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에세이] 찬양과 혐오를 넘는 일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by 최우주

[독서 에세이] 찬양과 혐오를 넘는 일 (『82년생 김지영』)

—풍문이 아니라, 직접 읽고 함께 이야기해 보자.



<1> 풍문으로 익히 들었소


작년 이맘때쯤 수강생으로부터 장문의 메일을 받았다. 그 장문을 단문으로 만들면 이렇다. “이런 편향되고 혐오스러운 작품을 강제로 읽히고 독서토론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2주 후에 우리는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토론 수업을 할 예정이었다. 나도 장문의 답장을 보냈는데, 단문으로 만들면 이렇다.


“이 소설이 미학적으로 뛰어나거나 혹은 정치적으로 흠결이 없어서 고른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하는 숙제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기에 택했다. 그런데 너 읽어는 봤니?” 돌아온 답장에 “직접 읽지는 않았습니다”라고 해서 “직접 읽어보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또 하나의 장문의 메일을 받았다. 그 장문을 단문으로 만들면 이렇다. “이런 편향되고 혐오스러운 책을 강제로 읽히고 글쓰기 과제로 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는 『82년생 김지영』 독서토론을 하고, 그다음 주에는 박가분의 『포비아 페미니즘』을 읽고 글쓰기 과제를 한다. 그 과제는 모두 가상대학에 공유되고 학우들이 같이 보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나는 이번에도 장문의 답장을 보냈는데, 단문으로 만들면 이렇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전적으로 옳지도 않고, 문제적인 지점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등장한 페미니즘이라는 현상의 공과를 따져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에 골라봤다. 혹시 이미 읽었니?” 돌아온 답장은 “아니오”였고, 그래서 다 같이 읽어보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어보자고 했다.



<2> 망치만 보내는 맞춤 서비스


남혐 소설 『82년생 김지영』, 여혐 도서 『포비아 페미니즘』이라는 풍문이 돈다. 그리고 그 풍문에 우리는 반응한다. 하지만 몇 학기 째 이 책들을 다루고 있지만, 직접 읽은 학생들은 그 누구도 이 단순한 규정을 고수하지 못한다. 예찬을 하든, 그 반대든 마찬가지다. 단순함은 토론 과정에서 논파당하고, 대신 다양한 결들 속에서 서로의 경험이 공유된다. 그 서로는 결코 구독하지 않았을 이웃의 목소리였다.


디지털 사회가 도래하면서 옆집 아주머니나 우리 반 친구와 같은 물질적 관계를 넘을 수 있는 지평이 열렸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바로 새로운 마을이 됐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내가 원하는 관계와 정보를 구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기존의 체계를 전복하는 성취가 되었던 그 테크놀로지가 지금은 도리어 ‘망치’만을 든 사람을 대거 양성하는 늪도 되고 있다.


미국의 대표 작가인 마크 트웨인은 “망치를 든 사람은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망치는 물론 우리에게 필요한 중요한 도구이다. 문제는 망치만 가질 때이다. 못을 박아야 할 때는 망치가 필요하지만, 음식을 먹을 때는 식기와 수저가 있어야 하고, 공부를 할 때는 필기구가,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할 때는 부드러운 손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를 둘러싼 디지털 세계는 단일한 관점만 강화되는 속성을 띤다. 같은 성향과 지향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마을을 세우고, 다른 입장을 보이는 타자는 퇴장시킨다. 그리고 퇴장된 그 타자는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로 가면 된다. 디지털 맞춤 서비스가 최적화될수록 자기들끼리의 관계와 목소리만 가득 찬다. “동일한 것의 다양한 상태들만 있을 뿐이다.”(한병철, 『투명사회』, 문학과지성사, 2014, 161쪽)



<3> 토론이라는 놀이


토론 수업은 둘 중 하나는 읽을지 몰라도, 둘 다 읽지는 않을 학생들이 둘 다를 읽고 참여한다. 결코 서로 만나지 않았을 목소리들이 부딪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마을을 나와 골목을 발견하고 곧 함께 논다. 그러다 확인한다. 자신이 들고 있던 견고하고 완전했던 망치의 왜소함을. 절대 놓지 못할 것이라 믿었던 그 망치를 내려놓고 다른 학우들의 다양한 도구들을 들어본다. 거기서 발견하는 것은 다양한 표정의 얼굴들이고, 새로운 질문들이다. 『82년생 김지영』과 『포비아 페미니즘』은 더 이상 찬양과 혐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이미 바닥에 팽개쳐 있다. 그 책들은 시작일 뿐, 각자의 살아있는 이야기가 서로에게 오가기 때문이다. 생생한 사연과 위로들이다.


혁명엔 늘 반혁명이 따르고, 우리 삶과 생각의 패턴은 관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항상성이 우리의 기본값이듯 사건도 일상의 자장 속으로 들어간다. ‘아하!’해도, 혹은 반박 못해 붉은 말 줄임표에 사로잡혀도, 토론은 마치기 마련이고, 강의도 끝이 난다. 다만 나의 디지털 마을에서 나와 골목에서 다른 사람과 마주친 경험. 내가 들고 있던 망치를 의심해보고, 새 친구의 도구를 들었던 감각이 후에도 남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매 학기 여러 차례 토론 수업을 하면서 자각하는 것이 이런 것들이다. 잘난 척하며 강의를 하지만, 실상 가장 많이 깨닫고 배우는 것은 나다. 매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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