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짓기와 글쓰기 -
지금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운 이야기가 있다. 첫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보통 학교에 발령이 나면 두 가지 일을 준다. 하나는 학년과 반을 배정받아 담임을 맡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 운영에 필요한 업무이다. 내가 첫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4학년이었고, 업무는 ‘문예’였다. 문예 업무는 학교에서 진행되는 온갖 글짓기 관련 일을 처리한다. 그땐 요즘의 글쓰기란 말 대신 글짓기란 말을 썼다.
삼십오 년 전 처음 만난 아이들 가운데 아직도 기억나는 얼굴이 있다. 깎아놓은 밤처럼 동글동글 귀여웠던 까까머리 승운이, 빼빼 마른 몸에 유난히 검은 눈동자가 눈에 띄던 똑 부러진 지혜, 말이나 행동, 표정이 동네 아저씨처럼 구수하던 어린 낚시꾼 지섭이…. 그 아이들 모두 지금은 중년의 엄마, 아빠가 되었을 거다. 내 기억 속 지혜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예쁘장한 얼굴에 학습능력도 뛰어났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마저 남달랐다. 요즘 말로 치면 엄친딸에 해당한다.
지혜는 다른 것 못지않게 글짓기도 잘했다. 나중엔 우리 반 글짓기 대표선수가 되었다. 난 문예 업무를 맡고 있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글짓기 대회의 준비부터 응모까지 전 과정을 도맡아 했다. 교육청이나 각 기관, 단체에서 학교에 보내는 공문 중 제일 많은 것이 글짓기 대회 공문이었다. 시기별로 날아오는 글짓기 대회 주제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식목일 즈음의 나무사랑, 불조심, 어버이날 기념 효행글짓기, 유월이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나라 사랑 글짓기 그밖에도 자연보호, 절약 저축… 일 년 내내 글짓기 대회 공문이 끊이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최대한 많은 대회에 응모하기를 원했고, 당연히 목표는 상을 타는 것이었다.
나는 발령받자마자 졸지에 글짓기 선수를 양성하는 코치가 되었다. 교무회의 시간마다 글짓기 대회에 참가해 상을 타오라는 압력을 받았다. 난 학교에서 요구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 대회에 참가하고, 상을 타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잘하는 일인 줄 알았다. 아이들에게 글짓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글짓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글짓기 숙제를 낼 때마다 아이들은 짜증스러운 듯 “또요?” 하면서 싫은 내색을 했다. 아이들은 자기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주제를 가지고 억지로 글을 써야만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들이 숙제로 해온 글 중에서 한 편을 뽑아 교내 대회에 제출했다. 각 학급에서 나온 글들은 1차 교내 대회를 거쳐 교내 시상을 했다. 최우수상을 딴 아이의 작품은 개별지도 후 각 기관에서 주최한 글짓기 대회에 응모했다. 그 과정에서 난 아이들 글에 대해 조언을 했고, 아이들은 내 조언대로 글을 고쳤다. 아이들 글은 글짓기 대회 주최 기관이 의도한 가치나 생각이 담기도록 고치게 했다.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으면 추가할 문장을 써 주기도 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계속 상을 탔고, 담당교사였던 난 ‘글짓기 지도 잘하는 신규교사’ 꼬리표가 붙었다. 아이들이 상을 탈 때마다 나도 글짓기 지도 교사상을 탔다. 글짓기 선수가 되어 가짜 이야기를 써서, 그것도 선생님 의견과 생각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글로 상을 받은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기 이야기를, 자기 힘으로 써서 받은 상이 아니었으니, 기쁨보다는 찝찝하고 불편한 마음과 함께 자존심도 상했을 것 같다.
대개 교육청이나 기관, 단체에서 주관하는 글짓기 대회에는 나름의 목적이 있었다. 주관하는 쪽에선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 주입이나 홍보가, 학교에서는 상을 타서 실적을 올리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솔직한 자기 생각이나 삶이 드러나는 글 대신 어른들이 원하는 생각을 어른들 말을 흉내 내어 썼다. 글짓기 대회 주최 측과 학교, 문예 담당교사가 한통속이 되어 아이들을 글짓기 기계로 만들고, 순수해야 할 마음에 거짓을 덧씌우며 아이들 삶을 망가뜨렸다.
이오덕 선생님은 ‘삶을 떠나 거짓스러운 글을 머리로 꾸며 만드는 흉내 내기 재주를 가르치는 것이 “글짓기”이고, 참된 삶을 가꾸는 정직한 자기표현의 글을 쓰게 하는 교육을 “글쓰기”라고 하셨다. “글쓰기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다. 곧,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것”이라고도 하셨다. 나의 글짓기 지도가 글쓰기 교육으로 바뀐 것은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를 배우면서부터였다.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를 읽으며 첫 발령지에서의 내 무지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짓게 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정직한 글, 아이들 삶과 마음을 담은 글,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건강한 삶을 가꾸어가는 글쓰기는 내게 글쓰기 교육의 지침이 되었다. 첫 발령지에서의 부끄러운 글짓기 지도는 이후에 아이들이 쓴 글을 읽을 때, 아이들과 글쓰기를 할 때마다 반면교사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