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비밀> 리뷰
의학에 관한 책은 언제나 읽기 힘들다. 통증에 관한 책은 더욱 그렇다. 읽다 보면 걱정과 두려움이 생긴다. 아픈 사례가 많이 나오다 보니 왠지 나도 어딘가 아픈 느낌이 든다. 아마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절대 혼자서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책표지를 귀염뽀짝하게 만들었다면 어떨까? 딱딱한 인체도 대신 뇌와 세포 캐릭터를 그려서 만화책처럼 표지를 만들고, 책 안쪽에도 알록달록 색감이 넘친다면 독자가 좀 더 쉽게 통증이란 주제에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통증의 본질
통증이라고 하면 나는, 피부가 찔리면 아픈 감각이 생기고 그 감각이 신경을 타고 뇌로 올라간 뒤 뇌가 그 아픔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책을 보고 난 후에는, 상처가 난 피부는 그 자극을 척수를 통해 뇌로 전달하고 뇌가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하여 통증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았다. 즉 통증은 상처 난 부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생성된다.
이 책에서는 통증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개념부터가 아주 중요하다. 내가 이해한 대로 표현하자면, 통증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시트템이며 뇌는 과잉반응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의도치 않게 우리에게 고통을 갖다 줄 뿐이다.
백사장에서 뛰놀다가 모래에 숨겨져 있던 낚싯바늘에 발을 찔렸다고 상상해 보자. 그러면 우리 뇌의 각 부위에서는 아래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날 것이다.
감정팀: 지금 기분이 아주 좋군요~
감각팀: 잠깐만, 긴급 신호가 들어오네요. 발바닥이 뭔가 뾰족한 것에 찔린듯한 자극을 받았어요.
시각팀: 음, 한번 볼까요. 여기는 바닷가이고 발아래에는 모래가 깔려있어요.
기억팀: 잠시 기억 좀 살펴볼게요. 사람들이 이 바닷가에서 뛰놀다 뾰족한 물건에 찔렸다는 보도를 본 적 있어요.
우리 뇌는 위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짧은 시간 내에 이 자극이 위협적인지 아닌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위협적이라는 증거가 명백하다면 뇌는 우리 몸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통증이다. 통증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없어서는 안 된다. 유전자질환으로 통증을 못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기에 대부분 10대에 사망하고 만다.
통증이란 개념을 이해할 때 꼭 짚고 넘어갈 것은, 통증은 조직 손상의 척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요통은 영구적 조직 손상과 관련이 없다고 한다. 심한 요통이 있어도 정밀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 없고, 요통이 없는 사람도 정밀검사를 해보면 의심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즉 꼭 치유되지 않은 조직 손상이 남아있어서 통증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는 말이 되겠다.
이게 뭔 말인지, 나도 처음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조직 손상이 없는데 어떻게 통증을 느끼지? 하지만 환상통이란 특수한 경우를 생각해 보면 알기 쉽다.
환상통은 발이나 팔을 절단한 환자들이 절단부위가 여전히 아프다고 느끼는 통증이므로 보통 '사지 환상통'이라고 불린다.
20세기말까지 의학계에서는 주로 절단된 신경 말단이 뇌로 비정상적인 신호를 보내서 생기는 문제라고 보았다. 의사들은 환자의 말단 부위의 더 윗부분을 절단하여 '통증수용체'를 제거함으로써 망상 통증을 없애려 했다. 하지만 망상 통증은 여지없이 돌아왔고 더욱 심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실, 문제는 뇌에 있었던 것이다. 뇌는 아직 절단된 사지가 붙어있고 그 부위에 위협이 있다고 판단되어 통증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해결방안도 결국은 뇌를 훈련시켜 신경망을 재구성하는 하는 것이어야 한다.
통증 전문가 라마찬드란 박사는 환상통을 연구하던 중에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많은 환자들이 절단술을 받기 전에 붕대로 감거나 깁스를 해서 움직이지 못했던 것이 확인됐다. 이런 환자들이 사지를 절단 후 그 부위가 여전히 존재하고 고정된 자세로 굳어 있다고 느꼈다. 뇌에 살짝 오류가 생긴듯하다. 사지가 절단되었음에도 뇌지도에는 팔다리가 여전히 남아있어서 없는 부위가 아픈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라마찬드란 박사는 거울상자라는 장치를 만들었는데 거울은 많은 환상통 환자의 통증을 없애주었다. 오른팔을 절단한 환자가 왼팔을 장치 안에 넣어서 움직이면, 안에 있는 거울 때문에 마치 오른쪽 팔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뇌는 오른쪽 팔이 안전하게 잘 움직이는 것을 보고 안심한 듯 더 이상 통증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역사상 처음으로 환영으로 뇌를 속여 환상통을 치료한 것이다.
한 연구에서는 거울장치로 팔다리에 만성통증이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는데도 성공하였다고 한다. (실제 손상된 정도보다 훨씬 심한 통증을 느끼는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하였다.) 실제로는 건강한 팔을 넣고 움직였지만 거울 속에는 아픈 팔이 움직이는 것처럼 비친다. 거울에 비친 아픈 팔이 통증을 느끼지 않고 움직이는 것을 본 뇌회로는 더 이상 통증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재구성된다.
하지만 거울장치는 만성 통증이 몇 달 이내로 지속된 사람들에게만 효과가 있었다. 지속되는 통증으로 뇌회로가 심하게 변형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 이런 경우는 더욱 복잡하고 치밀하게 짜인 장기치료 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
저자는 이 책이 조금이나마 통증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이 책을 계기로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진실을 퍼뜨려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을 잃지 말기를 당부한다.
그래서 통증을 다스리는 세 가지 방법을 정리해 보자면:
교육하기: 의료종사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통증은 세포조직에서 생성되고 뇌에서 감지된다는 잘못된 구시대적 관점을 여전히 믿고 있으므로, 통증의 본질에 대한 교육이 시급하다.
시각화하기: 뇌에 혼란을 일으켜 통증을 줄인다. (거울장치 사례를 참고)
뇌에 안정감을 주기: 염증 관리를 잘해야 한다.
여기서 염증과 통증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염증은 통증을 증폭시킨다. 염증 분자가 통각수용기의 민감도를 높여 위험 신호가 뇌로 더 쉽게 전달되는 것이다. 때문에 염증을 줄이고 뇌에 안정감을 주는 것은 통증을 다스리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염증과 관련된 요소는 많다. 사실 지방자체가 염증 반응을 촉진해서 통증을 일으킨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몸속에서 염증 반응이 증가하는데, 만성 염증은 생물학적 노화의 주요 원인이다. 이외에도 오피오이드 진통제를 장기간 과다복용한다던지, 수면부족, 스트레스, 외로움, 흡연, 알코올, 카페인 등등 요인이 염증을 불러일으킨다.
염증을 가라앉히는데 좋은 것은 휴식이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기르는 것이 염증 관리를 잘하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고통을 추구하는 인간?
통증이 뇌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많은 문제를 뇌로부터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보며 신기했던 점들이 많았다. 통증보다 생존에 더 필요한 문제가 있으면 사람은 통증을 잘 못 느낀다는 점과 사람은 적극적으로 고통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마 고통을 추구하는 동물은 인간뿐이지 않을까. 여기에는 매운 고추를 먹는 소소한 행위를 비롯해서 크게는 자해 행위를 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 책의 저자는 자해 행위는 관심을 끌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해가 관심을 끌기 위한 행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상대를 조종하는 행위인 경우는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관점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자해 행위에는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이 100%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자해 후 시간이 경과되어 육체적 고통이 가라앉을 때 감정적 고통도 가라앉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데 이것은 육체적 고통에 관여하는 신경학적 영역 대부분이 감정적 고통에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자해 시도자는 몸에 상처 내는 것을 통해 화, 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분출하고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 자극과 안도감이 연상작용을 일으켜서 통증이 주는 불쾌감 자체가 줄어든다. 보통인이라면 피, 상처, 칼을 봤을 때 혐오감이 들겠지만, 자해 시도자는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통증에 대해 혐오감이 아닌 보상을 주는 대상으로 해석하도록 재구성된다. 무서운 일이다. 자해행동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수차례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자해행위와 보상이라는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연구에 의하면 통증 인내심이 높은 것은 자아 존중감이 낮아서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들에게 심리치료를 제공하고 관찰했더니 그들의 통증 인내심이 줄어든 것이 발견되었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수록 나쁜 상황을 견디려는 의지가 줄어든다. 자해 행동을 끊으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연습부터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게 쉽냐고요...!)
처음에는 통증이라는 무거운 주제 때문에 읽기가 꺼려졌지만, 막상 읽어보니 이해하기 쉽고 희망이 보였다. 통증에 관해 좀 더 알아보고픈 분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고정관념이 확 깨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