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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와우 Jan 25. 2023

가장 먼저 답해봐야 할 질문 1(아주 예전 이야기)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무엇을 하려 하는가?'-처음엔 폼나는게 좋았어요.

VMD(visual merchanddiser), 미술학원선생님, 미술치료사, 아동심리미술. 40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직업들을 거쳐 왔습니다. 20대 초반부터 40대까지 이 정도의 타이틀을 갖고 살아왔다면 변화가 적은 것일까?


20대에는 멋진 직업이 갖고 싶었습니다. '쇼윈도'라는 공간을 표현하는 것이 선택된 일인 듯 우쭐했어요. 노가다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순수미술 전공을 살려 창의성과 상업성연결시키면 가능한 일이었기에 원하던 것에 맞았고 자유로우면서 무엇보다 '폼'이 났습니다. 재밌게 일했어요. 이후 옮겨간 명품 의류회사에서 같은 VMD일을 하면서 이쪽 일을 완전히 떠나게 되었어요. 공개로 열리는 브랜드 행사를 하던 어느 날 '00 사모님'들께서 손 짓으로 택하는 옷들이 내 연봉을 훌쩍 넘는 것을 보았을 때 순간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일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돈, 소비'만을 조장하는 일에 내가 쓰이는 것이 싫었어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란 것이 직관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떠나는 건 쉬웠어요. "그만둬야겠습니다. 저는 이쪽과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에 깔끔하게 퇴사자로 처리되었으니까요.


'일의 가치'를 생각하며 때려치웠지만 이상과 현실에서 '나'라는 사람은 번뇌했습니다. 이상은 '가치'를 쫓는데 현실의 볼품없는, 아무 기술과 능력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미술학원선생님' 뿐이었서서요. '그래도 4년제 미대를 나와서 내가 하는 일이 동네 미술학원선생님이라니...' 이 열등한 패배감이 '미술학원선생님'으로 일하게 하기까지 일 년이 넘는 시간을 흐르게 했어요. '어떻게 바닥을 인정하고 그래도 두 발로 서게 되었는가?'를 돌아보면 엄청난 고통은 기본값이었다 치고 원하는 것, 책임져야 하는 것을 할 수 없는 수중의 '돈'이란 현실이 가장 선명하고 정확하게 정신을 휘갈겨 주었던 것 같습니다. 첫 직장에서 사표를 냈을 때처럼 스스로 바닥을 인정한 후로는 번뇌가 없었어요.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내가 바닥인데 더 내려갈 곳이 어딨겠어?' 민망할 정도로 깔끔했습니다. 체면치례도 아쉬움도 없었던 바닥에서의 시작은 '여유'를 주었어요. 겉으로 보이는 '이 일을 하는 나'보다 '이 일이 나에게 주는 것'으로 방향이 틀어졌고 생각을 머물게 했습니다. 정말 하얀 도화지 같은 아이들이 무엇을 주는가에 따라 가지가지의 것들을 만들어 낼 때 '나의 영향력'에 두려움과 희열이 교차했어요. 그런데 저는 좀 겁보였거든요. 나쁜 짓은 못하는 사람이라 내가 아이들 손에 무엇을 쥐어 줘야 하는지 모를 그 두려움이 컸어요. 무서워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조금씩 따져가 봤던 듯해요. 그때는 '당장 뭘 알아야 알려주지'란 마음으로 시작한 공부였는데 결국엔 나를 키워내는 '셀프양육'의 시작이었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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