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교실 게시판에 손바닥 만한 크기의 색도화지에 장래 희망을 써서 붙인 적이 있다.
그때 내 장래희망을 뭐라고 썼는지 기억은 안 난다. 친구들의 장래희망은 뭘까 쉬는 시간에 게시판을 둘러보는데 스튜어디스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그때는 스튜어디스가 무슨 직업인지 몰랐는데 1년 뒤 스튜어디스가 무슨 직업인지 알게 된다.
5학년 때 제주도로 며칠간 교환 학생을 갔다. 그때 태어나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는데 탑승권을 받고 비행기에 올라 좌석이 어디인지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마침내 주변에 서 있던 승무원에게 내가 앉아야 할 곳이 어딘지 물었다. 승무원이 탑승권을 보여달라고 물어 탑승권을 건네다가 승무원의 손을 스쳤는데 그때 승무원의 손이 참 보드랍다고 느낀 게 승무원에 대한 첫인상이다.
제주도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기내에서 친구가 티슈로 어설프게 바나나를 접어 등 뒤에 숨기고는 복도를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바나나 드실래요?"라고 물었다. 승무원이 "네, 주세요"라고 밝게 웃으며 답하자 친구가 티슈로 만든 바나나를 건네며 "바나나 드세요"라고 말했다. 나를 포함한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까르르 웃었고 승무원도 웃으며 친구를 귀여워하던 기억이 난다.
승무원에 대한 첫 기억을 마음 한편에 접어두고 잊고 살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승무원. 여학생이라면 한 번쯤 꿈꿔봤음직한 선망의 직업. 그때 누군가가
"승무원이 왜 되고 싶어?"라고 물었다면 나는
"돈도 벌고 여행도 할 수 있어서."라고 솔직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당시 승무원은 민간 외교관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얼마나 멋있는가. 승무원이 되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언어의 장벽으로 의사소통이 힘든 승객을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모실 수 있다는 것이.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유니폼을 입고 기내에서 승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도움이 필요한 승객을 돌보는 봉사 정신이 투철한 직업. 이것이 내가 고등학교 때 품었던 승무원에 대한 환상이다. 나중에 승무원에 대해 내가 크게 오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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