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것인가 말 것인가
Panic buying, 패닉 바잉.
전쟁이나 재앙이 닥칠 것을 걱정한 사람들이 군중심리로 대량의 물건을 구매한다는 뜻이다. 폭동이 난 것처럼 온 가족이 마트나 시장으로 몰려가 생필품을 카트에 쓸어 담는데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거나 때론 폭력 사태로 심화되기도 한다. 물, 쌀, 라면, 햇반, 휴지, 휴대용 가스, 기저귀 같은 생활에 꼭 필요한 생필품을 사거나 상황이 심각해지면 훔치기도 한다. 코로나 감염이 폭증하면서 일부 서구 국가에서 일어난 휴지 사재기나 일시적 수요 폭증으로 생긴 마스크 품절 사태 같은 일들이 패닉 바잉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시중에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풀리면 고가의 부동산이 패닉 바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근 국토부 장관은 국민들, 특히 30~40대 젊은 세대주들이 아파트를 패닉 바잉 한다며 안타깝다고 했다.
적금을 해약하고, 양가 친척들한테 돈을 빌리고, 전세자금 대출, 신용대출.. 대출이라는 대출은 모두 긁어 모아 아파트를 사는 것은 공포심리가 불러온 패닉 바잉이며 부동산 시세가 하락하면 자칫 큰 손해를 볼 수 있다고 걱정했다.
‘재앙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 패닉 바잉을 만든다면 대한민국 젊은 30~40대 세대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뭘까?
“아파트가 부동산 투기의 원흉이니 앞으로 아파트를 건설하지 못하게 하는 새로운 법이라도 나오나? 그래서 품절되기 전에 사려고? “
“갑자기 백두산이 폭발하고, 쓰나미가 몰려오더라도 아파트에 살면 멀쩡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집을 산 일 주택자들은 주장한다.
“지금 못 사면, 중년이나 노년이 돼서도 전세나 월세로 이리저리 이사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될 것 같아서..”
고가의 부동산은 휴지나 물처럼 우르르 몰려가 살 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평범한 세대주들에게 집을 산다는 것은 투기꾼이나 재테크의 달인이 아닌 이상 일생 동안 단 몇 번만 할 수 있는 거래이고, 여러 날 밤잠을 설치고 고민하며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자칫 한 순간의 판단 실수가 몇 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년 초부터 지구 전체를 혼돈으로 몰고 간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도 최근 3~ 4년 동안의 집 값 상승은 급여생활자의 초라한 통장 잔액을 생각하면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집 값이 몇 년째 계속 올랐고, 코로나로 경제 상황도 안 좋으니 한동안은 잠잠하겠지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전세로 불씨가 옮겨 붙었다. 이년 더 살다가 아이가 졸업하면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 가야지 하고 생각했는데……어쩔 수 없이 또 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새로운 임대차 보호법 시행 후 전세가 씨가 마르고, 가격도 폭등했다는 뉴스를 보고 좌성향 정부를 폄하하려는 우성향 신문의 과장된 기사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집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니 이건 빨강 파랑 색깔 문제가 아니었다.
전세가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가격이 터무니없이 올라 있었다. 역세권, 학세권, 숲세권 같은 살기 편하다는 아파트는 아예 전세 매물이 없거나 아주 적고, 지하철역이나 버스정거장에 내려 언덕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하는 아파트도 최근 몇 달 사이에 전세금이 2억 이상 올랐다고 공인중개사도 혀를 찼다.
‘전세가 없다면 매물로 나온 집은 있을 까?’ 하고 발품의 범위를 넓혔는데 대부분 매물로 나온 집들은 뭔가를 안고 있었고 홀 몸이 없었다.
“전세 안고, 월세 안고 ”
전세 계약기간이 1년 이상 남아 있어 내가 원하는 입주일자와 맞지도 않았지만 턱도 없는 가격을 불렀다. 이리저리 뒤지고 다니다가 2주 내에 잔금을 줄 수 있으면 집을 팔겠다는 급매를 발견했지만 급한 것은 주인의 마음뿐이었다. 가격은 단지 내 최고가를 요구하면서 천만 원도 못 깎아 주겠다고 버텼다. 이달 말까지 명의 이전을 못 하면 양도소득세를 많이 내야 한다고 걱정하면서도 가격 흥정이 안 됐다. 결국 집주인은 양도 소득세를 더 내더라도 집 값이 하늘을 찌를 그 날을 기다리는지 더 버텨 보겠다고 했다.
며칠 동안 굶거나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는다. 아파트에 살지 못한다고 죽지는 않지만 가족들에게 저녁에 들어가서 쉬고, 자고, 먹을 수 있는 공간은 꼭 필요하고, 이년 마다 불안한 마음으로 집주인의 전화를 받고 싶지는 않다.
형편없는 청약가점으로 분양을 기대했던 몇 년 동안의 어리석음을 돌아보며 영끌의 줄에 동참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는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