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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 Mar 04. 2023

교환학생 귀국 한 달 전

아빠가 쓴 딸의 교환학생 체험기

아빠가 필요할 때


일 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준비를 시작한 딸은 나갈 때 보다 할 일이 더 많다고 매일 투덜댔다. 학적을 정리하고, 보험과 학생카드를 취소해야 하며 옷과 살림살이를 정리해야 한다. 한국에서 가져간 옷에다 그곳에서 춥다고 사고, 덥다고 사고, 이쁘거나 싸다고 산 옷도 적지 않다. 심지어 한국에선 신지도 않던 장화까지 샀으니 그 짐이 오죽하랴. 한국에선 품절이고 저렴해서 득템 했다고 자랑질하더니 드디어 충동구매의 보복을 당하게 된 것이다. 옷도 옷이지만 나갈 때 친척들에게 찬조금 받아왔으니 작은 선물도 하나씩 사야 한다. 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냄비나 도마, 이불 같은 건 새로 유학 온 학생들에게 중고로 팔기도 하고 일부는 택배로 한국으로 보냈지만 기숙사 퇴실 청소가 문제였다. 입실하면서 두 달치 보증금을 냈는데 청소가 불량하거나 파손이나 오염이 있으면 보증금에서 사정없이 차감한다고 한다. 딸은 며칠 동안 열심히 쓸고 닦고 나서 사전점검을 받았지만 커튼에 있는 얼룩 10유로, 책상 위에 남은 볼펜 자국 20유로, 인덕션과 전자레인지가 더러우니 20유로 이런 식으로 지적을 받았다. 퇴실할 때까지 깨끗하게 지우지 않으면 보증금에서 차감하고 나머지만 돌려주겠다고 했다. 딸은 이미 사는 동안 한 건의 대형사고를 일으켰었다.


 이른 시간인데 톡이 아니라 보이스 톡이 울렸다. 딸이 전화하는 경우는 아빠가 꼭 필요한 일이 생긴 거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전화받으면 “갑자기 인터넷이 안된다” 고 하거나 “화장실 변기가 막혔는데 빨리 퇴근하고 와서 뚫어 달라” 뭐 이런 일들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급하게 전화를 받아 보니 선반에서 냄비뚜껑을 떨어뜨려 인덕션을 깨트렸다는 거다. 찍어 보낸 사진을 보니 한국이면 내가 가서 어떻게 해 보겠는데 딸 혼자 새것 사서 바꿔 치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싱크대 상판을 드러내고 다시 설치해야 할 것 같았다.

“인덕션은 검색해 보니 10만 원도 안 해. 설치하는데 얼마나 달라고 할까?”

“글쎄, 독일은 인건비가 비쌀 테니 30에서 40만 원 정도 나오지 않을까?”

돈 아낀다고 마트에서 산 식빵으로 샌드위치 만들어 일주일을 버티는데 30만 원이나 날리게 생겼으니 난리가 났었다. 이번에 또 지적받아 보증금을 축낼 수 없다며 열심히 쓸고 닦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딸이 싱크대를 닦고 있는 동안 한국에서도 돌아올 딸 방을 정리했다. 쌓인 먼지를 털어 내고 커튼과 이불을 빨고 새로운 분위기로 공부하라고 침대와 책상 위치도 바꿨다.

아이가 오면 다시 짐꾼이 되어 공항으로 마중 가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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