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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 Sep 10. 2021

공정한 가사노동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맞벌이로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집안일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있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피곤 한데 집에 돌아와 아이를 돌보고, 저녁을 챙기고, 빨래를 해야 한다.

남편이라는 인간은 회식한다고 늦게 오거나 일찍 와도 설거지 한번 안 한다. 그나마 분리수거,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화장실 청소를 해주는 것도 다행이다.

인내심이 한계치에 이르면 폭발하는데 사소한 것이 발단이 된다. 발톱을 깎고  파편이 뒤늦게 보이거나, 음식물 쓰레기통이 가득 찼거나,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은 김치통이 냉장고에서 발견되는 경우다. 이런 작은 일들이 싸움의 불씨가 되곤 한다.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발톱이나 김치통이 원인이 아니라 불공정한  노동에 대한 분노였다.


 전업주부로 직업을 바꾼 후 봄과 여름이 가고 어느새 가을을 맞고 있다.

 아이가 성년이니 육아는 졸업했고 청소, 빨래, 음식만 하면 되니 오후에는 자전거 타고 놀러 다니는 것이 계획이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TV와 장식장에 쌓인 먼지,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안 닦은 유리창과 욕실 바닥에 생긴 곰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회사 다닐 때 보다 청소의 횟수가 삼백 프로 급증했다. 모아 두었다가 일주일에 두 번, 세탁기로 빨고 건조기로 말리던 빨래도 매일 해서 햇볕에 말린다. 전기료도 아끼지만 뽀송뽀송한 느낌이 좋다. 빨래가 적거나 날씨가 화창한 날은 아내가 시킨 것도 아닌데 커튼이나 이불을 세탁하는 기특한 일도 가끔 한다.

집이 깨끗해져 퇴근하고 돌아온 아내는 좋아하지만 청소기를 이리저리 밀고 다니고, 빨래를 하나씩 옷걸이에 걸어 말리고, 쭈그리고 앉아 욕실 바닥을 닦는 일은 상당한 근육운동이 필요한 노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소를 마치고 한숨 돌리면 집안일 중 가장 어려운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혼자 있으면 아내가 사다 놓은 냉동 설렁탕이나 라면을 먹기도 하지만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 때문에 밥을 차린다. 아이는 혼자 있을 때 삶은 고구마에 요구르트와 견과류를 뿌려 먹곤 했다. 간단하면서 영양도 있고 설거지도 덜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먹기에는 왠지 주부의  의무를 유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밥만 수십 년 먹었으니 내 손으로 지은 밥을 해 먹고 싶다는 객기도 있었다. 하지만 요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유튜브에서 <엄마의 손맛><백종원의 요리 비책>을 구독하고, 고사리나물, 미역국, 애호박찌개 끓이는 법 따위를 찾아봤다. 메뉴가 정해지면 재료를 사서 씻고 다듬는다. 오이에 가시가 있어서 굵은소금으로 문질러 씻어야 한다고 것도 배웠다. 냉이, 시금치, 상추나 깻잎을 하나씩 씻는 건 인내심을 기르는 수련이었다. 가스불도 안 켰는데 지친다. 동영상을 보면서 끓이거나 볶고, 조미료를 넣어 보지만 간이 맞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가상현실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미각에 대한 간접 체험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음식으로 꽤 많은 팔로우를 가지고 있는 유투버를 알고 있는 지인은 말했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보면 모양은 좋은데... 맛은 없어!”

조리법대로 했지만 다른 사람의 입맛에는 짜거나 싱거울 수 있다. 간장이나 소금을 더 넣었다가 짠 것 같아 물을 더 넣고 여러 번 간을 맞추다 보면 시간이 걸린다.  

미역국을 끓이는데 기다리다 지친 아이가 묻는다.

“아빠 사골 끓여? 왜 이렇게 오래 걸려? “


막상 해주면 맛있다고 먹지만 싱크대에 잔뜩 쌓인 냄비와 그릇을 보면 내가 벌인 무모한 흔적에 후회가 밀려온다. 아이는 오후 수업을 들어야 되니 설거지도 나의 몫이다. 저녁을 준비하는 과정도 점심과 같은 도돌이표의 연장이다.

청소, 빨래, 밥하기 이 세가지만 하면 되는데 일 년도 안 돼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외식을 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집안일은 단순하고 지겨운 노동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쓸고 닦아도 먼지는 쌓이고, 매일 빨래가 나온다. 오늘 고기 먹었다고 내일 굶자고 할 수도 없다.

가족에게 봉사한다는 끊임없는 자기 최면이 없다면 보람이나 만족을 느끼기 힘들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육아를 안 하니 다행이다.

가사 노동을 하면서 아이도 돌봐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고 지칠까!. 아이들이 재택 수업을 하면서 엄마들의 얼굴이 점점 피폐해지는 이유다. 둘 다 어중간하게 하거나 하나만 할 수밖에 없다.

아이 키우는 집의 남편이라면  “집안이 왜 이렇게 돼지우리야!” 같은 말은 절대 하면 안 된다. 대신 청소기를 들고 설거지를 하라.


 결혼이 아니 라도 타인과 공간을 공유하게 되면 가사노동은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안 하면 다른 누군가가 청소하고, 빨래하고,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서로 간에 노동의 분배가 공정하지 않다면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조용히 식탁 앞에 앉아 집안일 항목을 작성해 보자. 하기 싫지만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쭉 적어 본다. 일주일에 몇 번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할지? 누가 해야 하는지 규칙을 정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공정한 가사노동의 분배는 사랑이나 인내 같은 고상한 단어보다 원만한 결혼과 동거를 위한 윤활유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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