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괜찮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날은 전체조례가 있는 월요일이었습니다. 1997년의 오월이었고,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 주의 주번이 저였기에 저는 반을 지키기 위해 교실에 남았습니다. 이듬해부터는 교실의 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모두가 조례에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해에는 주번이 남아서 좀도둑을 잡았습니다. 당시의 학교는 도둑이 쉬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기에 교실에서 대기하는 주번은 꿀이었습니다. 고생하는 주번에게 허락된 낙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아픈 애가 생겼습니다. 전체조례를 하기 위해 나갔던 약골이는 오와 열을 맞추지 못하고 휘청거렸고, 얼굴이 노래진 걸 본 담임은 교실로 보냈습니다. 약골도 좀도둑은 잡을 수 있는 것인지, 담임은 나를 전체조례에 참석케 했습니다. 담임의 전언을 전한 약골이는 미안해했지만, 나는 별 생각이 없었기에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랬는데,
뛰어나와 보니 운동장은 여전히 어수선했고, 저를 포착한 맹금류 선생이 교단으로 불렀습니다. 왜 늦게 나왔냐고 물어볼 태세였지만, 저는 주번이었고, 아픈 친구에게 양보하고 나오는 길이었고, 그래서 당당했기에, 역시나 뛰어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사정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선생은 찰나에 맹수가 되어 “어금니 물어라”라고 말하는 동시에, 귀싸대기를 날렸습니다. 오른손으로 두 방, 왼손으로 한 방. 그러고는 모르겠고, 정신이 없는데, 선생은 막타로 엉덩이를 걷어찼습니다. 이제 제자리로 가라는 뜻이었고, 달리 말하면 꺼지라는 것이었죠. 선생의 훈육은 효과적이었습니다. 어수선하던 운동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반듯해졌습니다.
터질 것 같은 얼굴을 붙들고 반을 찾아 정신없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담임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친구들은 괜찮냐고 했습니다. 전혀 괜찮지가 않았을 텐데, 나는 괜찮다고 했고, 나를 줘 팼던 선생을 생각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의 노예가 된 남중의 짐승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정된 조례 시간이 다 되었기에 선생도 조급 했겠지요. 어쨌거나 늦게 나온 놈이었기에 두들겨 패도 괜찮아 보였을 겁니다. 선생은 짐승을 정렬시켜 교장의 훈화 말씀을 듣게 해야 하는 역할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교장은 반듯한 오와 열을 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아아… 사이바(cyber) 시대에 걸맞은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콤푸타(computer)를 잘해야 허고, 또 조국과 영광이 어쩌구…… 마지막으로는, 에…… 학우들과 잘 지내고, 선생을 존경하고, 부모를 잘 섬기고…… 에 또,……마”
뭐 그런 이야기를 사건의 현장에서 훈화하셨습니다. 나는 교장의 혀가 길어질수록 옆에서 선생에게 두드려 맞는 학생이 보였고, 그 녀석이 구제될 수 있었던 방법을 시뮬레이션했습니다. 교단에 올라가는 마지막 계단에서 사정을 얘기해야 했나? 맹금류의 발톱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기 전에? 아니면 교단에 가는 척만 하고, 담임을 빨리 찾아야 했나? 그것도 아니면 아픈 애와 함께 나와서 사정을 얘기해야 했던 걸까? 그런데 그게 가능은 한 것이었나?
터질 것 같던 얼굴은 자가 치유 중이었고, 머리는 아팠고, 무엇보다 눈물보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한 차례의 흔한 전체조례는 이렇게 마무리 됐고, 돌아간 교실에서 사정을 들은 약골이 말했습니다. “헉! 괜찮아? 정말 미안. 내가 매점이라도 쏠게.” 약골이가 미안할 일은 아니었고, 뭔가 혈색이 좋아져 보여서 다행이었고, 사실은 좀 짜증이 났던 것도 같은데, 뭐 어쩌겠나 싶었고, 그래도 그쯤 되니 정말 괜찮은 것도 같았습니다. 반 애들은 선생 욕을 해줬고, 나의 재수 타령을 했으며 누구는 ‘뭐 그런 걸 가지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놈은 “네가 별로 안 맞아봐서 그러는 거다. 호들갑 떨지 마라.”라고 했지요.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애들이 맞는 체벌의 평균 이하로 맞는 눈에 별로 띄지 않는 학생이었습니다. 약골이는 그날 점심때 아이스크림을 사줬고, 담임은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중1 때 경험한 선생 체벌은 훗날 숱하게 이어질 훈육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지각을 해서 맞았고, 숙제를 까먹어서 맞았고, 영단어를 못 외워서 맞았습니다. 졸다가 맞기도 했고, 이발을 못해서 맞기도 했으며, 선생이 낸 문제를 못 풀어서 맞았습니다. 선생의 농담에 웃지 않아서 맞았고, 시험기간에 축구를 하다가 맞았습니다. 담배 피우는 학우가 누군지 알면서 지목하지 않아서 맞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냥 그랬습니다. 그런 게 일상이었고,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날은 쉬이 잊히지 않습니다. 체벌의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달리 맞았던 숱한 매는 그 이유를 내게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다른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그 사건 이후 거의 30년의 세월이 되어 가지만, 여전히 조금 아픕니다. 그 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날 엉엉 울었어야 했을까요? 놀림만 더 받진 않았을까요? 친구 놈의 말처럼 덜 맞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폭력이 시대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폭력으로 쌓은 어제 때문에 오늘이 위태롭습니다. 매질의 당사자가 남긴 유산이 지금의 교육자를 사지로 몹니다. 그놈은 어디 가고 애먼 사람이 사냥당하나요? 체벌의 경험을 한 이들이 체벌을 원하나요? 고인의 명복은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거꾸로 시달리는 선생의 귀한 생명이 꺼져가고, 이로써 풍문으로 취급되던 뒤집힌 학교 폭력의 양상이 가시화됩니다. 체벌이 대안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폭력의 시대에 주역이었던 이들의 목소리와 비슷한 데시벨입니다. 걱정이 되어 초등학교 교사가 된 친구에게 연락합니다. 나보다 덜 맞고 그래서 더 상처받던 녀석입니다. 말합니다. 괜찮다고. 점차 좋아질 거라고. 다 그런 건 아니라고. 좋은 학생이, 좋은 학부모가, 좋은 선생이 많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안도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계속 괜찮다고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정말 괜찮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