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승무원 사이에서
대학을 진학하면서 장래희망이 바뀌었다. 아니 장래희망이 사라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또 쉬는 동안에도 내가 이랬던 분야는 서비스직이었다.
영화관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또래들과 일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지만 사람 대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마디 말을 하더라도 고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지, 내 말 한마디로 인해 컴플레인이 들어오지는 않을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리 아르바이트 생이더라도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상사에게 경위를 설명해야 함과 동시에 동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소문이 도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내 말과 행동이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고 나 스스로가 점점 사라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나에게도 로망이 생겼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나는 학력이라는 스펙이 없었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비스직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고 목에는 사원증을 매고 나만의 책상에 앉아 컴퓨터 앞에서 하는 전문적인 사무직.
이제 더는 서비스직에 있으며 고객의 심기를 건드려 컴플레인이 들어올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뻤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했다.
대학 때 전공 관련 인턴 경력이 전혀 없어서였을까? 졸업하기 전부터 전공 관련 직무에 이력서를 넣으면 탈락하기 일쑤였다. 대학 다니는 동안 대학 공부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학 때에도 학교 기숙사에 있는 피자집에서 일하면서 또다시 서비스직에 몸 담았다. 그게 무슨 스펙 쌓는 것이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나에게는 학교 다니면서 일하는 이 두 가지 일만으로도 벅찼다.
'대학 때 전공 관련 인턴을 했어야 했나? 용돈 벌면서 학점 관리 하기에도 빠듯한 삶이었는데...'
졸업을 1년 정도 남겨뒀을 때부터 계속 이력서를 넣었지만 졸업할 때까지 결국엔 면접을 볼 기회가 단 한번 조차도 없었다. 나는 시간에 떠밀려 졸업하고 졸업 후 1년 가까이 한국에 있으면서 갭 이어를 가졌다.
1년 후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취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까? 처음에는 적성이나 장래희망이었던 분야에 이력서를 넣으면서 취업 준비를 하다가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점점 하고 싶었던 일보다는 채용 공고에서 내 스펙이나 조건에 맞는 분야에 이력서를 넣게 됐다.
처음에는 누구나 이름을 들어본 대기업에서 점점 낯선 중소기업으로... 그리고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서비스 분야에 점점 다시 눈을 돌리게 됐다. 예를 들어 호텔이나 항공 업계 등으로.
그리고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서비스 분야에 점점 다시 눈을 돌리게 됐다. 예를 들어 호텔이나 항공 업계 등으로.
이력서를 100군데 넘게 내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공무원 쪽이 그래도 서류 통과가 사기업보다는 그나마 쉽구나.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은 공무원 채용 과정이 일반 기업과 비슷하다. 한국처럼 필수적으로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시험이 필요한 직무에서만 시험을 치르고 아닌 곳은 일반 기업 채용 과정처럼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봐서 합격하는 방식이다.
사기업은 이력서를 넣어도 도통 서류가 통과되지 않아 면접 볼 기회 조차 없었는데 공무원은 10-20군데 정도만 지원해도 면접의 기회가 몇 차례 주어졌다. 공무원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승무원도 같이 준비했다.
우습게도 취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어렸을 때 꿈꾸었던 승무원이 떠올라 차곡차곡 승무원을 준비한 게 아니라 서비스직으로부터 도망치다가 결국엔 다 안돼서 돌고 돌아 어렸을 때 꿈이 승무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준비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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