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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Dec 05. 2022

내가 그 개 키우지 말라고 할 거예요.

“인생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 리뷰












변증법적 행동치료(DBT)의 창시자 마샤 리네한이 쓴 책이다. 심리학 책이라 볼 수 있고 그녀의 일생을 그린 자서전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학생 시절 그녀는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자살시도를 반복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남들이 캐치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발견하는데...



자살행위를 했던 사람은 보통 그 한 번에서 그치는 경우가 드물다. 왜 사람은 자살시도를 반복하게 될까. 이 위험은 행위는 굉장한 중독성이 있어 보인다. 그 이유를 가늠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자살행위는 아편과 같은 엔도르핀을 분비해 정서적 고통과 괴로움을 일순간 완화해 준다.

두 번째는, 자살행위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더 도와주게끔 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은 자살시도의 충동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 같다.



그녀는 정신병원에서 자해를 하며 말썽을 부리던 문제아였다. 그러던 그녀가 문득 정신을 차리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따뜻하고 친절했던 그녀의 주치의가 어느 날 출장을 가며 남긴 말에서 시작되었다. 젊은 주치의는 그날 태도가 엄격하게 바뀌었다.


"마샤, 이제 나는 네가 자살을 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네가 정말 자살을 한다면 너를 위해 딱 한 개의 미사를 봉헌할 것이고 딱 한 개의 묵주 신공을 드릴 생각이다."


"네? 제 장례식에 안 오시겠다는 건가요?"


"맞아. 나는 이제 출장을 다녀올 거야. 2주 정도 걸릴 예정인데 내가 돌아왔을 때 네가 살아 있길 바란다. 알았지?"



의사가 떠난 후 그녀는 완전 정신 나간 상태가 되어 간호사들에게 울면서 말했다.


"전 자살하게 될 거예요. 당신들이 절 막아줘야 해요. 선생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죽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깨달았다.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기도 하다는 것을.

그때까지 그녀는 아무도 자신에게 효과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환경에 있었고,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게끔 애쓰는 것뿐이었다. 의식적으로 그런 건 아니다. 모두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반응이었다.


이후 그녀는 죽지 않고 정신병원에서 나와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연구에서 그녀는 내담자들이 병원에 입원해서 받는 관심과 보살핌 때문에 오히려 자살 행동이 강화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도와주려고 노력한 것이 오히려 자살 행동을 부추겼단 말인가? 이것을 누구의 잘못이라고 봐야 할까? 모두가 자살을 막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현실에서는 마음보다는 기술이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자살 행동에 보상책을 쓰는 게 아니라 자살 행동에 대한 혐오 반응을 보이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예를 들면, 내담자가 키우던 개를 친구한테 맡기고 죽어버릴 거라고 할 때 그 타이밍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글쎄요, 내가 그 개 키우지 말라고 할 거예요. 그러니까 그 개가 살길 바란다면 당신도 살아 있어야 해요."


자살 고위험군 환자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연민과 감시가 아니라 그 어떤 기술이다. 감정과 행동을 조절할 기술, 고통을 견딜 기술, 그리고 내게 필요한 것을 효과적으로 타인에게 전달해 얻어낼 기술 말이다.



변증법적 행동치료(Dialectical Behavior Therapy)는 바로 그런 기술을 가르치고 내담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실용적인 학문이다. 한 내담자는 지속적으로 아버지의 비수 같은 말에 상처를 입어왔다. 그녀는 딸이 괴로워한다는 것을 아버지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아버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담자가 괴로운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했을 때에야 비로소 문제를 인식하고 말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이처럼 문제를 분석하고 내담자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는 것이 상담치료 핵심인 듯하다.)






사실 책 초반에 엄청 답답했다. 주인공이 왜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해 병원에 입원했는지 누구도 모른다는 거다. 마샤 본인도 기억하지 못한다. (두 차례의 긴 전기충격 요법이 뇌 손상을 야기시킨 것으로 보인다.) 대략 유추해보면, 뚱뚱해서 못생겼고 어머니의 기대에 차지 못했고 남자 친구가 없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병들게 한 것 같다. 고작 이런 일로 정신병원에 가나 싶었지만, 하긴 우울증이란 게 딱히 무슨 큰일이 있어야만 생기는 병이 아니니까, 수긍이 됐다.


우울증은 그녀를 한평생 괴롭힌다. 훗날 마샤는 자기 자신의 우울증의 근본적인 원인이 혼자 사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그녀는 주택에 다른 사람을 들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혼자 살면 우울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알면 뭐해.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대학시절 마샤는 아파트로 돌아오면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자기중심으로 침잠해 들어가 하느님을 찾았다. 하느님이 존재하심에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는 수년 동안 침대 옆에 영적인 책들을 쌓아두고 밤마다 읽으며 위안을 얻곤 했다.) 무엇 때문인지 나는 그냥 이 장면이 인상 깊었다. 이 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한 소녀가 바닥에 누워 하느님을 생각하는 모습이다.


책에는 사실 말하면 부끄러울 법한 은밀한 생각들이 꽤 담겨있다. 하느님을 연모하는 것과 같은...


사적이고 은밀한 생각을 과감 없이 토로하는 저자 덕분에  책은  편의 성장 소설 같았다. 인생이 지금 지옥처럼 느껴진다면  책을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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