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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 Sep 25. 2020

아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없슴 은 없음 , 없읍니다 는 없습니다 .

영어로 이메일을 쓰다 보면 오래전에 배운 단어인데도 헷갈릴 때가 있다. 동사와 명사, 형용사와 부사 두 가지 품사로 사용되는 단어는 문법이나 철자가 틀릴 까 봐 메일을 보내기 전에 영어사전을 확인해 보곤 한다. 워드에서 맞춤법 검사 기능을 이용해 틀린 곳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한글로 대충 적은 후 구글 번역기를 돌리기도 했다. 귀찮음이 하늘을 찌를 때는 뻔뻔하게도 쓰고 나서 바로 전송 버튼을 누르기도 했었다.

 ‘영어 전공자도 아닌데 틀릴 수도 있지 뭐, 난 이공계야!’ 하면서...


모국어가 아니니 영어야 틀릴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 고등교육을 받았다고 자부하는 인간 중 한 명인데 카톡이나 메시지,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 맞춤법이 틀린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되면 내가 과연 이 땅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

 전달하려는 내용이 간결한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문장으로 정확하게 표현했는지는 둘째 문제고, 사소한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자주 틀리는 게 문제였다.

어차피 프로그램에서 틀린 곳에 빨간 줄을 그어 주고, 고치라고 알려주니 대충 자판을 눌러댔고, 스페이스바를 누르기 싫어 띄어쓰기를 무시했던 것이 화근이다.

엄지족이 아니라 펜글씨 세대다 보니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다 보면 자판을 발로 누른 것도 아닌데 세상에 없는 새로운 단어를 창조한 적도 많았다.

 “났다”로 써야 되는데 “낫다”또는 “낳다”라고 쓴다던가.

"연애”를 “연예”로 쓰기도 했고,  재경부의 재가 재물 재(財)이니 “결재”의 재도 이 한자라고 생각하고 “결제”를 “결재”가 맞다고 혼자 우기기도 했었다.


나의 이런 무식함을 걱정한 아내는 이번에도 책 한 권을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야구를 보러 갔다.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오빠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늙어 버렸지만 읽고 나니  

'아! 이 책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썼구나' 하고 필이 왔다’. 책의 서두에 적은 저자의 위안처럼 우리 대부분은 글을 써서 먹고사는 작가도, 편집자도, 국립어학원 직원도 아니니 “없음”을 “없슴”으로 썼다고 해서 자신의 교육 수준을 의심하고 머리를 쥐어박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대, 중세, 근대를 통 틀어 문자를 이용한 쌍방향 소통이 지금처럼 넘쳐나는 시대는 없었다. 스마트폰의 발명으로 시간과 장소를 안 가리고 톡을 주고받고, 문자가 오며, 이메일을 전송하고, 국경을 넘어 왓츠앱으로 한밤중에 메일에 답장 안 한다고 닦달한다. 회사나 학교에서 파워포인트나 아래한글을 이용해  과제물이나 기획서를 만들기도 하고,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도 쓴다.

그나마 지금 아이들은 논술을 공부하고 자술서를 쓰면서 글을 쓰는 훈련을 했지만 고작 해야 불조심이나 통일, 간첩신고를 주제로 하기 싫은 글짓기를 끼적인 게 전부니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정확한 긴 문장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제대로 배운 게 없으니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편하게 생각하면 좋겠지만 이제는 70대 노인 조차 손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모임 약속을 하려면 카톡을 배워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전화 통화를 안 하니 무제한으로 음성통화는 가능 하지만 데이터는 한정인 상품을 팔겠는가!


메시지를 잘 보내지 않지만 때로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요청한 자료가 늦게 와서 직원에게 독촉 전화를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말투에 짜증이 실릴 수 있다. 뚜껑은 이미 오래전에 열렸지만 문자로 “자료 좀 빨리 부탁해 “ 하고 끝에  ”~ ~“ 하고 파도타기로 마무리하면 분노 게이지가 올라갔다는 것을 감출 수 있다.

솔직한 감정에 “월급 받고 뭐 하는 거야! 시킨 지 언젠데 아직도 안 줘!!” 하고 문자를 보내게 되면 뭔 훗날 이 문자가 증거자료로 채택된 청문회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짧은 문자를 보내던, 장문의 기획서나 소설을 쓰던, 글쓰기 빈도가 높아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글짓기와 맞춤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서점에 가보면 정확 한 맞춤법으로 긴 문장을 만들고,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알려 준다는 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문장이 어색한 것은 몇 번 다시 읽어 본 후 고치기도 하고, 앞 뒤 문장을 오리고 붙여서 그럴듯하게 수정하면 되지만 맞춤법 틀린 것은 눈에 쉽게 안 들어오고, 일일이 국립어학원에 물어볼 수도 없다.

입에서 나오는 발음과 글로 썼을 때의 받침이 다른 경우도 많고, 일상에서 맞춤법을 무시하고 대충 쓰다 보니 맞는지 틀린 건지 혼란에 빠지게 된다.

톡을 보내면서 " 야 너 겨땀 보여 ㅋㅋ” 이렇게 보내지

 “당신의 곁땀이 보입니다. 웃깁니다." 이렇게 보내지는 않는다. 한때 짜장면이 표준어가 아니라고 해서  다들 어색하게 “자장면” 하고 말했지만 지금은 둘 다 표준어로 사용된다고 한다. 왜 짬뽕은 “짬뽕”인데 “짜장면”만 “자장면”으로 해야 되냐고 중국집에서 민원이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가급적 중요한 글은 한 자 한 자 받침과 띄어쓰기에 신경 쓰면서 천천히 쓰는 연습을 한다. 이렇게 쓰다 보면 예전에 종이에 펜으로 눌러쓰던 느낌이 떠오른다. del 키 한방에 저녁 내내 썼던 글을 단 1초 만에 날려 버릴 수 있지만, 몇 시간 동안 공들여 종이에 쓴 글은 쉽게 찢어 버리거나 지우기 어렵다. 쓰기 전에 이 단어가 맞는지, 이런 문장이 어울리는지, 읽는 이의 맘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지.. 머릿속 필터를  통과한 단어가 문장이 된다.

약간 느리지만 이런 숙성의 시간이 술 먹고 이상한 문자를 보내 친구와 멀어지거나, 감정에 격한 메일을 보내 동료를 화나게 하는 일을 줄 일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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