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을 조직하는 연월일 체계, 우리는 또다시 커다란 시간 덩어리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우리 모두에게 2022년은 코로나19로부터 일상을 정상화하기까지 우여곡절을 함께했던 해였을 것이다. 필자에게도 2022년은 정상화의 시간이었다. 지난 2년간 끊어졌던 관계와 열정을 재접합하는 시간, 바빴지만 행복했고, 아팠지만 사랑했던 해였다. 누군가를 사랑했고 또 떠나보냈다. 지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충만했던 한 해로 기억되리라.
필자는 지난 연말결산에서 영화 연출의 발걸음을 자축한 바 있다. 영화를 끝까지 마무리하기는 쉽지 않았다. 후반작업은 아주 늘어져 올 상반기까지 필자를 붙잡았다. 후시녹음과 사운드믹싱을 끝으로 많은 비용(시간과 돈)을 지불하며 호기롭게 출발했던 여정은 막을 내렸다. 사진부 기자로서의 새로운 발걸음도 떼었다. 영화 이전에 존재했던 사진 또한 사랑하게 된 까닭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전시를 보며, 필자에게 적합한 매체는 사진임을 직감했다.
근황 이야기는 그만두고, 이제 본격적으로 2022년 영화 연말결산을 시작하려 한다. 문자 그대로 '연말'에 하는 것이 맞으련만, 12월 말부터 지금까지도 하나의 프로젝트에 묶여 지내다 보니 시간이 통 나지 않았다. 이제서야 2022년 6월부터 12월까지 시청한 영화를 목록별로 묶어 여러분께 보여드린다.
코로나를 피해 2021년 극장을 단 한 차례 방문한 것과 달리, 올해는 꽤나 자주 영화관을 방문할 수 있었다. 6월부터 기록을 본격적으로 남겼기에 6월-12월 기준으로 정리해보면 극장 관람은 총 13회다. <시>, <헤어질 결심>, <릴리슈슈의 모든 것>, <베스퍼>, <컴온컴온>, <비상선언>,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아나이스 인 러브>, <수프와 이데올로기>, <알카라스의 여름>, <캐롤>, <뱅크시>를 극장에서 보았다. 특히 최근 리뷰를 남긴 다큐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2번 관극했다. 하반기 동안 총 25편의 영화와 넷플릭스 시리즈 몇 편을 시청하였으며, 넷플릭스와 왓챠 또한 애용하였다. 평점은 5.0만점이며, 기억과 기록 부재로 평점을 매기기 어려운 작품은 줄을 그었다.
한편, 2022년 하반기에 필자는 "스페인 영화"(임호준, 2014)라는 저서를 지도 삼아 스페인 작품을 다수 접했다. 주로 스페인 영화사를 넘어 국제적으로도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걸출한 감독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톺아보았으며, 대표적으로 루이스 부뉴엘, 카를로스 사우라, 빅토르 에리세, 페드로 알모도바르, 훌리오 메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있다. 자세한 가이드는 올 1-2월에 거쳐 소개할 예정이다.
21. <욕망의 모호한 대상>, 루이스 부뉴엘, 1977
평점: 3.5
22. <페퍼민트 프라페(얼음에 얼린 박하)>, 카를로스 사우라, 1967
평점: 3.0
23. <벌집의 정령>, 빅토르 에리세, 1973
평점: 4.5
24.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들>, 페드로 알모도바르, 1988
평점: 4.0
25. <북극의 연인들(북극권의 연인들)>, 훌리오 메뎀, 1998
평점: 4.0
26. <내 어머니의 모든 것>, 페드로 알모도바르, 1999
평점: 3.5
27. <그녀에게>, 페드로 알모도바르, 2002
평점: 4.0
28. <내가 사는 피부>, 페드로 알모도바르, 2011
평점: 3.5
29. <떼시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1996
평점: 4.0
30. <씨 인사이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2004
평점: 4.0
2022년 (개봉한...X, 시청한 O) 최고의 영화
주관적인 감상에 근거한 평점으로, 필자의 취향이 반영됨을 상기해주시길 바란다. 이제 올해(하반기) 감상한 작품들 중 최고의 영화를 발표한다. 필자는 2022년 가장 깊은 여운을 준 영화, 생경한 카메라의 진수를 보여준 영화로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꼽는다. 2022년 10월 20일 개봉한 본 작품은 일본과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국제경쟁 부문 흰기러기상(대상)을 수상, 47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집행위원회특별상을 거머쥐었다. 극장 관람은 더숲아트시네마 등 예술영화관 일부에서 가능하며, 네이버 시리즈온, 쿠팡 플레이, 웨이브 등 OTT에서 단품으로 구입해 시청 가능하니 참고 바란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와 함께, 좋은 영화들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추천드린다.
*장르에 충실한 즐거움을 느끼고 싶을 때
<베스퍼> : 미시적 서사에 집중한 SF_디스토피아의 일면
<떼시스> : 스너프 필름을 소재로 한 범죄스릴러 (스너프: 누군가 살해되거나 자살하는 영상)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들> : 다듬어지지 않은 듯 조화를 이루는 화려한 패턴과 원색의 미장센
<그녀에게> : 투우라는 스페인의 문화상품과 다듬어진 원색의 미장센
화양연화 스틸컷: 네이버영화 제공
*차분하고 담담한 영화에 고요히 빠져들고 싶을 때
<시> : 타인의 고통에 깊숙이 다가가는 시적 동화의 방식
<미나리> : 세대, 문화 등 여러 차이를 건너 당신에게 다가가는 방식
<수프와 이데올로기> : 지금의 당신을 통해 당신의 과거를 헤아리는 카메라
<알카라스의 여름> : 건네받은 것을 지키려던 자들이 서서히 변화를 인정하는 과정_아프지만, 현실적인.
<벌집의 정령> : 말할 수 없는 금기의 역사 속, 과거의 무엇을 놓지 못하고 쳇바퀴 도는 이들의 삶
<씨 인사이드> : 삶을 중단하는 것이 삶의 목표인 자의 욕망과 상상력의 결합
씨 인사이드 스틸컷: 하비에르 바르뎀 주연
*돋보이는 형식적 미와 절묘히 어우러지는 정서
<헤어질 결심> : 잔인한 진실을 맞이하여도 깊어가는, 지독하고 순수한 사랑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남주-여주 없이 그저 '나'만 있는 주체적 로맨틱 코미디
<북극의 연인들> : 운명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운명적으로 이어질 수 없는 사랑
<릴리슈슈의 모든 것>
헤어질 결심 스틸컷: 네이버영화 제공
가이드를 마치며
2023년은 더욱 영화와 가까운 한 해를 보낼 것 같다고 직감한다. 필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2023년엔 영화를 사랑하는 여러분께 더욱 흥미롭고 알찬 <영화가이드>로 찾아갈 것을 약속드린다. <영화가이드> 뿐 아니라 다른 브런치북 글들 또한 부지런히 여러분에게로 가 문을 두드릴 것이다. 당신의 2023년도 따뜻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