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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 May 14. 2021

2100년. 할머니 할아버지가 남긴 판화

이건희 회장 사망 후  기증한 수많은 그림과 국보급 문화재가 화제가 되었고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공간을 지방에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부산시장은 회장 고향이 부산이니 미술관을 부산에 유치해야 한다고 했고, 이에 대구 사람들은 발끈했다.

"뭔 소리여! 회장 고향은 대구라.”

창업자가 진주에서 초등학교를 나왔으니 진주에 미술관을 지어야 된다고 했고,  용인에서는 호암미술관 옆에 미술관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기증품 중에는 교과서에나 보던  이중섭의 <황소>가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경매에서 사십칠억에 낙찰되었다는 기사를 봤지만 새 주인은 비공개였다. 부잣집 펜트하우스에 걸려있을 줄 알았던 <황소>를 미술관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림을 기증받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 구입 예산은 일 년에  48억 원. 1+1 도 감사한데, 수 천 점의 미술품을 한꺼번에 소장하게 된 셈이니 그 기쁨이 오죽했을까!

관장은 미술품을 실은 5톤 트럭이 관내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마치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으로 향하던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고 감격했다. 기증 의도에 불편한 시선을 가지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국립이라는 간판에 어울리는 소장품을 한 번에 갖게 된 것이다.  


미술에 대한 안목이 없어 기증품에 대한 예술적 가치를 논하지는 못하고, 천박하지만 엄청난 가격이 놀라웠다.

그림 한 점에 몇십억, 몇백억이라니… 이렇게 비싸도 유명한 작가의 희소성 있는 작품은 경매에 나오면 바로 팔려 재산 증식과 증여와 상속 수단이 된다고 들었다.

우리 집 거실에 걸려있는 그림도  상속세  걱정을 해야 되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경매 시장에 나올 법한 고가의 그림은 아니지만 거실 벽에는 큰 맘먹고 구입한 판화 두 점이 걸려 있다. 작가 에바 알머슨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것으로 결혼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아내가 구입한 것이다. 까치발을 한 단발머리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고, 남자는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웃고 있다.

얼핏 보면 재능 있는 초등학생 그림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그림에는 항상 꽃, 남자, 여자, 아이,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평범한 일상과 가족이 푸근하게 묘사된다.

아내의 카톡 프로필에 올린 사진을 아이 그림으로  오해한 적도 있었다.

“아이가 그림을 참 잘 그리네요...” 그저 아내와 둘이 웃고 말았다.  


"당신은 20주년 선물로 뭐 갖고 싶어?” 판화가 맘에 든 아내는 내 것도 사주겠다고 했다.

“포르셰”

며칠 후 배달된 것은 아쉽게도 차가 아니라 이철수 님의 판화였다. 판화의 제목은 “가을꽃”이다.

“눈부신 가을꽃처럼 누구나 반짝이는 별빛이지 당신도 나도 누구라도”

300마력의 달리는 말 대신 아내는 나에게 꽃 같은 별을 선물했다.


80년대 말, 학교에 가면 학생회관이나 도서관 벽에 커다란 걸개그림이 걸려있었다. 굵고 거친 선과 시대를 암시하는 어두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거리로 뛰쳐나가 민주와 자유를 외쳐야만 할 것 같은 암묵적 선동이 느껴졌다. 이철수 화백은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이런 그림을 그린 소위 이념 작가였다. 지금은 농사짓고 꽃, 별, 자연을 소재로 판화를 그린다고 하니 의외였다. 이념의 전향인지 화풍의 변화인지 모르지만 그가 지은 시와 그림, 그림 안의 빈 여백에서도 평화로운 울림과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좋아하는 작가의 판화를 소장하고 매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림 가격을 알게 된 딸아이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판화라서 이 정도 가격이고 유화보다 저렴하다고 설명해도 그림이 이렇게 비쌀 수 있냐고 성토했다.

창작의 노력과 투입된 시간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가격이지만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예술가의 열정은 살아 있을 때 인정받으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생전 불우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사후에 유명해진 화가가 많다. 이중섭도 마찬가지다.

서귀포 이중섭 거리에는 그가 전쟁 중 북에서 내려와 피난 살던 초가집이 복원돼 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어떻게 이런 곳에서 네 식구가 살았을 까 할 정도로 비좁고 남루했지만 그나마 온 가족이 함께 살 수 있었던 것도 일 년 남짓에 불과했다. 일본으로 떠난 아내와 두 아들을 그리워하며 마흔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외롭게 죽었다고 한다.

그가 아직 살아남아 수십억 원에 그의 작품이 사고 팔리는 것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억 단위로 거래되는 작품의 가치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초래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어쩌다 산 주식이 천 프로 급등하는 일이 드물듯이  거실에 걸려있는 판화가 고액의 유산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저 우리 부부가 지구에 없을 때, 아빠는 꽃을 닮은 별이 되었고, 엄마는 아빠와 어깨동무를 하고 웃고 있을 것이라는 추억이 그림을 바라보는 딸아이와 그 아이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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