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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Jul 06. 2020

환상이 만든 우리 가족, 반려동물.

반려동물: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개는 훌륭하다>라는 프로그램을 알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프로그램이 마치 내가 어릴 적에 보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개판을 보는 것 같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볼 때마다 꽤나 짜증이 났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모든 아이들이 사실은 그들의 부모 때문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로 낙인찍혔듯이 내가 보기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들의 환상으로 개를 데려오고 현실은 그것과 맞지 않는 것을 보면서 강형욱 훈련사님께 본인들의 그 환상의 개를 만들어 달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사람들이 개라는 동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방영한 볼더 콜리 코비 편을 볼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주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귀여워서 개를 입양한 것처럼 보였고, 자기의 존재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자라나는 코비의 입질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사이 보호자는 또 다른 새끼 볼더 콜리 담비를 입양해왔고 안타깝게도 코비는 담비까지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입질을 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강훈련사님은 코비에게는 지속적인 훈련을 그리고 담비에게는 다른 곳으로 입양시키는 것을 제안했다. 주인들은 절대 개를 보낼 수 없고, 훈련도 본인들의 원하던 해결 방식이 아니라며 그 제안에 대립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 방송을 본 직후에 나는 너무 화가 났다. 견주들이 무슨 생각으로 개를 데리고 왔는지 이해가 안 됐고, 훈련사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코비를 위해서 방송 신청을 한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방송이 나간 직후 코비네 견주들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신상정보와 sns 계정까지 유출되었고 동물학대를 한다는 이유로 코비와 담비를 구조해달라는 청원글까지 올라왔다.

'인과응보네.''이렇게 될 줄 알았다.' 속에서 나오는 통쾌함도 잠시, 나를 포함한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또 다른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뭐가 그렇게 떳떳할까.


사실 동물의 겉모습만을 보고 대책 없이 입양을 결정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든든하지만 천사 같은 성격의 레트리버, 인형 같은 외모의 포메라니안, 귀여운 엉덩이를 가진 웰시코기 등 같은 강아지라도 다양한 환상을 가지게 되는 그들의 매력이 있다. 여기서 이 환상들 때문에 동물을 입양하지 않은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동물을 공부하고, 동물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코비 편>에서 봤던 그 상황들은 내가 항상 봐왔던 일들이었다. 내가 대학생활을 할 때 한 동기는 볼 때마다 반려동물이 바뀌었다. 그 친구는 주로 강아지 종류를 많이 바꿨는데 한 번은 전에 있던 미니핀은 어디 갔냐고 물으니 너무 짖어서 파양을 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강사모(강아지를 사랑하는 모임)'의 회원이었다. 내가 동물병원에서 일할 때는 이미 병원에 주인이 버리고 간 개들도 있었고, 주인 스스로 케어가 안 되는 동물들 때문에 우리가 다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리고 손님들이 호소하는 대부분의 문제가 돈이었는데  그중 가장 충격받았던 일은 자신은 유기견 보호소에서 이 강아지를 입양한 것이니 할인을 해달라는 손님들이었다.  아, 이게 진짜 가족일까.

나 또한 절대로 떳떳할 수 없다. 내가 만난 나의 첫 번째 동물은 페키니즈 종의 강아지, 츄츄였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 부모님은 집에 혼자 남겨질 내 걱정에 강아지 입양을 결정했고, 츄츄를 처음 본 순간 빨리 기르고 싶다는 마음에 급하게 입양을 했다.


우리가 반려동물을 입양하려고 할 때 그 이유를 먼저 떠올려보자. 혼자 살기 외로워서, 아이의 친구가 필요해서, 꼭 길러보고 싶었어서. 그 어느 것도 그들을 위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지금은 강형욱 훈련사님 덕분에 인식이 많이 변했지만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집에 홀로 남겨지는 강아지에 대해서 주인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들이 외로워할 그 시간은 무시해버리기 일수였다. 그들의 입장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그들을 위하는 척 '친구'를 만들어주지만 사실 그들이 원하는 건 '우리'라는 사실을 모르는척했다. 나는 동물을 기르는 사람들 자체를 비판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반려동물을 악세사리쯤으로 생각하는 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경계선을 구분하기는 정말 어렵다. 하나하나 짚기 시작하면 떳떳한 사람이 누가 있으며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우리의 반려동물들에게 우리는 가족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가 공부하지 않는 이상 그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들은 강아지, 고양이, 새 등 어떠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인식한 뒤에 자신의 이기심으로 그 생명체를 데려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단순히 귀여워서 데리고 온다기엔 우리 반려동물들의 생은 꽤나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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