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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와우 Oct 08. 2024

여전히 두렵지만 시작은 한다!

발목을 잡는 완벽주의에 힘 빼기.

성수동에서 열린 'WAYS OF WRITERS: 작가의 여정' 브런치스토리 팝업 전시에 다녀왔다. 글을 쓰고 싶고 좋아한다 하면서 '쓰지 못하는' 나는 써야 할 동기가 필요했다. '작가가 되어가는 여정'이니 방법이 있지 않을까?궁금함을 안고 찾아간 전시장엔 선망하는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하나하나씩 읽어가며 그 과정을 공유하니 내 일처럼 가슴이 뛴다. 그리고 돌아선 코너에서 맞닥 드린 글감카드!'쓰고 싶지만 쓰지 못하는' 에 걸린, 나 같은 사람을 구해주고자 브런치님께서 베푸는 명약! 나는 빌어먹을 완벽주의 덕에 쓰지 못하는 병에 걸려있다. 이놈의 병이 채운 족쇠 덕에 나는 늘 준비만, 마음만 먹지만 이번에는 병이 주는 뜻밖의 부작용으로 좀 다르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병과 공존하는, 주어지면 끝까지 해내는 '근면함'이다. 브런치님께서 친히 입에 떠 넣어 주시는 이 약을 나는 오늘부터 꼭꼭 씹어 먹고자 한다. '이걸 한다고 달라질까?'란 의심병은 집어 던지고 무조건 남을 무언가를 생각하며 부작용을 요긴하게 잘 살려보자.




 오늘은 첫 번째 날, '추억'. 기억 속 가장 첫 번째 추억에 대해 써보세요.


생각이 많은 나는 또 생각 속에 잠긴다. 매번 그러고 싶지 않으면서도 정답을 찾아 해메이는 버릇을 떼어내지 못하듯 '추억'과 '기억'의 차이를 홀로 구분지으려 사전을 뒤적거린다.


'추억',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나 일.

'기억',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친절한 네이버씨는 돌이켜 생각해 낸다는 것에 둘의 차이가 크게 없다는 듯 말하지만 나에게 둘은 F와 T처럼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하얀종이 위에 까만 펜으로 반듯하게  답을 적어내려 가는 것이 '기억'이라면 '추억'은 젖은 종이 위 푸른 물감이 번져가는 것을 보며 '그런 하늘을 본 적이 언제였더라?' 시간을 더듬은 행위 같은 거다. 여기서 맞고 틀린 것은 모르겠지만 그만치 정리가 되고 나니 깊은 시간의 방에서 '추억'을 뒤적거리는 나를 보게된다.

곰곰히 생각에 잠겨 '번째'란 단어에서 표류하길 한 참... 가야 할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붙잡는 것을 떼어내 버린다. 그제사 다시금 다가오는 '추억'. 그것은 언젠가 보았던 가슴 벅찬 가을 하늘의 기억이 아니라 아프고 힘겨웠던 강렬한 감정들이다.


20대 중반, 자발적 백수로 시작된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능력 간의 극명한 차이' 실감하며 우울에 깊이 젖어들고 있었다. 환상, 착각 속에 살던 내가 직면한 현실은 알몸으로 살이 찢길듯한 매서운 추위 앞에 서있는 것과 같았다. 나란 사람이 싫어지고 별 볼일 없는 쓰레기 같은 자괴감이 들던 어느날 순진한? 남자친구는 마음을 풀자며 친구들과 하룻밤 여행을 가자 했다. 싫은 마음 가득히 끌려간 곳에서 도저히 웃을 수 없던 나는 먼저 방에 들어왔다. 캄캄한 방, 저렴한 민박집의 쿰쿰한 냄새, 작은 창문으로 세어드는 희미한 달 빛. 불도 켜지 못한채 나는 울었다. 앞도 안보이고 갑갑하고 지져분한 이 공간이 나 같아서, 더도 덜도 없이 그게  나여서 눈물이 났다. 연민이었는지 설움이었는지 모를 눈물이 주루룩 흘렀고 배게로 입을 막아도 새어 나오는 오열이 되었다. 이상한 낌새에 따라온 남자친구의 품에서는 통곡으로 이어졌다. 뭐라고, 내 상태가 이렇다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목구멍 저 밑에서 꿈쩍도 않고 가라앉아 있던 언어들은 슬픔, 괴로움의 비명으로만 튀어 나왔다. 방바닥에 누워 부르튼 눈이 떠지지도 못할만큼 울음이 넘칠 때 깊은 바다, 어두운 바닥까지 끝없이 침전되는 내가 보였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더이상 나올 울음이 없게 되었을 때에야 나는 바닥에 놓였다.

'여기가 끝이구나. 이제 더 내려갈 곳이 없구나'

끝에 닿았다 생각하니 마음에 고요가 일었다. 눈물이 멈추고 갇혀있던 목에서 말이 나왔다.

"나 너무 힘들어서... 미안해"


그 날 이후 한동안 더 백수로 지내던 나는 몇 개월 뒤 미술학원 선생님으로 취업을 했다. 마지막까지 가고 싶지 않았고 4년제 미대를 나와 그런 곳을 간다는 건 인생이 망했다 생각한 어린날의 내 모습을 벗어나 현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뒤에서 수근수근, 비아냥을 들을 것 같던 현실은 있지 않았고 여전히 나는 밥 값은 하는 사람 이었다. 그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 작은 틀을,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듯한 그 일이 그리 어려웠을까?

지금에서 '추억'으로 돌아본 그 날의 기억은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것 같던 아이의 착각이 현실과 만나 확실히 눈을 뜬 순간이었다. 그 시간은 험했고 측정하지 못할만큼 아팠지만 그렇게 뜨인 눈으로 세상을 받아들여 짧지만 긴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었다.


'추억'은 왠지 향긋하게 다가와 가슴을 두드릴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도 온 몸으로 느껴지는 강렬한 경험을 더듬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삶에서 어느 쪽으로 느껴지는 추억이 더 많을까?어느 쪽이 많은게 더 좋을까?

나는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 그 때의 어떤 기억에도 고개가 끄덕여 지고 지금의 내가 그 때를 따듯한 마음으로 보듬을수 있다면 괜찮다 생각해 본다. 그럴 때 모든 것은 진짜 '추억'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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