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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수라떼 Mar 17. 2020

04화 좋은 죄책감 나쁜 죄책감

나쁜 죄책감을 구분하는 법



죄책감은 부모의 본능이다.


죄책감이라는 단어는 조금 과한지 모르겠다. 나에게 죄책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입술을 꽉 깨문 채 차가운 교회 바닥에서 흐느끼는 한 인간이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 혹은 과거로 돌이키고 싶은 후회에 대하여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는 한 인간이 떠오른다. 그것 보다는 조금 차분한 느낌의 단어를 찾고 싶은데 '이거다' 할만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옆길로 잠깐 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단어의 이미지가 모두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언어로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다른 영화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가진 이미지 보다는 조금 마일드한 느낌으로) 부모가 가진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왜 부모는 자녀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니까 미안한 거다. 이건 이미 소지섭이 증명했다. 미안한 마음, 죄책감은 사랑의 부산물이고 부모라면 느끼게 되는 당연한 감정이다.


좋은 죄책감 vs. 나쁜 죄책감


죄책감에도 좋은 죄책감과 나쁜 죄책감이 있다. 사실 죄책감 그 자체는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무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좋은 죄책감

건강한 죄책감은 마치 도로  차선과 같다. 내가 가는 길이 올바른지,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선과 필요에 따라 넘어서도 괜찮은 선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운전을 하다 차선에 가까워졌다면 이를 인식하고 중앙으로 오면 된다. 죄책감을 느끼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바로 잡고 더 나은 부모가 되는 계기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 죄책감은 그 정도로 끝날 때 아름답다.

 


나쁜 죄책감

나쁜 죄책감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차선에 가까워진 자신의 운전실력을 의심하고 초조하게 운전대를 잡으며 괜스레 보조석에 앉은 동승자 미워한다.


나쁜 죄책감은 다양한 형태를 갖는다.


우리는 보통 죄책감에 대한 부모의 반응을 생각하면 미안 표정과 안쓰럽게 자녀를 안아주는 상상을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쁜 죄책감은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인간은 죄책감을 느낄 때 일종의 방어 기제로 감정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신 또는 타인, 주변 상황을 탓하는 경향 있다.  자녀에게서 느끼는 죄책감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화를 내거나 배우자를 원망하거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탓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쁜 죄책감이다.


실제로 그런지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언제 부모로서 죄책감을 느낄까? 몇 가지 예에서 좋은 죄책감과 나쁜 죄책감을 구분해 보자.


(1) 어린이 집에 우리 아이가 가장 오래 남아 있을  

평소에도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제일 늦게 하원 하는데 회의까지 늦게 끝나 7시가 넘어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어린이집 선생님 눈치도 보이고 풀 죽은 듯 가방을 챙기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도 미안하고 목이 메인다. 

'오늘 아들을 한 번 더 꼭 안아줘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오는 길에 아들이 좋아하는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를 사줬다면 좋은 죄책감이다.
맞벌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답답하다. 이런 날은 일찍 퇴근해 집안일이라도 거들지 남편이라는 인간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밤이 어둑어둑해졌건만 아들이 놀이터를 가겠다고 떼를 부려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 이런 내가 한심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면 나쁜 죄책감이다.


(2) 아침에 빵 주고 점심에 핫도그 주고 저녁에 라면 끓여 줬을 때

집에 있다 보면 정말 손하나도 까딱하기 싫은 날이 있다. 아이들이 침대 위로 올라와 한 시간은 부비적 다. 엄마 일어날 때까지. 오늘은 안방 문 잠그고 그냥 쉬고만 쉽다. 배고프다는 아이들에게 아침/점심/저녁 모두 인스턴트 음식을 해줬다. 내가 게을러 아이들에게 건강하지 못한 음식을 주었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내일은 좀 기운차려 밥 좀 먹여야겠다' 생각하고 잠들기 전 집밥 레시피를 몇 개 검색했다면 좋은 죄책감이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고 느껴지고 무기력하다. 애들은 밥 잘 먹고 잘 지내는지 안부 전화한 시어머니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퇴근한 남편이 눈치 없이 '밥 없어?'라고 묻는다. 내 몸 안좋은지 묻지도 않는 남편이 서운하다. '식충이 놈.' 그러면서도 딸래미가 남긴 라면 국물 홀짝이던 남편이 자꾸 생각나고 내가 못된 여자가 된 것 같아 속상하다면 나쁜 죄책감이다.


(3) 받아쓰기 50점 맞았을 때

아들이 받아쓰기 10문제 중 5개를 맞았다. 그나마 맞은 5문제도 개발 새발의 향연이다. 선생님이 그나마 어드밴티지 꽤 준 것 같다. 다른 집은 학습지도 많이 하고 공부방도 간다던데 너무 무심하지는 않았는지 괜스레 아들에게 미안해졌다.

안쓰러운 마음에 아들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나의 등도 토닥여 주었다. '내일부터 퇴근 후 1시간은 꼭 아들과 한글 공부를 좀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면 좋은 죄책감이다.
공부 못하면 나중에 주변에서 놀림당하고 기죽을까 걱정된다. 엉덩이 무겁게 앉아 있지 못하는 아들이 답답하게 생각되어 '이게 뭐냐'며 큰소리를 쳤다. 결국 울먹이는 아이를 앉혀 놓고 글쓰기를 시킨 내가 너무도 밉다면 나쁜 죄책감이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죄책감은 결국 부모가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죄책감인지, 나쁜 죄책감인지 판가름된다.

우리는 앞으로 나쁜 죄책감을 인지하고 덜어내는 법에 대해 알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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