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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 Jan 20. 2021

아아를 마시는 FIRE족이  되기로 했습니다.

카페 앞에 비상등을 켜고 서니 아내가 물었다.

“뜨거운 것, 차가운 것?”

”Hot “

“얼죽아는 아니네!”

"얼죽아가 뭐야?”

눈이 커진 아내는 “아아가 뭔지는 알아?” 묻는다.

“몰라 ”

“그럼 뜨아는 ?“

 ”... “

뒷 좌석에 앉아 있던 아이는 “아바라도 모르겠네?”... 차 안에는 이상한 정적이 감돌기 시작했다.


단축 어를 모르면 가족 간의 대화도 단절되는 시대에 살지만 한 번 읽고 나서 불화살처럼 날아와 가슴 한복판에 박혀버린 약어가 있었다.

FIRE(Financial Independent Early Retirement).

조기 은퇴를 위해 쓰고 나서 남은 돈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수입의 50% 에서 70%를 저축하고 노후 자금을 준비한다. 구차하게 보여도 식료품 할인 쿠폰이나 마감 전 세일을 이용해 채소나 생선을 사고,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나 스쿠터를 탄다. 이런 근검절약과 저축으로 악착 같이 돈을 모아 30, 40대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퇴하는 사람들을 FIRE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파이어족이 되기로 했고, 아이와 가정을 돌보는 일에서 삶의  평화를 찾았다는 주부. 의료기기 설계자로 생명과 연관되는 일에서 오는 과중한 심적 부담 때문에 조기 은퇴를 결정했다는 엔지니어가 사례로 소개되었다.

나이가 들면 교육, 외식, 의복에 대한 지출은 점차 줄어들겠지만 운이 나빠 100세까지 산다면 죽을 때까지 일 해야 할 텐데 어떻게 40대에 돈을 모아 은퇴 하지?

아침이면 무표정한 얼굴로 출근하고, 해가 지면 급여생활자로 가득 찬 지하철에 지친 몸을 던져야 하는 직장인은 그들의 근검절약과 결단이 부러웠다.           

지금은 웬만한 아파트 한 채가 10억을 훌쩍 넘으니 10억 있다고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지만 한때 보험 회사 컨설턴트가 방문하면 10억은 모아야 궁핍하지 않은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떠들던 때가 있었다. 급여, 지출, 금리, 평균 수명 등을 반영해 만든 화려한 PT 자료를 보고 있으면 10억은 죽기 전까지 반드시 마련해야 할 의무처럼 보였다.

문제는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리고 엑셀에 수식을 입력해도 월급만으로 이런 거금을 만들기 어렵다는 거였다. 컨설턴트는 어차피 10억은 불가능 하니 불의의 사고와 사망에 대비해야 한다며 종신 보험 가입을 권했다.

이천 년 초반 로버트 기요사끼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었다. 증권사 마케팅으로 시작된  BUY KOREA 열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적금을 해약해 불나방처럼 주식 시장으로 몰렸지만 정작 부자 아빠가 됐다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 한국을 사자고 외쳤던 증권회사는 2016년 간판을 내리고  다른 회사에 인수되었다.     


Fire 족이 되기에는 사고 싶은 것이 넘쳤고, 투자는 어렵고 은행 잔고는 부족했다.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으니 지금 조직을 떠난다고 조기 은퇴라고 할 수도 없다. 겨울날 까치밥처럼 감나무에 매달려 바람이 잔잔해 지기만을 바라는데  젊을 때 은퇴해 바다로 떠나겠다는  그들의 항해가 부러웠다.

‘Fire 족이 될 것인가? 일하다가 죽을 것인가?’

화약은 부족하고 나이도 많지만 그냥 백수가 되기로 했다!     


“FIRE족이 되려고요!” 하면서 회사를 뛰쳐나왔지만, 신상의 변화를 눈치챈 지인과 친척들에게 퇴사라는 복음을 알리면 “ 뭐? 파이어 됐다고?” 하시며 걱정한다.

“아니 그 파이어 말고 재정적 자립, 이른 은퇴. FIRE! 요”

방아쇠는 회사가 당긴 게 아니고 내가 먼저 당겼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는 눈치다.

“이런 취업 암흑기에 회사를 관둬? 미친 거 아니야!”

걱정스러운 그들의 염려는 fire 가 되어 내 가슴에 시커먼 구멍을 남겼다.


 아이는 지구를 방문 한 외계인에게 한글을 알려 주는 것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준말이'아아'이며,   아이스 바닐라라테가  '아바라 '란다. 매장에서 주문할 때도 "아바라 주세요" 하고 줄임말로 주문하는 손님들이 많다고 하니 이 세대의 줄임말 잔치의  끝은 어디 일지 그저 궁금하기만 하다.  아이에게 질 수 없으니 경제신문에서 봤던 약자로 잘난 척을 했다.

“그럼 넌 FAANG 알아?”

“........ 아빠! 요새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이잖아. 제발 뉴스랑 신문 좀 봐.. “

 인류 역사상 제일 똑똑하다는 세대. 인스타나 유튜브 먹방만 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 그냥 아무거나 사다 줘, 주는 대로 마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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