론 아린 슬픔을 준다.
감독은 강정희 씨의 제주4.3사건에 대한 기억을 함께 되밟기 위해 한국의 연구자들을 만나고, 제주를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 강정희 씨의 기억은 알츠하이머라는 시간의 질병 앞에서 희미해져간다. 감독은 안개가 드리운 기억을 거닐며 어머니의 상처를 더듬는다. 어머니는 혼인을 약속한 연인을 잃었다. 그뿐 아니라 매일 얼굴을 마주보고 지냈을 동네 주민들의 시체 더미를 목격했다. 어머니는 살아야 했다. 무엇보다 동생들을 살려야 했다. 그 강렬한 동기가 그를 일본으로 이끌었다. 십대 소녀였던 강정희 씨는 어린 동생 둘을 데리고 수십킬로미터의 해안가를 걸었다. 제대로 된 지도도 없이, 배를 주리며, 오로지 생존을 위해.
몰살을 목격한 그에게 제주는 끔찍한 지옥으로 남았다. 그래서 일본으로 간 그는 남한을 외면한 채 북조선을 지지하며 살았다. 그 누가 그의 공포 어린 증오를 뭐라 할 수 있을까. 강정희 씨와 남편은 북조선을 지지하며 조총련 활동에 진심이었고, 조국이 요구하는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세 아들을 북으로 보내야 했다. 일본에 머물던 북한 청년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이는 북송 사업은 '귀국 사업'으로도 불렸는데, 강정희 씨와 남편 모두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출신 배경을 생각하면 아들들의 '귀국'은 아이러니하다. 이후 강정희 씨는 평양으로 돈과 물건을 주기적으로 보낸다.
커다란 사건이 한 개인의 삶에 남기는 흔적은 생각보다 더 거대하다. 한껏 늘어진 그림자처럼. <수프와 이데올로기>라는 제목에서부터 짐작하듯, 이데올로기는 때로는 잔혹한 학살로, 때로는 가족지간의 깊은 불화로, 다양한 양상으로 번지며 우리의 삶을 흔든다.
스틸컷(제공): 양영희 부부는 강정희 씨와 함께 무차별 총격이 행해졌던 섬, 제주로 향했다.
수프라는 연결고리
이데올로기는 다양한 층위에 영향을 미치며 때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세상을 둘 이상으로 나누는 이데올로기조차도 밥상 앞에서는 후퇴할 수 있다. 정성 들여 차린 밥상에 마주보고 앉은 순간 이데올로기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념의 대립은 옅어지고 '접정'이 피어난다. 나도 모르게 정이 자라난다.
이전 다큐의 한 장면에서 감독의 부모님은 사윗감으로 미국인도 한국인도 괜찮지만 일본인은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필 감독이 사랑하게 된 이가 일본인인 카오루 씨다. 그래서인지 강정희 씨와 카오루 씨의 첫 번째 투숏은 굉장히 어색하다. 서로를 존중하며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히 인삿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 그 와중에 카오루 씨는 더운 날씨에 정장까지 차려 입어 땀을 뻘뻘 흘린다. 어색하지만 냉랭하진 않다.
어색한 공기는 곧이어 강정희 씨가 준비한 수프(닭 백숙)의 온기로 서서히 데워진다. 깨끗이 손질된 닭에 인삼, 대추 등을 한가득 넣고 다섯 시간이 넘도록 푹 끓여 담아낸 닭 백숙. 닭고기를 나눠 먹는 순간 당신이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백숙에 담긴 정성은 그 자체로 당신에 대한 '환대'였다. 그 후로도 수 차례, 카오루 씨가 올 때마다 그녀는 닭 백숙을 준비했다.
닭 백숙 셰프가 강정희 씨에서 카오루 씨로 바뀌는 장면에서, 수프가 개인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임이 분명해진다. 카오루 씨가 강정희 씨 비법 그대로 수프를 끓여 테이블 위로 내오는 순간,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 이데올로기를 초월할 수 있는 접정의 고리임을 실감하는 것이다. 이 순간 당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고 누구를 지지하는지보다 더 중요해지는 것은 '이 닭이 적절히 맛있게 익었는가'일 테다.
스틸컷(제공): 함께 닭 백숙을 준비하는 카오루 씨와 강정희 씨
기억을 되밟는 동행
한 때의 이데올로기가 금기시했던 강정희 씨의 기억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 호명될 수 있었다.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참사에 대해 증언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참사에 대한 기억이 너무도 고통스러웠거나 이에 대해 말할 환경이 아니었기에 수십년 동안 억눌러왔던 이들에게는 더욱 어렵다. 기억을 겨우 의식 바깥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한 것 같았는데 다시 그것을 제 발로 찾아오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정희 씨는 제주 4.3사건의 증언을 위해 천천히 기억을 되밟는다. 관련 연구자들이 그의 집으로 찾아와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모두가 강정희 씨 입을 본다.
위에서 언급했듯 강정희 씨의 알츠하이머 병세가 점점 악화되면서 기억을 되밟는 일은 더욱 험난해진다. 그럴 때마다 감독은 그녀를 재촉하지 않고 언젠가 그녀에게서 들었던 말을 조심스레 던지며 마중물을 넣는다. 카오루 씨는 그 곁을 묵묵히 지킨다. 제주에서 열린 4.3사건 추모식에 참가한 세 사람, 그 중 서툴게 애국가를 부르는 강정희 씨의 목소리가 여전히 선명하다. 꽤나 정확한 멜로디와 꽤나 부정확한 가사는 강정희 씨가 겪어야만 했던 참사와 이후의 삶을 넌지시 드러낸다. 카메라는 이를 어떠한 위선도 평가도 없이 묵묵히 지켜본다.
가이드를 마치며
이데올로기와 기억, 그리고 모든 '다름'을 딛고 존재들을 이어주는 수프.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볼 때마다 매력적인 웰메이드 다큐다. 오래 끓일 때 더욱 진국인 닭 백숙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