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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수라떼 Mar 19. 2020

05화 부모에게 던지는 두 개의 질문

부모의 즐거움이 먼저다




천국의 문 앞에서 받게 될 두 개의 질문



영화 'Bucket List'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웅장한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잭과 모건은 영화가 가진 메시지를 서로의 대화에 담아낸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그들의 영혼이 천국의 문턱에 다다르면 두 개의 질문을 받는다고 믿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천국과 지옥을 가른다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은 즐거웠습니까?

당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되었습니까?

이 영화가 개봉한 2007년 나는 이집트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벌써 십 년이 훌쩍 넘은 그 시절, 이집트에서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하는 것은 인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나마 카이로였기에 인터넷이 가능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다운로드를 하기 시작해도 퇴근해서 돌아오면 20% 정도 받은 상태로 먹통이 되곤 했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반복하면 영화 한 편을 겨우 받을 수 있었다. 1 byte가 소중한 영화인 것이다. 영화 대사 하나하나를 단물이 빠질 때까지 씹고 또 씹었다.

그렇게 온 우주의 기를 모아 영화 한 편을 보던 시절, 난 'Bucket List'를 봤다. 그리고 저 두 개의 질문에 어떤 답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서글픈 밤이 지났다.  


출제 의도를 파악하라


당신이 천국의 문 앞에서 이 질문을 받는다면 어떨까? 자신의 인생을 초조하게 되감아 보며 정답을 고심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피면접자의 관점이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출제자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려 노력한다. 우리는 질문의 의도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출제자의 의도를 말이다.


1. 당신은 삶에서 즐거움을 찾았는가?

천국과 지옥을 관장하시는 분께서 어찌 고된 이승의 삶을 모르겠는가? 찰리 채플린이 말했듯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얼마나 비극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당신은 알고 있지 않은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는지. 천국에 가지 못한 자는 어쩌면 이승으로 다시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이 비극을 다시 이어가는 것만큼 지옥은 없을 테니까.

이승은 그런 곳이다. 실망하고 슬퍼하고 답답하고 죽고 싶은 날들의 조합이다.

그런 곳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았냐고 묻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바로 진흙탕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당신의 능력을 묻는 질문이다.

그런 능력이 없다면 천국마저도 비극으로 느낄 테니까.

천국이라고 별 것 있겠는가? 반나체 천사들이 꼬추 덜렁거리며 날아다니고 아침 점심 저녁 과일만 따먹고 살아야 하는 곳이 천국이다. 지옥 같은 이승에서 행복을 찾는 훈련이 된 자가 아니면 정신병 걸리기 딱 좋은 곳이다. 결국 이 질문은 따분한 천국에서도 행복을 찾고 살 수 있는 사람을 고르기 위한 일종의 입국 자격 시험인 것이다.

하버드 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잘하는 사람이 하버드에 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2. 당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되었습니까?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만 행복을 찾는 능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 능력을 누군가에게 전수해 주고 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천국도 인구를 유지할 수 있다. 꼬추 덜렁거리는 천사들만 날아다녀서는 영업이 되지 않는다. 일종의 다단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회원을 많이 모집해 올 수록 대우를 받는다. 인생이라는 비극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들고 오라는 것이 출제자의 의도이다.   


질문의 순서에 답이 있다.


이제 이 두 개의 질문을 이 세상 부모들에게 내밀어 보고자 한다.

당신의 인생은 즐거웠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삶이 자녀에게 즐거움이 되었습니까?


우리는 먼저 이 질문의 순서에 주목해야 한다.

부모의 삶의 태도를 먼저 물었다. 왜 자녀에게 즐거움이 되었냐고 먼저 묻지 않았을까? 그것이 보다 자기 희생적이고 고귀하게 보이는 질문인데도 말이다.

그것은 부모의 삶의 태도가 자녀의 능력, 행복을 찾는 능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아이를 위해 산다'라고 말하는 부모들을 종종 본다. 모유 수유 못하는 것을 죄스럽게 느끼고 인스턴트 음식 좀 먹인 것에 자신을 탓한다. 나쁜 죄책감에 사로 잡혀 발을 동동 구르는 그런 부모들이 주변에 많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 비행기에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산소마스크는 누가 먼저 쓰라 하던가? 부모다. 부모가 먼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할 수 있다. 당신이 먼저 비극 같은 인생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자녀는 천국의 문 앞에서 첫 번째 질문에도 답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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