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도서관 방문기 1
체력거지 내향인의 아무래도 좋을 여행
비행기가 랜딩을 위해 고도를 낮춘다. 나리타 주변에 이런 골프장이 있었던가? 초록색이 만연한 풀밭을 보며 나는 7년 전 도쿄여행을 떠올렸다. 그때는 밤에 도착해 전혀 보이지 않던 풍경이다. 동생과 아이들과 함께한 여행이었는데, 나리타에 내리니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어떻게 숙소까지 갔는지 정신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2004년 첫 도쿄여행 이후 20년이 되었다.
올해의 도쿄는 생각지도 못하게 급작스러웠다. 블로그 이웃이었던 우리는 하루키 덕후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오픈톡방에 모여 활발히 대화를 나누었다. 6월에는 실제로 만났고 9월에 하루키 도서관에 가자며 의기투합했다. (조금 전에 처음 만났고 전부 내향인ㅋㅋㅋ) 작가를 덕질한다는 건 그랬다. 우린 좋아하는 작가를 찬양하며 좀 행복했나?
여름은 하루키의 책들을 간헐적으로 재독 하며 보냈다.
태엽 감는 새는 24년 만에 읽는 거였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어릴 때와 달랐다. 흘러간 시간만큼 나도 달라졌겠지만 성숙해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의 책을 읽으며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지만 유독 덥고 긴 여름이었다. 지진과 태풍 소식에 조바심도 났다.
대문자 P인 나는 여행도 대단히 심플하여 항공권과 숙소만 예약하면 준비 끝. 그때그때 상황에 적응하는 편이다.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이 지면을 빌어 다음 일정을 끊임없이 생각해 주신 일행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무튼 여자 셋이 모여 접시라도 깨트릴 요량이었는지, 겁도 없이 덜컥 도쿄행 티켓을 사버린 우리는 나리타 공항에서 만났다. 나와 인천에서 함께 출발한 혜경님과 청주에서 출발한 은선님까지 우리 셋의 확고한 목표는 하루키 도서관이다.
사실 나는 올해 초, 혼자 도쿄 여행을 하려고 계획을 세웠더랬다. 도쿄에 사는 지인을 방문하는 김에 하루키 도서관도 다녀오리라는 혼자만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약속이 그렇듯 하루키 덕후들을 만나고 간단하게 잊혔다.
지금 생각해 봐도 다소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온다. 대문자 I성향 셋이 처음 만나 여행을 계획하고 두 번째 만남에 정말 여행을 했다. 이런 실행력의 동기는 하루키다. 덕질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