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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풀 Jul 24. 2024

누군가의 용기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겁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학교 강의실이었고 교수님께서 누가 반장을 맡고 싶은지 물었을 때였다. 나는 반장이 하고 싶었지만 손을 들어 저요!라고 말할 만큼 배짱이 있는 성격이 아니라 망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옆자리 동기가 해사하게 웃으며 "겁쟁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겁쟁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오기이기도 했다. 때마침 손을 든 게 나뿐이어서 나는 원하는 대로 한 학기 동안 그 강의의 반장이 될 수 있었다.

웃기지, 겁쟁이라는 말에 용기가 솟기도 한다는 게. 사실 나는 겁쟁이가 맞는데. 주목받는 것도 싫고 눈에 띄는 것도 싫어 절대 나서서 발표하지도 않는데. 동기는 강의실의 누구보다도 힘차게 박수치며 내가 반장이 된 걸 축하해주었다. 한동안 강의실에서는 박수소리가 이어졌고 그 후로 교수님도, 수강생들도 모두 나를 반장이라고 불렀다. 어쩌면 나는 정말 겁쟁이여서 겁쟁이라고 불러주어야만 용기를 내는지도 모르겠다. 용기 내봐, 한번 해봐, 할 수 있어, 라는 나와 멀리 있는, 낭만적인 말보단 아주 가까운 말, 겁쟁이라고 불렀을 때에야 나는 꿈틀 하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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