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란 단어가 가슴에 닿으면코를 빌어가볍지 않은 숨이 나온다. '부담' 서린 마음이 바람과 함께 밀려나는 소리. 2021년까지 요리는 나를 내려 앉혔다.
'주부'가 직업이던 시기,빠듯한 경제상황을 이겨내 보려 유능한 주부가 되고자 했다. 부족하지만 살뜰히 집을 가꿨고 몸에 밴 근검절약으로 살림도 단단히 꾸려갔다. 깨끗이 정리하고 청소하면 좁은 집은 단정히 내 집만의 예쁨을 품었고 아이들 옷부터 가구, 생활용품까지 필요한 것은 손을 거쳐 만들었다. 다행히 보다 좋게 만들어 내는 재능이 있었고 재밌는 일이었다. 나는 유능한 주부였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괜찮기는커녕 버려지는 낙제점을 얻는 것이 있었으니... '요리'였다.
이렇게 말하기 뭐 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이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칭찬에 인색한 남편도 '잘하는 것은 잘한다!' 말한다. 소위 수백 번 해 본 음식들은 "맛있네~!"소리가 나오게 한다. 하지만 새롭게 적용하고 응용해 보고 시도하는 것은, 그것이 요리라면 나는 아니다. 요리는 유능하지 못하다.
'식비'에서 소득을 창출하려던 유능한 주부는 가진 것이 시간과 체력이었기에 매일 마트와 채소가게를 돌아 단가를 따져가며 구입했다. 어쩌다 장을 한가득 보고 돌아오는 길에 특별 세일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또 하나하나 따져 환불과 구입을 반복하기도 했다. 집에 오면 재료를 소분하고 버려지는 식자재가 없도록 식단을 짰다. 없는 아이디어를 동원해 요렇게 조렇게 음식을 만들면 어떤 날은 먹히고 어떤 날은 가차 없이 퇴짜 맞았다. 같은 게 지겨워 좀 새롭게 해 보면 입이 짧고 질감에 민감한 아이들이 거부하기 일쑤였고 좋아하는 것은 유난스럽게 많이, 별로인 것은 손도 대지 않는, 갖다 버리고 싶은 취향을 가지신 남편님 덕분에 음식은 대학수학능력시험만큼 어려운,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세상에!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저렇게 힘들게 살았나 싶지만, 유능한 주부를 꿈꾸던 이는 이후 십 년 넘는 세월이 흐를 때까지 '의무감'하나로 요리를 붙들어 왔다. 하던 것을 하고, 또 하고, 계속하다 지겨워서 새롭게 해 보다 버려지고, 또 어쩌다 괜찮은 것을 찾아내 계속 만들면서. 그리고 3년 전쯤 아이들이 조금씩 자기 밥을 차려먹기 시작할 때 해방을 선언했다.
'나는 음식에서 의무감을 버리겠다!'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 것을 '주부, 유능한 주부'가 되기 위해 매어 놓았던 의무감을 풀겠다고, 이제 각자가 해주는 음식이 없어도 굶고 살진 않을 때가 되었으니 의무감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겠다고 말이다.
남편은 '언제 그렇게 공을 들여했나?'는 듯 의아해하다 그럼 '완전히 손을 놓겠다는 것?'이냐 눈에 힘을 줬지만 쿨하게 "응~ 괜찮아~~~!" 하는 아이들 덕에 힘을 풀었다. 일찌감치 자기가 먹는 것은 스스로 할 수 있게 불도 칼도 사용하게 알려준 덕이 돌아오나 보다. 남편은 지금도 내가 길게 자리를 비우려 하면 여전히 밥타령을 하지만 나 역시 완전히 손을 뗀 것이 아니라 나여야만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니 이 정도면 O.K!
지금에 와서 '유능한 주부'를 꿈꾸던 때를 돌아보면 급했고 좁았고 너그럽지 못했음이 보인다.
가진 재능이 없는 것에 노력을 부어 그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조급하게 실망했고,
유능한 주부로 인정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혜안이 좁았다.
노력하고 인정된 것을 알아봐 주기보다 못하는 것에 매달려 자신을 닦달하는 자비로움이 없었다.
유능한 주부의 타이틀이 마음도 생각도 시각도 닫았었음을 이해한다. 숱하게 노력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던 긴 시간에 번아웃이 왔고 그럼에도 내려놓지도 벗어나지도 못했던 자리를 '의무감'으로 채웠다. 버틴다는 것은 고됨을 바탕으로 한다. 힘들기에 변화가 없고 볼 수 없다 생각하지만 버텨온 시간 사이사이에는 숨겨진 작은 차이가 존재한다. 괜찮았고, 망했고, 그저 그랬고, 별게 없었던 시간이 주는 경험. 미묘하고 너무 대수롭지 않아서 느껴지기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해 나를 깨닫게 하고 몸에 남는 변화.
좀 더 자고 싶은 날의 아침, 일을 하고 돌아온 저녁시간, 모처럼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날의 어느 때라도 지금은 나보다 앞서 유능한 주부가 되지 않는다. 나를 먼저 살피고 채워주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좀 채워지면 또 괜찮은 주부로 돌아간다. 버팀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